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분단의 기원
저자 : 오코노기 마사오
서평자 : 조수룡(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문학 박사)[srcho98@korea.kr]
“한반도 분단은 무슨 의미였을까. 독립과 통일의 불가분한 관계, 즉 양자의 ‘비양립성 내지 상극’이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독립을 달성하려면 통일이 불가능해지고, 통일을 실현하려면 전쟁이 불가피해지는 불편한 상태’가 해방 후 한반도에 존재했고, 한국전쟁을 통해 정착했기 때문이다.”(23p.)
독립과 통일의 상극(相克),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충돌 어떤 거대한 문제의 기원을 탐구하는 일은 그 분야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작업이다. 한국 현대사에서는 분단과 한국전쟁의 기원을 찾는 것이 여기에 해당될 것이다. 수많은 연구자들 중에서도 우리가 대가(大家)라고 부르는 극히 몇 사람만이 그러한 과제에 도전했고 기념비적 저술을 남겼다.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게이오기주쿠대학(慶応義塾大学) 명예교수는 한반도 문제와 냉전사 분야에서 잘 알려진 대가들 중 한 명이다. 그는 1972년 한국 교환학생 1호로 연세대학교에서 유학하며 한국과 인연을 맺은 이래, 근 50년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 국제정치 연구에 몰두해 왔다. 그는 2011년 정년을 맞던 해에 한국의 한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남은 인생도 ‘한반도 분단과 통일’을 연구하는 데 바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어 원서가 나온 지 약 10개월 만에 한국어로 번역 출간된 『한반도 분단의 기원』은 그러한 집념을 담은 700쪽의 대작이다.
이 책은 1941년 일본의 진주만 폭격으로부터 시작하여 1946년 5월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미소공위)의 결렬까지를 다룬다. 한반도 분단사를 다룬 여느 저서와는 달리 좌우합작, 미소공위의 최종 결렬과 단독정부론의 등장, 남북협상 등으로 이어지는 단독정부 수립 과정은 분석 시기에서 제외되었다. 이것은 필자가 언급한 것처럼 이미 분량이 너무 방대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제1차 미소공위의 결렬로 한반도의 분단이 사실상 결정되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한반도의 분단에 미친 미·소 냉전의 규정력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타당한 가정으로 보인다. 분단의 국내적 기원에 관한 이런저런 논의들이 존재하지만, 이 시기부터 시작된 냉전의 원심력을 극복할 수 있는 에너지가 과연 한반도에는 있었을까.
분단의 외부적 조건을 강조하는 관점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시각은 독특하다. 이 책은 미국과 소련의 대립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이념이나 지정학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갈등보다는 국제정치학에서 말하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적 접근의 차이로 해석한다. 즉 미국은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와 영토 불확대 원칙에 따라 신탁통치와 같은 역내 집단 안전 보장을 추구한 반면, 소련은 자신의 지정학적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국 주변에 완충지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차이에 따른 대립은 유럽에서도 비슷한 양상이었다는 점에서 중대한 지적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러한 가정이 결국 냉전의 형성과 한반도의 분단에서 소련의 책임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귀결된다는 점은 언급해둘 필요가 있다. 결국 루즈벨트는 미국, 소련, 영국, 중화민국이라는 ‘4인의 경찰관’이 동아시아와 한반도의 질서를 안정시킨다는 밑그림을 그렸지만, 스탈린은 자국 안보를 위한 영토적 욕구 충족에 집착하여 냉전을 초래하였다는 것이다.
냉전과 분단의 기원은 맞닿아 있기 때문에, 이러한 논리대로라면 분단의 책임도 소련 쪽에 무게추가 기운다. 분명 흥미 있는 가정이기는 하지만 단순히스탈린의 ‘음험한 술수’에 대한 반응으로 트루먼이 윌슨주의를 내팽개친 것일까? 이 오래된 논쟁은 아직 더 이어질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이 책이 가진 또 하나의 특징은 냉전사와 한반도 분단사에 군사사(軍事史)적 관점을 도입한 점이다. 일반적으로 군사사는 군사 및 전쟁과 관련한 역사 연구를 통칭하지만, 최근에는 무기 또는 전술과 같은 군사적 영역의 발전이 초래한 정치·사회·경제적 변화를 분석하려는 경향이 나타났다. 화약 무기의 발전이 중세 성벽을 무력화시켜 자본주의의 발전을 촉진시켰다는 식이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오코노기 교수는 원자폭탄 개발이라는 군사 기술상의 혁명이 일어난 시점이 한반도의 분단이라는 운명의 중요한 분기가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만일 미국이 원자폭탄을 수개월만 빨리 완성했더라면 미국이 한반도 전역을 점령했을 것이고, 그 반대라면 소련이 점령했을 것이다.
태평양전쟁―분할점령―한국전쟁―냉전―북한 핵개발로 이어지는 거대한 나비효과의 분기점이 바로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이라는 것이다. 이 또한 흥미로운 가정이긴 하지만 개발의 시점과 같은 우연적 계기보다는 비현실적 대량살상무기의 존재가 어떻게 냉전이라는 특이한 현상을 초래하였는지 같은 보다 구조적 계기에 주목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예컨대 미·소 양국은 원자폭탄의 존재로 인해 정면대결을 회피하는 대신 각지에서 한국전쟁과 같은 이른바 ‘제한전쟁’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평화공존’을 외치면서도 아시아에서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냉전의 아이러니는 원자폭탄과도 관련이 있지 않을까.
이렇듯 이 책은 한반도 분단의 기원에 대한 방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해줄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흥미로운 논쟁거리를 던져준다는 점에서 역저라 할만하다. 저자가 “제2의 박사학위논문”이라고 생각할 만큼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곳곳에 묻어난다. 비단 한국현대사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궁금증국회도서관 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읽어보아야 할 책이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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