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다 - 한국에 없는 안 의사 유묵을 일본에서 보고

삼일절, 안중근 의사를 생각하다 - 한국에 없는 안 의사 유묵을 일본에서 보고

김 해창 승인 2017.03.01 00:00 의견 0

일본 류코쿠대학 도서관에서 안중근 의사 유묵을 살펴보고 있는 필자.

3월 하늘을 가만히 우러르면 떠오르는 이가 ‘유관순 누나’만은 아니다. 안중근 의사도 3월의 하늘에 있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대한국 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1910년 2월 14일 사형선고를 받은 뒤 뤼순감옥에서 순국한 날이 3월 26일이다.

지난 1월 우리나라에 없는 안중근 의사의 유묵 3점을 일본 교토 류코쿠(龍谷)대학에서 직접 볼 기회를 가졌다. 이 대학 경영학부 교수이자 사회과학연구소 산하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장인 이수임(李洙任) 교수의 초청을 받아 ‘한국은 지금-민주주의와 탈핵으로 가는 길’이란 주제의 특강을 하러 갔다가 이 같은 행운을 가졌던 것이다.

이수임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장의 요청을 받은 대학 측은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던 유묵 3점을 도서관 별실로 가져와 조심스레 펼쳐 보여줬다. ‘1910년 3월 여순 감옥에서 대한국인 안중근 씀’. 나는 유묵을 보면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했다. 100여 년 전 이 글귀를 쓰시던 당시 모습을 생각하니 가슴이 저며왔다. 특히 선명하게 남아있는 안 의사의 손도장, 단지동맹으로 넷째 손가락 한마디가 없는 왼손 장인(掌印)에 드러난 뚜렷한 손금을 보곤 전율을 느꼈다.

‘戒愼乎其所不睹)(계신호기소부도)’. 중용에 나오는 글로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경계하고 삼간다.’는 뜻이다. ‘敏而好學不恥下問(민이호학불치하문)’. 논어 공야장편에 나오는 글로 ‘민첩하게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不仁者不可以久處約(불인자불가이구처약)’. 논어 이인편에 나오는 글로 ‘어질지 않은 사람은 곤궁에 오래 처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사서삼경에 능한 안 의사의 선비다운 면이 보인다.

일본 류코쿠대학이 소장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유묵 3점. 사진=김해창 교수

어떻게 안 의사의 유묵이 이곳에 있게 됐을까? 사연은 이러했다. 당시 조신지(淨心寺) 주지였던 쯔다 가이준(漳田海純)이라는 스님이 사형수 교화활동의 인연으로 안 의사로부터 유묵 3점을 받아 절에 보관해오다 후손이 불교대학인 류코쿠대학 박물관에 기증한 것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류코쿠대학에 부속연구소로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가 있다는 사실이다. 자국 총리를 살해한 사람을 기리는 연구소가 대학연구소로 있다니. 재일한국인 출신으로 일본인으로 귀화한 이수임 교수가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과 뜻을 모아 2013년 4월 이 연구소를 발족시킨 것이었다.

이들이 안 의사에 관심을 가진 것은 ‘동양평화론’을 편 철학자로서의 안중근의 면모를 새롭게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안 의사의 사상은 철학자 칸트의 ‘영구평화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안 의사는 미완의 ‘동양평화론’에서 한중일의 평화공존을 주장했는데 동양평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공적(公敵)’인 이토 히로부미를 제거한 것이다.

일본 류코쿠대학 안중근동양평화연구센터 이수임 센터장(왼쪽)과 김해창 교수.

한반도를 둘러싼 미·중·러·일, 남북한의 대치는 구한말 동아시아와 같은 전운이 감돈다. 1세기 전 안 의사가 생각했던 동양평화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일까. 다시금 안 의사의 예지력에 존경을 금할 수 없다. 동양평화는 외부에 있지 않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안 의사의 정신을 백분의 일이라도 생각하는 그런 3월을 살고 싶다.

2017년 3월 1일 삼일절. 탄핵 촛불집회에 맞서 ‘수구꼴통’이 들고 설치는 ‘태극기집회’로 인해 태극기를 보는 마음이 착찹하기 그지없다. 그들은 정작 태극기를 가슴에 안고 독립운동에 헌신한 독립투사들의 역사를 외면하려는 사람들이 아닌가? 다시 하늘을 우러러 안중근 의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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