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는 불통을 단죄하는 집단소통

촛불시위는 불통을 단죄하는 집단소통

조송현 승인 2016.11.12 00:00 | 최종 수정 2016.12.19 00:00 의견 0

2002년 11월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효순 미순 촛불추모제'. 2002년 11월 30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효순 미순 촛불추모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12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리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3차 주말 촛불집회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촛불집회에는 서울뿐 아니라 전국에서 시민들이 동참, 2000년대 들어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주최 측은 집회 참가 인원을 최대 100만 명 안팎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정국의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이 이토록 많은 시민들로 하여금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이게 하는가? 그것은 청와대의 불통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근본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볼통이지 않은가.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불통을 견디다 못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모이는 것이다. 시민들의 이 같은 촛불시위는 바로 집단소통행위다. 집단소통으로 불통을 단죄하려는 것이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에 의하면 인간은 타인과 공감하는 집단소통을 통해 자유를 느끼며, 가장 인간적인 삶의 의미를 깨닫는다고 한다. 아렌트적 의미에서 촛불시위는 바로 시민들의 집단소통행위다. 누가 지시하지 않아도 시민 서로 서로가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나서는 일종의 주권행사인 것이다.

그러므로 박 대통령과 여당은 촛불집회의 의미를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불순세력 운운은 촛불의 본질을 깨닫지 못한 무지의 소치다. 다시 말하지만 촛불집회의 전제는 다수 시민의 공감이다. 그 공감 없이 강압에 의한 촛불집회란 애초 성립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새삼, 우리나라 대규모 촛불집회의 효시는 뭘까 생각해본다. 옛날부터 크고 작은 촛불시위는 많았으니라. 다만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대규모 촛불집회는 ‘효순·미순 촛불 추모제’가 처음이 아닐까 한다. 2002년 11월 30일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렸다고 한다. 이때도 정부는 효순, 미순의 억울한 죽음을 호소하는 시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게다가 법원은 가해자인 미군에 대해 무죄평결을 내림으로써 시민들의 분노를 폭발시켰지 않은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촛불 추모제’를 맨 처음 제안한 ‘앙마’라는 아이디를 쓰는 네티즌이라고 한다. 앙마의 주인공은 김기보 씨로 당시 학원강사였다고 한다. 그는 <한겨레> 자유토론방(2002년 6월 27일)에 ‘광화문을 촛불로 태웁시다’라는 호소문을 올렸는데 이것이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사회 각계로 전파됐다. 그 호소문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세계에 우리의 의지를 다시 보여줍시다. 우린 광화문을 걸을 자격이 있는 대한민국의 주인들입니다. 피디수첩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그렇게 강경하게 싸운 그들이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죽은 이의 영혼을 반딧불이 된다고 합니다. 광화문을 우리의 영혼으로 채웁시다. 광화문에서 미선이 효순이와 함께 수천수만의 반딧불이 됩시다. 토요일, 일요일 6시. 우리 편안한 휴식을 반납합시다. 검은 옷을 입고 촛불을 준비해 주십시오. 집에서 나오면서부터 촛불을 켜주십시오. 누가 묻거든, 억울하게 죽은 우리 누이를 위로하러간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걸읍시다. 6월의 그 기쁨 속에서 잊혀졌던 미선이 효순이를 추모합시다. 경찰이 막을까요? 그래도 걷겠습니다. 차라리 맞겠습니다. 우리는 폭력을 더 큰 폭력으로 갚는 저급한 미국인들이 아닙니다. 한 분만 나오셔도 좋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미선이, 효순이가 편안하게 쉴 수 있는 대한민국에 대해서 얘기하겠습니다. 저 혼자라도 시작하겠습니다. 이번 주, 다음 주, 그 다음 주, 광화문을 우리의 촛불로 가득 채웁시다. 평화로 미국의 폭력을 꺼버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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