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상 4대 미인에 대해 우리는 심심파적으로 대화에 올리곤 한다. 침어 서시(沈魚 西施), 낙안 왕소군(落雁 王昭君), 폐월 초선(閉月 貂蟬), 수화 양귀비(羞花 楊貴妃). 이들은 동양적 아름다움의 극치를 체현한 여인들로서 수천 년 동안 세인의 눈길을 받고 입길에 올랐다.
4대 미인은 현대적 의미의 미인이 아닐 수도 있다. 군살 없이 늘씬한 여성이 미인의 기준으로 확립된 것은 19세기 말 서구에서다. 근대 이전 서구에서는 코르셋으로 만드는 잘록한 허리 정도가 강조됐을 뿐, 살집이 풍만한 여성을 미인으로 꼽았다.
시대 추이에 따라 여성이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회생활을 하고, 몸매 전체가 드러나는 쪽으로 패션이 바뀌면서 살찐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서 멀어졌다. 의학적으로는 근대적 영양학이 발달하면서 살빼기는 건강관리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특히 미국에서는 비만과 나태함을 연결하는 도덕관이 19세기 후반 확립되어 다이어트 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절세미인(絶世美人), 이 세상에서는 견줄 사람이 없을 정도로 뛰어나게 아름다운 여자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일까?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성어가 그 답을 말해준다. 임금이 혹하여 나라가 어지러워져도 헤어나지 못할 만큼 빼어난 미인, 그 미인은 국가와 백성의 운명에 결코 긍정적인 역할은 하지 못했다. 미인 자신의 운명도 기구했고, 말로는 비극적이었다.
서시는 기원전 5세기 춘추시대 말기 월나라 사람이다. 하루는 서시가 강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었다. 이때 강물에 비친 아름다운 서시의 모습을 본 물고기가 헤엄치는 것을 잊어버려 강바닥으로 가라앉았다고 한다. 이에 ‘침어’(沈魚·물고기를 가라앉히는 미인)란 별명을 얻었다.
서시의 조국 월나라는 오나라에 패망했다.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월왕 구천의 충신 범려는 서시를 호색가인 오왕 부차에게 바친다. 아니나 다를까, 부차는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사를 태만히 했다. 이 틈을 타 월왕 구천은 부차의 오나라를 멸망시켰다.
오나라가 멸망한 뒤 서시는 다시 월왕 구천의 후궁이 되어 총애를 받지만, 결국 구천의 정부인인 월부인에게 비밀리에 제거 당했다.
왕소군이 흉노 땅으로 가는 도중 날아가는 기러기를 쳐다보며, 고향을 떠나는 비통한 마음에 비파를 탔다. 그 음악 소리를 들은 기러기들이 연주자를 내려다 본 순간, 그 미모가 너무 아름다워 날갯짓을 잊어버려 추락하였다. 이에 왕소군은 ‘낙안’(落雁·기러기를 떨어지게 하는 미인)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초선이 어느 날 뒤뜰 화원에서 달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초선의 미모에 달이 부끄러워서 구름 뒤로 숨었다. 이에 사람들은 ‘폐월’(閉月·달이 부끄러워서 구름 뒤로 숨게 하는 미인)이란 표현으로 초선의 아름다움을 형용했다.
양귀비가 화원에서 꽃을 감상하며 우울함을 달래던 중에 어쩌다 미모사를 건드렸다. 미모사는 곧바로 잎을 말아 올렸다. 이를 본 당 현종이 “꽃을 부끄럽게 만드는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칭찬했다. 이에 양귀비는 ‘수화’(羞花·꽃을 부끄럽게 하는 미인)로 불린다.
왕소군은 전한(前漢)과 흉노와의 화친정책 때문에 흉노의 왕에게 시집보내진 비극의 주인공이다.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흉노 땅에 묻혔다. 왕소군의 무덤은 겨울에도 풀이 시들지 않아 청총(靑塚)으로 불린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은 <소군원>(昭君怨·왕소군의 원망)의 일구(一句)이다.
초선은 소설 『삼국지연의』 속의 가공인물이다. 정사 『삼국지』에는 초선이란 이름은 나오지 않고, 그저 동탁의 ‘시녀’라고만 하고 있다.
