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관계가 요동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 시기 한일 위안부 합의와 문재인 정부의 사실상의 합의 백지화 그리고 이번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제징용 해법을 놓고 한일 관계가 또다시 격랑의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위안부 합의는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과 아베 전 총리 시기에 합의한 것으로 일본군 관여 인정, 일본 정부 책임 통감, 아베 총리 사죄 표명, 위안부 지원 재단 설립, 일본 정부 예산으로 자금 거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해결, 소녀상 철거 등의 내용을 담았다. 그런데 당시 박근혜 정부는 국민 여론을 묻지도 않고 일방적인 밀실 합의를 했고, 그 결과는 국민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불법행위로 인한 ‘배상’이 아니라 ‘보상’이라는 명목으로 일본 정부 예산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이후 문재인 정부는 촛불집회 이후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위안부 합의에 중대한 흠결이 있다며 합의를 사실상 폐지했지만, 합의 무효나 재협상을 공식적으로 일본 측에 요구하지는 않았다. 정부 간 약속임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하지만 기존 위안부 합의를 폐기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게 문재인 정부의 입장이었다. 위안부 합의는 이렇게 한일 간에 깔끔하게 해결되지 못한 채 현재에 이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8년 우리 대법원은 일제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피고 일본기업이 1억 원의 배상금을 각각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발단은 이랬다. 이미 고인이 된 여운택 선생께서 1997년 일본 오사카 지방법원에 강제징용으로 인한 손해배상금과 미지급된 임금을 돌려달라고 소송을 낸 것이다. 하지만 1심과 2심, 3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일본의 역대 정부가 모두 한반도 식민 지배는 합법이었다는 인식을 고수해온 상황에서 일본 법원이 일본 정부와 인식을 같이 한 결과였다. 일본 정부와 법원은 한반도 식민 지배가 1910년 한일병합조약에 의한 합법적인 지배였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여운택 선생은 여기서 좌절하지 않고 2005년 국내 법원에 같은 취지의 소송을 냈다. 일본 법원의 판결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 지배가 합법적이었고 따라서 일제의 국가 총동원령과 국민징용령이 불법이 아니라는 것이었는데, 그러한 일본 법원의 판단이 한국에서도 적용이 되느냐는 점을 묻는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우리 법원의 1심과 2심 재판은 일본 재판부의 판단에 손을 들어주었지만,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우리 대법원은 일본 법원의 판결은 대한민국 헌법의 핵심적 가치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먼저 우리 대법원은 2012년 판결에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불법 강점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대법원은 이러한 판결에 입각해서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당시 우리 대법원의 판단은 이러했다. 우리 헌법 전문에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쓰고 있는데, 이에 기초해서 판단하면 한반도와 한국인에 대한 일본의 식민 지배와 반인도적 강제 동원은 명백한 불법이라는 것이다. 또 우리 대법원은 강제 동원 피해자의 개인 배상청구권이 남아 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같은 관점에서 일본 법원과 다른 판단을 했다. "청구권 협정 협상에서 일본 정부가 끝까지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강제 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 책임을 부인해 일제의 한반도 지배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는 점에서 청구권 협정에 식민 지배와 직결된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이 포함되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한 것이다. 즉, 협상 과정에서 가해자인 일본이 불법행위와 배상 책임의 존재를 전면 부인한 상황에서 피해자인 한국이 스스로 위자료 청구권까지 포함된 내용의 청구권 협정을 체결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정리하면,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의 일본 피고 기업에 대한 위자료 청구를 인용한 2018년 우리 대법원 판결의 핵심은 일본의 한반도 식민지배가 불법이었다는 판단에 있으며, 이에 기초하여 일본의 불법적인 식민 지배에 따른 개인들의 피해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런데 이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개인 청구권 문제까지 모두 해결되었다고 보는 일본 정부의 입장과는 서로 상충한다.
이렇듯 한일 간의 갈등은 평행선을 달리듯 서로 다른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점에서 기인한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국제법상 불법인지 여부와 위안부와 강제징용이 불법적인 동원인지 여부 그리고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적인 청구권이 남아 있는지 여부에 대해 한일은 서로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일 양국은 쉽게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을 겪어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3월 16일과 17일 이틀 동안 일본을 방문하여 한일정상회담을 가졌다. 그런데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 방문 이전에 제3자 변제방식의 일제 강제징용 해법을 꺼내 들었다는 것이다. 제3자 변제방식은 일본 피고 기업이 기금을 내는 것이 아니라 제3자인 우리나라 기업들이 기금을 내고, 한국은 일본에 구상권을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러한 제3자 변제방식의 강제징용 해결방안에 대해 우리 국민들은 60% 반대와 33% 찬성 입장을 드러냈다. 반대 입장이 거의 두 배 가까이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제3자 변제방식을 고수하며, 자신이 지지율 하락이라는 정치적 역경 속에서도 국익을 위한 결단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윤 대통령의 대일외교는 여러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첫째, 민주주의 원칙인 3권분립과 법치주의를 무시한 것이다.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방식은 우리 대법원의 판결과는 다른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일제의 식민 지배가 불법이며 위안부와 강제징용 역시 불법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에서 위안부와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일본 정부가 불법적인 식민 지배를 인정하고 사과해야 하며, 불법적인 위안부 및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을 이행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은 우리 기업의 제3자 변제방식을 고집하고 일본에 대한 추후 구상권 청구를 스스로 포기한다는 언급을 한일정상회담에서 공식적으로 내놓았다. 이는 우리 대법원 판결의 핵심 취지를 윤 대통령이 따르지 않고 부정한 것으로 법치주의를 거부한 것이다.
