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고귀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가? ㊦이타성은 직관이자 본능

우리는 왜 고귀한 존재가 되려고 하는가? ㊦이타성은 직관이자 본능

이상오 승인 2017.05.25 00:00 의견 0

우리의 도덕성은 집단 내에서만 한정된다면서 고차도덕(metamorality)의 필요성을 주장한 조슈아 그린(왼쪽)과 도덕적 기원을 추적한 '바른 마음'의 저자 조나단 하이트.

인간의 도덕 기제는 이타성과 함께 공감능력, 평등, 정의, 집단에 대한 충성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도덕 기제들이 빈서판(Blank Slate, 인간의 마음은 백지상태로 태어난다는 비유적 표현. 존 로크의 인간오성론에 나온 개념.) 상태로 태어난 인간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학습된 것이고 다분히 이성적인 선택의 결과물이라고 하기에는 생물학적인 근거를 지나치게 과소하게 평가한 것이다.

공감능력과 관련하여서는 거울뉴런의 존재가 발견됨으로써 타인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인식하는 생물학적 이유가 어느 정도 확인되었다. 정의나 평등에 대해서도 우리는 개체의 이익추구라는 전통적인 진화의 원칙과 모순되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 이유 또한 합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우리는 불평등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생존에 필요한 이익을 기꺼이 포기하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우연히 얻게 된 돈을 동료에게 나누어주는 최후통첩 실험에서는 기대 이하로 적은 돈을 나누어 받는 경우 대부분의 경우 분배 받기를 거부하는 행동을 보인다. 1982년 독일의 쾰른대학에서 학생 42명을 상대로 한 실험결과 평균적으로는 37%에 해당하는 몫을 분배해 주었고 50%를 분배해 준 사람들의 수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분배를 받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30%이하를 분배받을 경우 분배 자체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어떤 이유로든 공짜로 생기는 돈은 생존에 이익이 됨에도 불구하고 어디서 연유된 것인지 알 수 없는 평등에 대한 생각이 합리적인 선택을 방해하는 것이다.

이는 유인원에 대한 실험에서도 마찬가지로 확인된다. 어떤 과업을 수행한 침팬지들에게 보상으로 오이를 주다가 어느 순간 한 침팬지에게는 침팬지들이 더 좋아하는 포도를 주는 실험을 하였는데, 오이를 받은 침팬지가 오이를 먹지 않으면서 과업 수행을 거부하는 행동을 보였다. 불평등에 대한 거부반응은 비교적 지능이 높은 동물들에서 종종 나타나는 현상이다. 왜 이렇게 생존에 전혀 이익이 되지 않는 비합리적인 행동들을 하는가?

세계적인 심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다니엘 커너먼은 우리가 이성적인 판단 하에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제활동들이 사실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직관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는 가설을 제시하였다. 많은 실험에 의해 그러한 가설을 검증하여 2002년에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하였고 카너먼의 가설은 현재 행동경제학이라는 주요한 학문으로서 체계화되고 있다.

인간의 사고는 대상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을 의미하는 시스템1(fast thinking), 복잡한 계산과 노력, 주관적인 경험에 의해 시간을 두고 반응하는 시스템2(slow thinking)가 복합적으로 관여하는데, 인간이 정작 실제로 선택하고 행동하는데 있어서는 시스템2보다는 시스템1이 작동한다는 것이 가설의 요지이다. 인간이 합리적임을 대전제로 하는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homo economicus)’라는 기존 경제학의 통념을 뒤엎은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도박’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도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요소는 확률인데도, 도박에 참가하는 많은 사람들이 확률보다는 감이나 직관에 의존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직관에 대한 새로운 발견과 학문적인 접근은 뇌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더욱 빛을 발한다. 사람이 특정 행동을 할 경우 그 영역을 관장하는 뇌 부위가 먼저 활성화된다는 발견도 우리가 철석같이 믿고 있었던 ‘이성’의 실체가 마치 신기루 같은 존재일 수 있다는 의문을 갖게 한다. 인간의 의식, 무의식작용은 모두 뇌에서 비롯하므로 뇌 과학이 앞으로 많은 비밀들을 밝혀내겠지만 뇌도 신체의 일부인 이상 선택과 적응이라는 진화의 대원칙 하에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에게 이타적인 본성이 있다면 이타적 행동도 고도의 합리적 선택이 아니라 선험적인 영역, 즉 직관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직관적으로 선택하되 그 선택에 합리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 전혀 해를 주지 않더라도 도덕적으로 혐오스런 행위에 대해서는 즉각적인 거부감을 보인다. 그럼에도 그 이유는 정확히 설명하지 못한다.

