금주의 서평 - 사회적 공감

인저리타임 승인 2019.12.04 17:48 | 최종 수정 2019.12.04 18:03 의견 0

사회적 공감

저 자 : 엘리자베스 A. 시걸(애리조나 주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서평자 : 김정수(한양대학교 행정학과 교수, 예일대학교 정치학 박사)[coramdeo@hanyang.ac.kr]
원 제 : Social empathy : the art of understanding others
 

“힘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지하면 권력자들은 부하 직원들을 대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으며, 정책 입안 문제로까지 확대시킬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개인적 공감은 사회적 공감으로 이어진다.”(331p.)

목표 지향적 사회에서 공감 지향적 사회로

행복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동안 물질적 풍요, 경제적 안정, 든든한 국방과 치안, 쾌적한 환경 등을 통해 행복을 추구해왔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A. 시걸은 사회복지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가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다른 대부분의 공공정책 연구자들과는 달리 사회적 행복의 촉진제로서 ‘공감(empathy)’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공감은 사회친화적 행동을 촉진함으로써 사람들 간의 협력과 연계를 강화시키고 행복의 수준을 높이게 된다. 공감의 결여는 타인을 자신과 같은 인간으로 보지 않음으로써 끔찍한 폭력이나 잔인한 범죄행위를 초래하기 쉽다. 최근 우리 사회의 잦은 갑질 논란 역시 공감 결여 현상이다.

지금까지 공감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주로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져 왔다. 예컨대 대니얼 골먼의 저서를 통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던 EQ, 즉 ‘감성지능’이라는 개념은 타인의 감정을 잘 이해하고 읽어내는 공감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감성지능이 높은 사람은 인생에서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시걸은 개인적 공감을 더 넓게 확대하여 ‘사회적 공감(social empathy)’이라는 개념을 개발하였다.

사회적 공감이란 “다른 사회적 집단 및 사람들의 삶과 상황을 인식하고 경험함으로써 이들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일반 시민들뿐 아니라 정치인들과 정부관료들의 사회적 공감 능력이 커질수록 더 행복한 사회가 되리라는 것이 이 책의 기본 전제이다.

시걸은 사회적 공감이 일곱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개념화한다. 먼저 개인적 공감을 구성하는 다섯 가지 요소가 있는데, ①정서적 반응, ②정서에 대한 정신적 이해, ③자신과 타인에 대한 인식, ④관점 수용(타인의 입장에 서는 것), 그리고 ⑤정서 조절(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사회적 공감은 여기에 두 가지 요소, 즉 ⑥맥락에 대한 이해와 ⑦거시적 관점의 수용이 추가된다. 맥락에 대한 이해란 자신과는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정체성에 기여한 역사적 사건들을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 즉 그 집단의 현재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의 일들을 충분히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거시적 관점의 수용이란 인종, 젠더, 성적 취향, 능력, 연령, 계급 배경 등 자신과는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의 상황에 자신을 위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공감은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 개발되는 것인가? 시걸은 이 두 가지 가능성을 다 인정한다. 인간에게는 본능적으로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모방하는 미러링(mirroring) 능력이 있는데 이것은 공감의 토대가 된다. 그런데 타인을 나와는 다른 집단이라고 볼 때, 특히 자신의 생존이나 안전을 위협한다고 두려움을 느낄 때 공감을 느낄 가능성은 크게 낮아진다. 또한 높은 지위에 있는 권력자들은 공적 업무에 많은 주의를 집중하는 반면 타인들의 사정을 헤아리는 데에는 관심도 적고 공감의 수준도 낮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다양한 집단들에 노출되는 경험-특히 어린 시절의-을 통하여 공감 능력이 향상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는 짧은 시간에 경제적 근대화와 정치적 민주화를 압축적으로 이루어냈지만 그 과정에서 사회적 공감이라는 소중한 가치를 잊어버렸다. 정치인들은 때때로 사회적 약자 혹은 비극적 사고의 피해자들에 대한 연민이 결여된 무심한 발언으로 그들의 아픔과 상처를 더욱 헤집기도 한다. 법과 규정을 충실히 따르려는 공무원들은 종종 민원인들의 딱한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기계같은 행정으로 시민들을 분노하게 한다. 물론 그들의 감정을 고려하는 수고를 생략함으로써 행정업무가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처리될 수는 있다.

그러나 시민들, 특히 사회적 약자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면 필히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 정치와 행정의 본분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 섬기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으로 좋은 정치, 좋은 행정이 되기 위해서는 냉철한 문제해결 능력뿐 아니라 시민들의 입장을 헤아리는 따스한 공감 능력까지 겸비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사회적 공감을 내포한 정치와 행정을 실제로 구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걸은 이것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불가능한 과제도 아니라고 단언한다. 우선 한 가지 방법은 선거를 통해 공감 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을 판별하고 선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시민들의 복지에 대한 관심과 타인의 처지에 대한 공감을 적극적으로 요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권력자나 정책결정자가 스스로 사회적 공감 능력을 갖춰나가기를 기다리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그래서 시걸이 결론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시민들의 자발적인사회운동이다. 즉 사회적 공감을 지닌 시민들이 정책결정자가 다른 사람의 감정과 필요를 이해하도록 자신과 타집단을 대신하여 사회운동을 펼치자는 것이다. 그 실례로 미투(Me Too) 운동의 확산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힘없는 사람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고 지지하기 시작하면 힘있는 자들의 행태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사회적 공감이 체화된 정책과 제도로 확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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