양귀비를 당 현종은 ‘해어화’(解語花)라고 했다. ‘말을 알아듣는 꽃’이다. 양옥환(楊玉環)은 권력자(현종)의 눈에 들어 귀비에 책봉되었다. 비록 신분은 비(妃)였지만, 당시 황후의 자리가 공석이었기에 그 이상의 권세를 누렸다. 그러나 ‘안사의 난’이 일어나 도주하던 중 양씨 일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호위군사에 의해 살해되었다. 현종도 애첩(?)을 구할 수는 없었다.
백제의 개루왕은 도미의 아내가 아름답고 행실이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미를 잡아놓고 도미의 집으로 찾아가 강제로 도미의 처를 범하려 했다. 하지만 도미의 처가 꾀를 내어 자기 대신 계집종을 바치자, 속은 것을 알고 분노한 개루왕은 도미에게 없는 죄를 씌워서 눈알을 뽑는 형벌을 가해 장님으로 만들고, 배에 태워 강에 떠내려 보냈다.
그리고 도미의 처를 불러들여 다시 범하려 하자, 도미의 처는 월경을 하고 있다는 핑계를 대서 시간을 번 다음 배를 타고 도망쳤다. 배는 천성도로 떠내려갔고, 거기서 도미를 만났다. 부부는 고구려로 도망쳤는데, 그들을 불쌍히 여기 고구려 사람들이 옷과 밥을 주었다. 마침내 부부는 함께 살게 되었고, 객지에서 평생을 마쳤다. -삼국사기/권 제48/열전 제8 도미-
“권력은 상하기 쉬운 음식과 같습니다. 계속 끓여주고 갈아주지 않으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그 검사들이 여전히 건재한 검찰을, 검사들의 잘못이 드러나도 조직의 결정을 따랐을 뿐이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스스로 부여하는 권력기관인 검찰을 믿지 마세요.
먼 훗날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그날이 오더라도, 검찰을 맹목적으로 믿지 마세요. 견제와 균형이 흐트러지고 감시와 비판이 멈출 때, 검찰은 다시 상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임은정/계속 가보겠습니다-
임은정 검사의 책을 읽는 내내 서산대사의 시 하나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만국의 도성은 개미집 같고, (萬國都城如蟻室)
천추의 호걸들 파리 떼와 같구나. (千秋豪傑若醯鷄)
창 가득 밝은 달빛 맑은 허공 베개 삼으니, (一窓明月淸虛枕)
가없는 솔바람 곡조가 갖가지로군. (無限松風韻不齊)
박철언(1942~)을 생각한다. 서울대 법과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제8회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었다. 신군부 등장으로 1980년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법사위원으로 파견 근무했다.
박철언은 노태우의 고종사촌 처남이다. 1987년 13대 대선에서 사조직인 ‘월계수회’를 조직하여, 노태우의 대통령 당선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노태우 정부 내내 권력의 핵심부에서 승승장구하며 ‘6공의 황태자’로 불렸다.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전국구 국회의원이 되었고, 14대 총선에서 대구 수성구 갑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그러나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슬롯머신 사건’으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아 국회의원 직을 상실하고, 수감생활을 했다.
1995년 광복절 특사로 피선거권이 회복되어 15대 총선에서 자신의 지역구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16대 총선에서는 낙선, 정계 은퇴했다. 지금 누가 박철언을 기억하는가.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했던가. 모든 세상사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한다. 어떤 상태(정립, 긍정)에서 자기모순이 누적되고(반정립, 부정), 그 모순을 타파(종합, 부정의 부정)하는 방식으로 역사는 전개된다. ‘검찰독재’는 자기모순이 극에 달한 상태이므로, 검찰개혁(부정의 부정, 종합)은 필연이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절세미인과 도미의 아내, 누가 더 ‘살만한 삶’을 살았는가? 한동훈 검사의 걸음새와 임은정 검사의 걸음새, 어느 발자국이 어지럽지 않고 똑바른가. 후배 검사들어 어느 발자국을 좇을까?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 서리 맞은 단풍잎, 봄꽃보다 붉다고? 우리 산천, 그 붉음은 점점(點點)이라 단풍이 요란치 않다. 가을산은 예쁘되 단아하다. 이 만추 단풍 눈동자에 새기며 낙엽 밟다가, 석양 무렵 노을을 감상하며, 계영배(戒盈杯)로 한 잔 하련다. (完)
<작가/본지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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