직관이 먼저이고 추론은 그 다음이다. 그러한 직관이 오랜 기간에 걸친 경험이나 학습의 집적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해석만으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어 생활해 온 오랜 진화의 역사에서 상호협력과 이타성을 기초로 한 많은 도덕 기제들도 선택과 적응의 산물로서, 우리가 도덕적 직관을 가질 수 있도록 진화시킨 것이 아닐까.

하버드대학교의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굴드는 '만일 우리가 지구의 역사가 담긴 영화를 다시 돌린다고 할 때 마지막 장면에 우리 인간이 또다시 등장할 확률은 거의 0에 가깝다' 고 한다. 인간의 출현은 역사적인 필연도 아니고 중동의 어떤 부족신의 노력도 아니다. 개성도 없고 무자비하고 무계획적이고 극히 비효율적인 자연선택 과정의 우연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다행히도 인간이 사회적 동물로 진화하면서 직관적으로 볼 만한 기본적인 도덕체계를 갖추기는 하였으나 인간이 생명체로서 가진 근원적인 이기성은 결코 소멸될 수 없다.

세월호에서 선장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이기심을 넘어서 반사회적인 이기심으로 결국 살아남았고 대부분의 학생과 승무원은 진화적 본능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일방적인 이타심으로 목숨을 잃었다. 유전자 선택론자의 입장이라면 선장의 행동이나 승무원, 학생의 행동도 유전자 선택론 입장에서 설명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악인의 생존과 선인의 죽음이라는 결과를 놓고 봤을 때 느끼는 혼란은 어쩔 수 없다.

도덕성은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을 겨우 가려 놓은 판 뚜껑에 불과하고, 그 도덕성이라는 것도 신이나 고도의 이성적 작용에 의해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온 것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그러나 진화생물학의 연구 결과들은 인간을 비롯하여 생명체들에서 보이는 이타주의와 협력의 원형이 기나긴 진화과정을 통해 아래에서부터 생겨난 것이고 그 원형의 기반 위에 다양한 도덕 기제들이 위를 향해 진화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철로 위를 달리는 열차는 바다에 떠있는 배와 같다. 그 속의 개체들의 운명은 적어도 기차가 달리는 동안에는 집단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 '설국열차'에서, 열차의 꼬리칸을 겨우 얻어 탄 하층민들이 서로를 죽여야 하는 생존투쟁의 극단에 몰렸을 때, 현자 길리엄은 자신의 다리를 잘라서 제물로 내어 놓는다. 이러한 고도의 이타주의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꼬리칸의 풍토를 극적으로 바꾸게 되고 이는 다른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열차의 꼬리칸에는 한 쪽 다리가 없는 사람들이 점차 증가하고, 결국 꼬리칸 전체 집단은 생존을 유지하면서 앞 칸에 있는 이기적인 구질서를 무너뜨린다.

인간은 도덕적이어야 한다(ought)가 아니라 도덕적이다(is)라는 인식이 보다 진리에 가까우며, 우리를 더 도덕적인 존재로 만들 수 있다. 도덕성이 높은 개체들이 늘어나고 그런 개체들이 모여 집단을 이루면,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는 자연계에서 더 적합도를 높이는 선택을 받게 되고, 궁극에 가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가 한 층 더 선한 모습으로 변화해가지 않을까. <끝>

후기 : 이 글을 쓰는 데 여러 책들을 참고하고, 인용하였습니다. 2년 전쯤 한 차례 정리했다가 그 후 몇 차례 더 보완하면서 완성한 것입니다. 논문이 아닌 에세이 형식으로 쓴 글이라 어떤 책에서 어떤 내용을 인용하였는지는 밝히지 않았으며, 사실 일일이 기억도 할 수 없고 제대로 이해를 하였는지도 의문입니다.

에드워드 윌슨, 리차드 도킨스, 스티븐 제이굴드, 스티븐 핑커, 조너슨 하이트, 조슈아 그린, 다니엘 카너먼, 마틴 노왁, 프란스 드발, 장대익, 최재천, 최정규, 전중환 ... 석학들의 책을 읽으면서 진한 행복감을 느꼈습니다. 물론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넘어간 경우도 많았지만 과학의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에 대해 깊은 성찰의 길로 안내해 준 천재들을 존경하기 않을 수 없습니다. 졸필에 호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과학책을 읽는 보통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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