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시대10-에세이】 걷기에 대한 발견 - 림태주

림태주 시인

시민시대1 승인 2022.10.14 19:18 | 최종 수정 2022.10.20 09:54 의견 0

 

공항을 나서자 물기를 잔뜩 머금은 바람이 할퀴며 달려들었다. 야자수가 머리채를 붙들린 채 나부끼고 있었다. 먼바다에서 태풍이 밀어올리는 제주 바람은 거칠고 사나웠다. 날씨는 변덕스러웠고, 일기예보는 하루하루 뒤바뀌어 무용지물이었다. 펜데믹 탓에 오래 참았던 여행인데도 흐린 하늘과 미친 바람은 여행자의 들뜸과 설렘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구월의 제주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3년여 만의 비행기 여행이었다. 여행을 갈 수 있게 됐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고 기쁜 일이었다. 그동안 매번 생략한 여름휴가를 이번 가을에는 늦더라도 다녀오리라 벼르고 있었다. 어디로 갈 지 아내와 이런저런 계획을 세우다가 제주행으로 의견을 좁혔다. 아내는 숙소만 예약했을 뿐 차량을 렌트하지 않았다. 4박 5일을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며 발길 닿는대로 걷고, 필요하면 버스로 이동하며 찬찬히 구경하고 오자는 게 아내가 생각한 여행 콘셉트였다. 조금 의아했지만 모든 준비를 아내에게 맡겼다.

제주에 도착한 첫날부터 흐리고 바람 불고 빗방울이 날렸다. 아침에 일어나 배낭을 간단히 챙겨 걷기 시작했다. 오늘은 숙소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걷고, 내일은 왼쪽 방향으로 걷자는 아내의 말에 군말 없이 따랐다. 아내는 나름 목적지를 정한 듯한데 나는 어디로 가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 길이 올레길인지 일반도로인지 그런 정보도 없었다. 그냥 길을 따라 자늑자늑 걸었다. 걷다가 문득 알게 되었다. 날씨를 내내 원망했지만, 흐린 날이 걷기에 더없이 좋다는 것을.

유유자적 걷는 여행이 의외로 새로운 구경거리들을 만나게 해줬다. 걸으며 관광과 구경의 차이에 대해 생각했다. 관광이 볼거리를 찾아다니는, 대상의 객체성이 중요한 수동적 개념이라면, 구경은 목적물이 아니라 나의 관심과 발견이 더 중요한 능동적 개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걷는 여행은 내가 주체가 된다는 점에서 그 어느 것에도 속박되거나 얽매이지 않아서 자유롭다. 가다가 힘들면 아무 때나 쉴 수 있다. 정해진 시간대가 아니라 배가 고파지면 그때 식당에 들른다. 휘황한 간판을 내건 관광형 식당의 표준적인 맛이 아니라, 마을 인근 원주민의 허름한 가게에서 투박하게 차려낸 그 고장의 음식을 먹는다. 급할 일이 없으니 자주 경로를 수정하는 일이 벌어진다. 가다가 쉴 만한 곳이 있으면 들어가고, 또 색다른 골목이 나오면 방향을 틀어 들어가 보기도 한다. 그러니 자연히 시간관념이 희미해지고 목적지에 대한 인식이 옅어졌다. 어떤 장소에 어느 시간까지 도착해야 할 이유가 없으니 걷는 것 자체가 여행의 목적이 되었다.

젊은 여행자들이 스쿠터를 타고 지나가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갈 때 슬그머니 꾀가 나기도 했다. 우리도 내일은 저것들을 빌려서 타고 다녀볼까? 그렇게 말해놓고는 웃었다.

