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하고 기가 꽉 막힌다는 시민들이 많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답변서 때문이다. 탄핵 사유가 될 만한 잘못을 한 게 하나도 없다는 주장을 담은 그 답변서. 나라를 뒤집어 놓고도 잘못한 게 없다니…
답변서에서 박근혜 대통령 측은 탄핵소추안에 기재된 13개 항목의 헌법·법률 위배 행위를 전면 부인했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사실이 아니고 입증된 바도 없으며, 최순실이 사익을 추구했더라도 박 대통령은 개인적 이득을 취한 바 없고,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미르-k재단’ 의혹과 관련,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들에 자발적 지원을 부탁했고, 기업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출연한 것이므로 뇌물수수의 고의가 없으며, 최순실의 이권 개입을 전혀 몰랐다고 했다. ‘세월호 7시간’ 문제에 대해서 박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정상 근무하면서 신속하게 중앙재해대책본부에 나가 현장 지휘를 했기 때문에 생명권 보호를 위해 노력하였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13개 탄핵사유에 대한 부인 내용을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겠다. 핵심은 박근혜 대통령이 뻔히 드러난 사실, 즉 최순실의 국정농단 사태 자체를 뻔뻔하게 부인했다는 점이다. 야당에서 “혼이 비정상”, “잡범 수준”이라는 비판이 나온 것은 무리가 아니다.
이 같은 박근혜 대통령의 태도에 대해 분통이 터지면서도 물음표가 떠오른다. 박 대통령이 정말 잘못한 게 없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지은 죄를 뻔히 알면서도 책임을 면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국민들은 대통령이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분개한다. 그런데 ‘거짓말을 한다’는 주장은 ‘자신이 잘못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박 대통령이 정말 자신의 잘못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도 자신은 정말 잘못한 게 없다고 여기는 게 아닐까?
유대인 학살범죄 재판받는 아이히만.
이 대목에서 아이히만의 재판 진술이 떠오른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의 나치 정권 아래서 유대인 학살의 책임을 맡은 히믈러의 지시를 받아 유대인 학살 계획을 치밀하게 시행한 그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 아이히만은 전쟁 후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지내다가 1960년 5월 11일 밤 체포되어 1961년 4월 11일 예루살렘 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시작했다.
재판 내내 아이히만은 기소장에 적힌 범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특히 그는 양심에 대해 말하기를,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명령받은 일이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죽이는 일을 말한다. 그런데 그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니…
아이히만의 이 같은 진술은 많은 사람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사람들 중에는 <뉴요커(New Yorker)> 의 특파원 자격으로 이 재판을 참관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 Arendt)도 있었다. 아렌트가 객관적인 눈으로 본 아이히만은 법을 잘 준수하는 시민으로서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성실히 수행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떤 잘못도 느끼지 못했다.
대학살 명령을 수행하지 않았다면 아마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라고 대답하는 이 아이히만의 정신 상태는 올바른 것이었을까? 그는 평범하고 심지어 ‘착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저지른 일은 인류 역사상 유례를 찾기 힘든 범죄였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이히만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아이히만의 문제는 자신의 행위의 의미에 대해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일이 갖는 의미에 대해 판단하지 못했고, 또 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렌트가 관찰한 아이히만은 악마적 인간이 아니라 관료제 타성과 인습적 관례를 따른 ‘명령수행자’로만 보였다. 그는 범죄혐의 부인과 단순 명령 수행이라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사형 선고를 받았다.
‘악의 평범성’을 통찰한 한나 아렌트.
아이히만 재판을 세심하게 관찰한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통찰한다. 아이히만에게서 보이는 악은 특수한 형태의 악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악이라는 것이다.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이다.(최근 아이히만은 단순한 명령수행자가 아니라 신념에 찬 반유대주의자이며 그의 치밀한 연기에 아렌트가 속은 부분이 많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에 대한 통찰의 의미가 작아지는 것은 아니다. 전체주의 사회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악의 평범성'을 뒷받침하는 사례가 많으니까. )
아렌트는 아이히만에 대해 세 가지 부분에서 유죄라고 주장했다. 말하기의 무능, 생각의 무능, 그리고 판단의 무능이다. 역사상 유례가 없는 범죄를 짓고도 죄의식을 갖지 못한 것은 아이히만이 말하기와 생각 그리고 판단의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이 대목에서 저절로 박근혜 대통령이 떠오른다. '최순실의 꼭두각시' 풍자 만화가 외국 신문에 실리기도 한 터이기 때문이다. 박근혜-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드러난 것이 바로 박 대통령의 ‘3무(無)’, 즉 ‘말하기의 무능, 생각의 무능, 판단의 무능’이 아니었나 싶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에게 연설문과 고위직 인사 개편안을 보여주는 행위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최순실의 의견을 들은 것을 미국에도 왕왕 있는 ‘키친 캐비닛’의 자문에 비유하지 않는가. 기업 총수를 청와대로 불러 재단출연금을 요구하고 한 것과 최순실의 KD코퍼레이션이 현대차에 납품하도록 조치한 것도 오로지 국가경제를 위한 대통령의 통상적인 업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생각과 판단 없이 관료제 타성과 인습적 관례에 따라 대통령직을 수행했고, 그 결과 벌어진 국정농단 사태를 자신의 잘못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졌고, 그 책임은 박 대통령에 있다는 사실이다. 생각과 판단이 없는 대통령이 저지른 비극이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제대로 말하고(소통하고), 대통령의 직무에 대해 생각하고 판단했다면 오늘과 같은 국정농단 사태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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