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8-에세이】 청구서를 읽는 시간 - 림태주

림태주 시인

시민시대1 승인 2022.08.12 14:35 | 최종 수정 2022.08.24 10:10 의견 0

“주인 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서울 송파구의 반지하방에서 세 모녀가 사망한 채 발견됐다. 세 모녀가 남긴 편지봉투에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 70만 원과 ‘죄송하다’는 말이 적혀 있었다. 아버지가 남긴 빚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돼 취직을 못 하던 두 딸과 식당일을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팔을 다쳐 일을 못 하게 된 어머니가 생활고를 이기지 못해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2014년 당시 사회안전망의 한계를 드러낸 대표적 사건으로 주목받았다. 지하 셋방에서 살던 세 모녀는 질병을 앓고 있는 것은 물론 수입도 없는 상태였지만 국가와 자치단체가 구축한 사회보장체계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이 사건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대한 논란과 법안 개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송파 세 모녀법’으로 불리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및 「긴급복지지원법」 개정안 등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관련된 3개 법안이 그해 12월 국회를 통과했다.

오래 전 일인데도 내가 이 불행한 사건을 생생히 기억하는 이유는 세 모녀가 남긴 짧은 메모 때문이다. 빠듯한 살림이지만 한 번도 집세를 밀린 적 없던 그들이 왜 죄송하다는 말을 남기고 갔을까. 그 돈을 다 쓰고 갈 수도 있었을 텐데 왜 집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갔을까.

그 봉투는 꽤 많은 말을 하고 있었다. 매달 어김없이 돌아오는 집세 내는 날, 매달 잊지 않고 꼬박꼬박 날아오는 고지서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끼니처럼 쳐들어오는 연명의 비용들과 전쟁을 치르는 일이다. 인간의 살림과 생활은 냉정한 수치로 환산되고 어김없이 정산돼 다달이 목숨값으로 청구된다. 세 모녀가 남긴 마지막 봉투처럼 우리는 세상에 빚을 남기지 않으려고, 사람으로서의 책임과 예의를 다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사는 것이다. 살아서는 고통받고 비루했을지라도 죽어서는 존엄한 인간으로 살다 갔다고 기억되고 싶은 것이다.

언제부턴가 우편으로 배달돼 오던 각종 요금고지서들이 스마트폰이나 이메일로 전송돼 온다. 고지서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뜨고, 나는 전자문서함을 연다. 거기엔 한 달 동안 내가 쓴 생활비용이 청구돼 있다. 각종 국세나 지방세부터 수도세, 전기세, 통신비, 가스비, 인터넷 요금 등등. 내가 지난 한 달을 무사히 살았다는 증거이면서, 다시 다음 한 달을 기약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생존비용이다.

나는 계좌를 열어 일일이 납부하는 게 귀찮아서 자동이체 방식을 설정해뒀다. 자동이체는 자웅동체처럼 그야말로 나와 은행과 국가기관과 기간망들이 한 몸으로 연결돼 있음을 주지시키는 각서다. 내 통장에서 허락 없이 자동으로 돈을 빼 내가도 좋다는 무한신뢰의 관계. 나는 계좌에 찍힌 이체금액 확인을 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하면 나의 생존 이력을 찬찬히 살펴보는 일에 무감각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내가 땀 흘리고 일해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자동화된 생활 프로그램과 관리 시스템에 나의 생존을 맡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나는 그 기계적인 체계를 유지하는 지불 수단으로써 아직은 유효하고 쓸모가 있는 것이다.

청구서는 어떤 이에겐 안도의 한숨을, 어떤 이에겐 걱정의 한숨을 유발한다. 번잡한 도시를 떠나 허름한 한옥 한 채를 얻어 이사한 뒤로 나의 청구서는 자주 깊은 한숨을 내쉰다. 한겨울에는 아파트처럼 이중삼중으로 완벽하게 밀폐해 한파를 막아내지 못하니 난방비가 치솟는다. 가스요금 고지서가 날아들 때마다 보일러 컨트롤러 온도를 낮추게 된다. 올봄 가뭄은 유난히 극심했고, 나는 마당에 심은 나무와 화초와 잔디를 살리느라 어쩔 수 없이 자주 스프링클러를 돌렸다. 눈에 띄게 뛰어오른 저번 달 수도세는 나무들과 화초를 살려낸 목숨의 비용이다. 대신 날씨가 무더워지면서 가스비는 대폭 줄었다.