걷는 여행은 속도를 포기한 대신 자유로운 두 팔을 얻는 걸 의미한다. 같이 손잡고 걷다가 좋은 경치가 있으면 언제든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만져보거나 바라보거나 셔터를 눌렀다. 물론 그 경치가 놀랍고 신기하고 특출한 무엇이라고 할 수는 없다. 현무암 돌담 틈에 뿌리내린 다육 식물들이 신기했고, 전통가옥 대문에 놓인 정낭이 눈길을 붙들었고, 보도블럭 사이에서 꽃을 피운 루드베키아의 강인한 생명력에 끌렸다.

두 팔이 운전대를 잡고 있거나 속도를 제어하느라 발이 클러치를 밟고 있거나 차선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 시선이 도로에 갇혀 있을 때는 그 별것 아닌 별것에게 마음을 빼앗길 수 없고, 다정한 눈길을 건넬 수도 없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에게 말을 걸고 마음을 나누고 향기를 맡으려면 걷기의 속도를 유지하고, 걷기의 자유를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독서라는 말보다 읽기를, 작문이라는 말보다 쓰기를, 도보라는 말보다 걷기라는 말을 선호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 말들은 같은 명사이면서도 동사적 행위를 품고 있다. 추상적인 관념이 아닌 구체적인 몸의 체험과 정신적 작동이 들어 있다. 읽기가 단순히 소리내어 음성으로 읽는다는 의미가 아니듯이 쓰기도 단순히 종이 위에 글자를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걷기라는 것이 단순히 걸음을 걷는 유산소 운동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여행에서 말하는 걷기란 바라보기와 듣기와 공감하기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삶의 현장이다. 강정 마을을 지날 때 나는 보았다. 강정 바다에 뜬 먹구름은 바다의 고뇌 같았다. 말풍선 같은 먹구름 안에 잿빛 물음표들이 떠 있었다. 컨테이너 지붕에는 노란 깃발들이 휘날리고 있었고, 녹슨 철 구조물에 적힌 “어따대고 해군기지야”라는 문구에서 붉은 녹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흐려서, 나의 걷기가 느려서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이 선명하게 감각되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날씨의 영향을 꽤 깊게 받는다. 하루의 기분이 날씨에 좌우되기도 한다. 쾌청한 날씨와 선선한 바람은 상쾌한 기분에 빠지게 해 뭐든 좋아 보이게 만든다. 맑은 날씨는 ‘좋다’는 선입견을 만들고, 맑은 날씨의 기분을 편애하게 만들어 한쪽으로 치우치게 유도한다. 서양 격언에도 “저녁에는 의자를 사지 말라.”는 충고가 있다. 몸의 피로는 어떤 의자든 좋아 보이게 만드니 기분이 치우칠 때는 판단이나 결정을 보류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사람들은 기분이 좋을 때 “날아갈 것 같다!”는 표현을 쓴다. 식상하고 진부하지만, 가장 쉽게 기분 상태를 전달해준다. 걷는 존재인 인간은 날고 싶다는 욕망을 가만 두지 않았다. 동양인은 새의 날개처럼 ‘선녀옷’을 날개 대용으로 상상했고, 서양인은 아예 몸에 날개가 달린 요정을 상상했다. 고민 끝에 인간은 연을 만들고 열기구를 만들고 나아가 비행기를 만들고 이제는 우주선을 만들어 외계로 나아간다.

더 멀리 가고 싶은 욕망, 가보지 않은 곳에 대한 동경, 새로운 시공간을 경험해보고 싶은 모험심. 이런 것들이 인간을 여행하게 만들고, 낯선 삶과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하게 만들었으리라. 그런데 때로 어떤 인간은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인간으로 되돌아가 걷기를 선택한다. 내가 걸어서 하늘로 이륙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믿어줄까?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어서, 걸어서 날아오르기에 적당했다.

 

림태주 시인

◇ 림태주 시인 : ▷시인이자 에세이스트이다. 출판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관계의 물리학』, 『그리움의 문장들』, 『그토록 붉은 사랑』 등이 있다.

※(사)목요학술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시민시대』는 본지의 콘텐츠 제휴 매체입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