둘째, 윤 대통령의 제3자 변제방식은 비민주적이다.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방식을 혼자 밀어붙인 것이다. 국민 여론은 반대 60% 찬성 33%였다. 국민들이 반대하는데 대통령 개인이 자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외교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민주적이지 않다. 또 언론보도(한겨레)에 따르면 우리 외교부는 일본 정부의 사과와 일본 가해 기업의 배상 참여, 이 두 가지 조건을 최저 요구선으로 정했다. 이 두 가지가 모두 관철되지 않으면 최소한 둘 중 하나는 관철되어야 한다는 협상 방침을 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최종안에는 이 두 가지 최저 요구안이 모두 빠졌고, 그 배경에는 윤석열 대통령의 강한 밀어붙이기가 있었다는 것이 복수의 정부 관계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외교부 전문 관료들의 외교 경험과 전문성을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무시한 것으로 이는 대통령이 국가 운영을 비민주적이고 자의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셋째, 우리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윤석열 대통령은 한일정삼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회담 결과가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한국 기자의 질문에 대해, 이번 제3자 변제방식을 통해 우리 국익을 추구할 근거가 마련됐다는 취지의 답변을 내놓았다. 제3자 변제방식을 통해 한일 간 관계 경색을 해소함으로써 한일 간에 경제적 협력이 긴밀해지고 한미일 안보협력이 공고화되면서 한국의 국익이 확보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는 답변이었다. 하지만 이번 제3자 변제방식이 실제로 우리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는 불분명하다. 먼저 국내 여론이 좋지 않다. 대통령 주장대로 우리 국익이 제대로 확보되었다면 여론이 좋아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한일정상회담 다음날 우리 언론들의 사설 내용은 호응 없는 외교참패, 저자세 대통령, 구상권 포기에 대한 대통령의 스스로 쐐기 박기, 일본에 일방적 양보, 대통령은 일본에 왜 갔나? 득이 아니라 실이 많다, 일본의 과거사 족쇄를 풀어주었다 등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평가가 주를 이루었다. 하물며 보수언론인 조선일보도 사설에서 한일정상회담 결과가 국민 기대에 못 미쳤으며, 일본은 윤 대통령에 호응하지 않고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고 썼다. 국민도 언론도 국익이 확보되었다고 보지 않는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윤 대통령이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어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 보다 효과적인 대응을 이루게 됨으로써 우리 안보상의 국익이 확보되었다고 주장했지만, 이런 주장도 근거가 명확하지만은 않고 논쟁적이며 불분명하다. 한미일 군사협력이 강화되면 북중러 군사협력도 강화된다. 그리고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이 더욱 고도화되면 도발이 빈번해질수록 한미일 군사협력은 더욱 강고해진다. 미중 신냉전 상황에서 한반도가 다시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신냉전의 최전선이 되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냐는 것이다. 신냉전이 한반도를 중심으로 격화되면 안보딜레마는 더욱 거세진다. 한미일과 북중러는 서로 군사비 지출을 늘리겠지만 안보 불안은 해소되지 않고 더욱 가중되는 것이다. 한미일 군사협력이 안보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보 불안을 가중하고 안보 비용만 늘리는 악순환적 상황이 우리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의 대북정책이다. 북한을 적대시하고 북한과의 대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한미일 군사협력으로 북한을 압도하려는 윤 대통령의 사고는 국익과는 거리가 멀고 위험하기까지 하다. 한미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한미일 군사협력을 확대할수록 북한은 더욱 강하게 반발하고 핵미사일을 쏘아 올리게 된다. 이런 상황은 말 그대로 안보딜레마 상황 그 자체다. 긴장과 전쟁 가능성만 고조시킬 뿐 한반도 안정은 더욱 요원해지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그 핵을 무력 시위로 공중에 쏘아 올리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게다가 신냉전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는 자신들의 외교안보적이고 군사적인 영향력을 한반도에 투사하는 것이 자신들의 국익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진 기지가 되고 한반도를 중심으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 간의 군사 충돌 위기가 고조되는 것이 우리 국익에 궁극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안보 불안정이 어떻게 우리 국익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의 국익은 북한과 대화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북한이 핵을 쏘아 올리지 못하게 관리함으로써 한반도에서 군사 충돌 가능성을 끌어내리는 데 있다. 우리 안보상의 국익은 한반도가 신냉전의 최전선으로 내닫는 상황을 막아내는 데 있는 게 아니겠는가?