계절에 따라 생존비용이 달라진다. 수도세나 전기세보다 가스비가 월등하게 비싼 관계로 가스비가 절감되는 봄과 가을이 생활자들에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물론 이 계절들은 쥐꼬리만한 월급통장 잔고처럼 눈 깜짝할 새 지나간다. 이제는 좋고 나쁜 계절의 취향도 개인의 고유한 감각이나 사연에 따라 선택되는 게 아니라 고지서의 요금 상황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게 되었다.

환경이 삶을 지배한다고 했던가. 아파트나 연립이 아니라 단독주택으로 주거가 바뀌면서 공동체의 사회적 의미보다는 단독자로서의 개별적 삶을 인식하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나는 가스비와 수도세와 전기세를 비교해 보면서 문득 깨닫는다. 어느 것이 높아지면 어느 것은 낮아진다. 다 같이 높아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계절적 요인이 작용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내가 받는 실존적인 혜택이고, 정신적으로는 삶에 대한 하나의 은유로써 얻는 깨달음이다. 사는 일에 항상 좋은 것만 있지 않고 항상 나쁜 것만 있지 않다.

삶의 시간에는 좋고 나쁜 것이 늘 균형을 맞추어 함께 있다. 완전히 나쁘지 않고 완전히 좋지도 않다. 이것은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알게 되는 생활의 진리다. 그래서 희망이 있고 기대가 있고 견딜 만하고 웃을 수 있다. 삶이란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지만 사는 만큼 희망이 축적되는 기대이익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데 불행한 사건이 회자 될 때마다 청구서가 그냥 청구서로 보이지 않는다. 청구서는 단지 요금을 고지하는 계산서가 아닌 것이다. 당신은 인간으로서 잘 살고 있는가를 묻는 질문지이기도 하다. 내가 어디에 살건 어떤 집에 살건 다른 생활자들과 뗄 수 없는 관계로 연결돼 있음을 상기하게 된다.

송파구 세 모녀 사건 이후로도 생활고를 비관한 극단적 선택은 이어지고 있다. 2019년 서울 성북구의 네 모녀의 죽음, 올해 초 대전 삼부자의 비극적인 결말은 경제적, 사회적 고립과 단절이 단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계층간 소득 격차는 날로 커지고, 방치된 고독사는 점점 늘고 있다.

전통사회에서는 공동체라는 자연적 연대가 존재했다. 산업화와 도시화는 이런 연대와 질서를 무참하게 해체해버렸다. 자연적 연대의 근거가 된 공동체주의 대신 개인주의라는 가치관이 이 사회에 빠르게 뿌리내렸다. 그런데 그 가치관과 삶의 형태가 변화하고 교체되는 과정에서 공백이 생겼다. 선진국들이 그 공백을 메울 새로운 연대의 질서를 합의하고 제도화하는 동안, 우리는 더 빛나는 개발도상의 성과에 매진하느라 공동체의 연대를 대체할 만한 복지의 연대를 제대로 확립하지 못했다. 강고해져 가는 경쟁 만능과 승자독식 체제가 경제적 격차와 사회적 고립을 심화하고 있다.

청구서를 읽는 시간, 나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겨우 읽어낸다. 내가 존재의 인식 사각지대에 가려져 살고 있음을 확인한다. 나는 지난달의 내 삶의 행적을 더듬는다. 내가 과하게 낭비한 전기며 물이며 가스가 누군가의 삶을 위협한다. 사용량이 많아지면 그만큼 시설을 증설해야 하고, 원전을 계속 돌리려는 자들이 힘을 갖게 되고, 물가가 오르고, 요금을 올리게 된다.

그 피해가 누군가를 거쳐 고스란히 나에게 돌아온다. 그뿐인가. 그렇게 봄과 가을은 지구에서 지워져 간다. 청구서를 읽으며 나는 나에게 묻는다. 생의 낭비는 없었는지, 무엇에 쏠렸는지, 어떤 걸 견디고 어떤 걸 참아내지 못했는지, 나의 존재가 여기에 쓸모 있었는지 없었는지.

진실이 모호한 세상에서 내게 날아온 청구서는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실제를 보여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관한 실존적 질문이 청구서에 있다. 삶이 숫자로 환산돼 날아온다는 건 한없이 가벼운 농담 같으면서, 실존의 무게와 책임을 직시하게 하는 두려운 진담 같기도 하다. 오늘, 청구서는 붉다.

◇ 림태주 시인 :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다. 출판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관계의 물리학』, 『그리움의 문장들』, 『그토록 붉은 사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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