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 아렌트의 정치 강의
서평자 : 김선욱(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및 인문대학 학장, 철학박사)[ swk@ssu.ac.kr]
저 자 : 이진우(포항공과대학교 교수)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을 폭력의 부재를 특징으로 하는 행위의 공간으로 파악함으로써 ‘폭력이 없는 정치’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아렌트에 의하면 정치는 인간이 행할 수 있는 가장 자유로운 행위이다. 정치적 행위의 의미와 목적은 자유이다. (중략) 정치는 ‘단순한 삶’, 즉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좋은 삶’, 즉 복지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p.159)
한나 아렌트를 보수적으로 읽는 정치철학 안내서
우리의 최근 정치적 경험은 그야말로 ‘다이나믹’ 그 자체다. 한나 아렌트는 그 역동성을 해석하는데 가장 도움이 되는 사상가들 가운데 하나다. 지난 몇 년간 발간된 대중적인 아렌트 안내서는 그 수가 열 편 가까이 되는데, 흥미로운 것은 그 방향성의 편차가 상당하다는 점이다. 그 중에 이 저술은 아렌트를 가장 보수적으로 해석하는 안내서로 꼽을 수 있겠다.
1906년에 독일 프로이센 지역에서 태어난 아렌트는 어린 시절 철학과 신학에 관심이 있었지만, 나치에 의한 유대인 억압을 경험하고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정치에 대해 깊이 성찰하였다. 그녀의 최초 저서인 『전체주의의 기원』은 전체주의를 단순한 과거 사건으로만 다루는데 그치지 않고, 다시 등장할 수 있는 전체주의의 싹을 발견하여 미리 대응하도록 우리를 정치적으로 준비시키는 책이다. 그래서인지 극우의 등장과 정치적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요즈음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은 전 세계적으로 다시금 주목을 받고 있다.
아렌트 정치철학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려면, 그녀가 전체주의의 절대적 악 또는 근본악에서부터 출발했다는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이 책은 전체주의의 핵심 내용을 다루면서 시작한다. 전체주의는 이데올로기와 테러를 두 축으로 갖는다. 과학적 이론을 표명한 이데올로기는 사실상 사이비에 불과하지만 논리적으로 미래에 대한 예측을 내놓으면서 대중을 현혹하고 선동한다. 또 사람들을 철저하게 원자화시키기 위해 사회 전체를 공포 분위기 가운데 둔다. 수용소는 이런 공포를 만들어내기 위한 전체주의의 필수적 기관이다. 전체주의는 정치적 자유를 철저히 망가뜨리고 정치공간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만들며 인간의 삶을 절망으로 인도한다. (1장과 2장)
전체주의에 대한 아렌트의 통찰은 두 갈래로 발전된다. 그 하나는 ‘악의 평범성’ 개념으로 등장한다. 유대인 학살에 책임이 있는 전범 아이히만이 체포당해 받은 재판 현장에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포착한다. 이는 홀로코스트와 같은 절대악이 개인의 ‘무사유’ 즉 생각 없음에서 나올 수 있다는 통찰이다. 우리 사회에 널리 통용되는 가운데 많은 오해까지 받고 있는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생각 없음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이는 사유와 정치의 연관성 문제를 제기하는데, 바른 사유를 통해 이루어지는 정치에 대한 고민은 1975년 그녀가 죽을 때까지 계속된다. (3장과 10장)
다른 하나는 정치의 참모습과 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연구이다. 정치는 인간이 모두 서로 다르다는 사실(인간의 복수성)에서 나온다. 아렌트는 ‘정치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라는 두 개념을 사용하여 경제와 정치의 차이와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정치가 갖는 자율적 모습을 해명한다. 인간은 각자가 태어나면서부터 부여받은 새로운 시작의 능력(탄생성)을 통해 어떻게든 각자의 현실에서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나아가 개인을 넘어 집단적인 공동행위(action-in-concert)가 어떤 방향으로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사회가 어떻게 민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지를 특히 미국혁명을 통해 아렌트는 설명한다.
폭력적인 해방의 과정, 비폭력적으로 이루어지는 혁명,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법질서의 형성, 시민의 참여, 공적 행복 등은 미국 건국 과정에 나타난 공화주의를 설명하면서 사용된 개념들인데, 우리의 촛불혁명을 설명하는 데도 유효하다. 진정한 시민의 권력은 사람들이 모이는 가운데 형성되고 법을 통해 발현되며, 올바른 판단을 내릴 줄 아는 시민을 통해 좋은 정치 공동체가 잘 형성되고 유지된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4장~10장)
이 책의 미덕은 아렌트의 주옥같은 많은 원문들을 직접 인용함으로써 그의 사상을 직접 대면하게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이 민주주의와 이를 가능케 하는 시민의 능력에 대한 아렌트의 신뢰를 충분히 잘 전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든다. 아렌트에게 올바른 정치판단은 시민의 몫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대안은 민주주의 밖에 없으며, 민주적 다수가 공동의 삶을 이끌어나가는 끈질긴 노력은 항상 필요로 한다. 약화된 민주적 역동성을 회복할 수 있는 직접 민주주의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으며, 법과 제도의 형식성이 아니라 그 내용을 채우는 시민적 합의 또한 늘 검증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진우 교수의 아렌트 해석은 상당히 보수적이다.
보다 진보적인 아렌트 해석은 시민으로서 대중의 가치와 역할에 더 큰 신뢰를 보낸다. 또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자들(파리아)의 입장에 충실하여 정치를 바라보는 아렌트의 시선이 살아 있다. 억눌리고 소외된 자, 법과 제도에 의해 오히려 인권의 사각지대에 몰려버린 자들을 위한 아렌트는 나 같은 전문 학자들보다는 소외의 현장에서 활동하는 젊은 아렌트 연구자들의 눈에 더 선명히 보이는 것 같다.
# 이 서평은 국회도서관의 승인을 받아 '금주의 서평'을 전재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www.nanet.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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