넷째, 국제법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일본의 식민지 불법 지배 여부 그리고 강제 동원의 불법성에 대해서 일본 정부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일본 정부와 일본 법원의 입장을 그대로 따르는 듯한 입장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 정부와 일본 법원의 판단은 논쟁의 여지가 있으며 국제법과는 상충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한국 대통령이 이런 국제법적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한마디도 안 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가 국제법적으로 불법인지 여부에 대해 국제법 전문가들의 답변은 대체로 이렇게 정리된다. 식민 지배를 한 나라가 그 불법성을 인정한 자료는 없으며, 국제법적으로도 그 불법성이 인정된 자료도 없다는 것이다. 식민지를 운영한 나라들이 아직도 국제사회의 강대국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에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어렵고,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노력해서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받아 내기도 어려운 것이 작금의 국제사회의 현실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국제법적으로 무효인지 여부는 아직도 논쟁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일병합조약이 일본의 강박에 의해 체결된 조약인지 여부에 따라 그것이 불법인지 합법인지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강제징용의 불법성 여부는 비교적 명확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지난 1999년 “일본 내 민간기업에 일하게 하기 위한 대규모 징용은 강제 노동을 규제하는 ILO의 29호 협약 위반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게다가 일본은 1930년대 초반에 이미 ILO 협약 당사국이었기 때문에 한국인 징용 피해자들을 강제노동을 시킨 것은 협약 위반이라고 ILO는 지적했다. 식민 지배의 불법성 여부에 대한 국제법의 판단과 무관하게 일제하 한국인 강제징용은 명백한 ILO 협약 위반이자 반인도 범죄로 국제법상 불법이 맞다는 것이다.
게다가 국제규범으로서의 인권 문제를 바라보는 한국과 일본의 시각이 다르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한국은 국제사회의 인권 규범이 확산되는 상황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인권 피해자 중심주의’ 시각을 지닌 반면, 일본은 낡은 국제법 관점인 ’국가 중심주의‘ 시각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제사회와 국제법 체제에서 인권 규범이 날로 확대·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과거 지향적인 국가 중심주의와 한국의 미래지형적인 인권 피해자 중심주의가 서로 상충하면서, 한일 간의 역사 인식 갈등과 위안부 및 강제징용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국제법적 해석의 여지를 무시하고 일본 정부와 일본 법원의 판단만을 따르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친일이고 매국이라는 비판에서 윤 대통령이 쉽게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일본이 우리와 인권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고 말했는데, 이 말을 들은 대다수 우리 국민은 불편했고 경악했다. 대표적인 인권침해와 인권남용 사례인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는 일본이 어떻게 인권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라는 말인가? 독일은 ’기억·책임·미래재단‘에서 강제노역에 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이 재단의 핵심 관계자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한 말이 한일 간 위안부와 강제징용 문제에 깊은 울림과 가르침을 준다. “강제노역이라는 불의는 결코 돈으로 원상회복될 수 없다. 먼저 불의에 대한 자인과 정치지도자의 사과 그리고 그 이후에 배상”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이런 독일과 거리가 너무 멀다. 그리고 이런 일본의 손을 들어주는 윤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판단은 상당히 부정적이고 분노에 가깝다.
윤 대통령은 이번 제3자 변제방식이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일본언론에 말했는데, 이 방식은 위에서 살펴본 대로 반인권적이고 반헌법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데 대통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정책이라는 점에서 비민주적이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위안부 합의 이행과 독도 영유권 문제까지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언급했다는 게 일본 정부의 발표 내용이자 일본언론의 보도 내용이다. 일본 정부는 윤 대통령의 노력에 상응하는 노력이나 화답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윤 대통령에게 더 많은 것은 내놓으라고 다그친 것이다. 게다가 기시다 총리는 “역대 내각의 입장을 전체적으로 계승한다”라는 말로 사과를 대신했다. 그런데 기존 내각의 입장에는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사과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식민 지배가 불법이 아니고 불법적인 강제노역도 없었다는 내용도 들어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렇듯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도 없고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도 없는 제3자 방식의 강제징용 해결방안은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처참한 외교참패로 귀결되었다.
한일관계는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말로 잘 표현된다. 서로 지리적으로 가깝고 잘 지내야 하지만 서로 긴장하고 갈등하기도 쉽다는 것이다. 특히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위안부 및 강제 동원과 같은 인권 문제에 있어서 서로 완전히 다른 입장을 지닌 한일 양국의 관계가 하루아침에 좋아지기는 어렵다. 서두르면 더 멀어지고 해결이 더 어려워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위안부 합의를 서두르다가 한일 관계가 더 경색되고 멀어졌다. 이번 윤석열 정부의 강제징용 제3자 변제방식도 그 전철을 밟을 공산이 크다.
한일관계는 투 트랙(two tracks) 전략을 추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역사와 영토 문제 같이 해결이 쉽지 않은 문제는 양국이 오랜 시간을 두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반면, 경제·사회·문화교류 등은 더욱 활성화하는 데 양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경제적 상호이득이 커지고 사람들이 더 많이 왕래하며 문화가 서로 섞이는 상호작용을 가속화 하는데 양국이 더욱 집중해야 한다. 이런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의 장기화하고 제도화되면 언젠가 어려운 역사와 영토 갈등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산대학교 일반사회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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