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원 칼럼】 검사를 위한 변명 ④불고불리의 원칙

조송원 기자 승인 2023.11.08 09:24 | 최종 수정 2023.11.11 11:45 의견 0

근대국가는 부모를 죽인 원수라 할지라도 사적으로 복수하거나, 자력구제할 수 없다. 사적보복금지 원칙이다. 오로지 국가기관을 통해서만 범죄자를 처단할 수 있다. 수사기관이 그 개인을 대신해 범인을 잡은 다음 기소를 해줘야 재판이 가능한 시스템인 것이다.

따라서 개인이 아닌 국가만이 형사재판의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국가기관 중에서도 오로지 검사만이 공소권을 가진다. 기소독점주의이다. 예외적으로 군 검사, 특별검사, 공수처 검사도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검사가 기소를 독점하되, 그 기소에는 불고불리의 원칙이 적용된다.

불고불리(不告不理)의 원칙이란 검사가 기소를 하지 않으면 판사가 재판을 할 수 없음을 뜻한다. 곧 사회에 아무리 나쁜 놈이 돌아다니고, 아무리 범죄 혐의가 짙은 사람이 있어도 검사가 기소하지 않으면 그만인 것이다. 나아가, 기소를 하더라도 공소장에 적혀진 죄목만 재판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곧, 기소하지 않으면(不告), 판단하지 않는다(不理).

다시 말하면, 법원은 검사가 기소하여야 비로소 그 기소한 범죄 사실에 대하여 심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검사가 기소한 범위 내에서만 심판할 수 있다. 검사가 피고인에게 절도 혐의가 있다고 기소한 경우를 보자. 심리 결과 절도에는 증거가 없고, 다른 범죄에 관하여 증명이 인정 되었다. 이 경우에도 절도죄 외의 증명된 범죄에 관하여 유죄를 선고하지 못하고, 오직 절도에 관하여 무죄만 선고할 수 있을 따름이다.

최은순 씨는 자신의 잔고를 348억 원으로 위조했다. 이 위조된 잔고증명서를 민사재판의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이는 소송사기에 해당한다. 법원에 거짓된 증거를 제출함으로써 법원을 속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소송사기는 매우 엄하게 다스린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법원에 거짓된 증거를 내면 제대로 재판을 할 수 없을뿐더러 법원의 신뢰는 물론 사법 시스템마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송사기는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중범죄에 속한다.

이뿐 아니다. 최은순 씨는 위조한 문서를 법원뿐 아니라 사채업자에게 보여주면서 자신이 돈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했다. 따라서 최 씨는 사문서 위조, 사문서 행사, 소송사기 등의 죄를 저질렀다.

2023년 7월 21일, 최 씨는 ‘사문서 위조죄’로 징역 1년 형을 받았다. 검찰이 사문서 위조죄로만 기소했기 때문이다. 법 문외한이 보기에도 이건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행사하지 않으려면 애초에 사문서를 위조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조송원 작가

결과적으로 죄질에 비해 한없이 가벼운 처벌을 받는 것으로 끝난 것이다. 검사가 기소하지 않은 죄에 대해서 재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사실인 모양이다, 재력 있는 사업가는 판사보다는 검사를 사위로서 더 선호한다는 풍문이.

사문서 위조만으로 기소한 검사도, 사법 연수원 형사소송 시험에서 ‘최은순 씨 사건’ 관련 문제가 나왔다면, 사문서 위조에다 사문서 행사, 소송 사기를 덧붙여 기소해야 한다고 답했을 것이다. 그래도 대통령 장모 기소 자체만으로도 기개 있는 검사라고 상찬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송영길의 『송영길의 선전포고』(2023.10.30.)에 크게 힘입었음을 밝힙니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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