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102 - 아름답게 핀 꽃이라고?

박기철 승인 2023.09.21 16:23 | 최종 수정 2023.09.21 16:49 의견 0

아름답게 핀 꽃이라고?

나이가 드니 꽃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전에는 무심히 지나쳤는데 이제 예쁜 꽃을 보면 유심히 감상합니다. 늦겨울에 매화, 초봄에 개나리, 진달래, 목련, 벚꽃, 라일락, 늦봄에 철쭉, 연산홍, 장미, 수국, 민들레, 아카시아, 초여름에 연꽃, 접시꽃, 해바라기, 한여름에 맨드라미, 가을에 코스모스, 국화가 피고 집니다. 꽃은 봄에만 피는 게 아니라 꽃에 따라 철을 돌아가면서 피고 집니다. 거대한 자연의 순환이 질서있게 움직입니다. 제가 걷기 시작하면서 가장 처음 만난 꽃은 이 접시꽃입니다. 저 접시꽃 뒤 철조망에 흐드러지게 붉게 피며 아름다움을 뽐냈을 장미는 시들어 접시꽃에게 미의 왕관을 넘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왜 꽃이라 하며, 꽃은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꼬시니까 꽃이라고 하는 것같습니다. 벌과 나비를 꼬시니까요. 알고보면 꽃은 식물의 섹시하고 요염한 생식기관입니다. 그렇게 도발적으로 이쁘게 피어야 벌과 나비가 꼬셔져 날아들어 다른 꽃에 있는 수술의 분가루를 암술의 봉오리에 묻혀 수분을 할 수 있게 하지요. 물론 하나의 꽃 안에 수술과 암술이 같이 있어서 자체 수분이 되기도 하지만 만일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씨앗으로 아주 긴 세월에 걸쳐 대를 잇는다면 그 식물의 유전자는 다양성을 잃게 되어 멸종되기 쉽습니다. 동물들도 근친 교접만 이루어지고 그렇게 아주 긴 세월에 걸쳐 대를 잇는다면 그 동물의 유전자는 다양성을 잃게 되어 멸종하기 쉽다고 합니다. 그러니 하나의 단일 혈통으로 이어지는 순종보다는 다양한 유전자가 뒤섞인 튀기 잡종(hybrid)이 더 건강한 법이지요.

활짝 핀 접시꽃 뒤에 시든 장미
활짝 핀 접시꽃 뒤에 시든 장미

그런데 요즘 꽃들은 무척 외롭습니다. 이다지도 아름답게 피었는데, 꼬셔지는 벌과 나비가 별로 없어서요. 우리 어릴 때는 노랑나비도 잡고, 벌한테 쏘이기도 하였지요. 그러니 이 꽃들은 자기들의 성적 생식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중이지요. 아름다운 여인이 서방도 없이 나이들어 꼴과 마찬가지입니다. 벌과 나비가 점점 사라져 자체 수분으로만 대를 잇는다면 이 접시꽃도 언젠가 멸종할지 모릅니다. 벌이 없어지면 우리가 꿀을 못먹는다고 걱정할 게 아니라 생태계의 건강한 순환이 깨지는 것을 우려해야 하겠지요. 독수공방 꼬실 벌과 나비도 없이 시들어가는 불쌍한 꽃들은 꼬실 게 없으니 꽃이 아닙니다.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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