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기철 교수의 머릿속 전시회 : 서울-부산 도보 生覺記 103 - 뭐, 식물인간이라고?

박기철 승인 2023.09.21 16:30 | 최종 수정 2023.09.21 16:47 의견 0

뭐, 식물인간이라고?

부산 북구 금곡동에서 남구 대연동까지 어디로 가야할까? 예전에 걸어올 때처럼 멋대가리 없이 국도따라 오로지 앞으로 행군하듯 행진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지하철 노선따라 행길로 다니면 쉽기는 하겠지만 걷는 맛이 없어서 산으로 들어가기로 하였습니다. 서울의 모산인 북한산처럼 부산의 모산이라고 할 수 있는 금정산을 넘으면 부산대 근처가 나옵니다. 그래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으로 들어가는 기분은 늘 기쁘고 즐겁지만은 않습니다. 중력을 거슬러 내 다리를 움직여 내 육중한 몸무게를 힘들게 끌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도 산에 들어가면 냄새부터 싱그럽습니다. 나무들이 빽빽하고 이름모를 풀들이 수북합니다. 수많은 식물들이 나름대로 잘 살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떤 사고로 의식없이 꼼짝 못하는 사람을 식물인간이라고 합니다. 만일 식물들이 그런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명예훼손죄로 우리인간을 고발하려 들지 않을까요? 식물은 움직일 필요가 없어서 움직이지 않을 뿐입니다. 움직이지 않아도 할 것은 다 합니다. 뿌리로 물과 양분을 빨아들여 소화도 하고, 꽃으로 생식도 하고, 잎으로 호흡도 합니다. 그리고 동물은 죽었다 깨나도 못하는 광합성을 합니다. <6CO2+12H2O+Sunlight→ C6H12O6+6O2+6H2O>라는 요 광합성 화학식은 세상에서 가장 오묘한 위대한 섭리입니다. 식물이 이산화탄소와 물을 빨아들여 내놓은 포도당과 산소 덕분에 동물은 숨쉬며 먹고 살 수 있지요.

인간에게 불만이 있을 식물
인간에게 불만이 있을 식물

식물처럼 자체적으로 영양분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우리 인간을 비롯한 동물은 광합성으로 영양을 창출하는 식물에 빌붙어 이 땅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식물의 광합성 작용이 없다면 거대한 생태계 순환은 멈추고 맙니다. 광합성이 없다면 고기도 없습니다. 초식동물이 광합성으로 이루어진 식물의 과실을 먹고 잡식동물은 그런 초식동물을 먹으니까요. 인류의 과학기술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광합성을 하는 식물을 절대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그 식물에다 대고 고마워하기는커녕 식물인간이라는 불경스런 언어를 사용하니 참 기본예의도 없습니다. 의식실종인간이라고 해야 옳지요. 사실 지구의 주인은 동물이 아니라 움직이지 않아도 조용히 영양을 만들며 땅에 박혀 살아가는 식물이 아닐까요?

<경성대 광고홍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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