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로스를 가르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오른쪽). 출처: Wikimedia Commons
‘이데아’만이 ‘참된 실재’라고 본 플라톤과 달리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으로 파악되는 물질세계가 기본적인 실재이며 앎의 대상이라고 여겼습니다. 이 같은 물질세계에 대한 체계적인 물리 이론을 세우려고 처음 시도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에 대한 연구를 집대한 저작이 『피지카(자연학 physica)』입니다. 그에게 지식은 개별적인 것에 대한 감각과 경험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플라톤이 낮춰 보았던 경험과학에 정당한 권리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때까지 알려진 모든 물체의 성질과 특성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여러 현상들을 분석해 가정(가설)을 세우고 이를 통해 보편적인 법칙을 만들어 더욱 복잡하고 다양한 현상들을 설명하려고 한 것입니다. 현대 과학 방법론의 출발점을 아리스토텔레스로 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물질이론은 플라톤의 그것에 비해 그 체계가 확연히 다릅니다. 플라톤은 요소 삼각형이라는 기하학적 형상을 통해 원소의 성질을 설명한 데 반해,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질은 감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본 성질을 가지며, 원소는 그 기본 성질 자체로 만들어진 기본 물질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물질이 갖고 있는 성질은 ‘온과 건’ ‘온과 습’, ‘습과 냉’ ‘냉과 건’이라는 대립하는 속성으로 단순화시킬 수 있다고 가정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담아내는 기본 원소는 ‘불, 공기, 물, 흙’, 즉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설을 수용했습니다. 그는 지구상의 모든 물체가 흙, 물, 공기, 불 등의 4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가운데 가장 무거운 것은 흙이며 그 다음은 물, 공기 순이고 불은 가장 가볍습니다. 물체마다 특성이 다른 것은 4원소의 구성 비율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천상계는 지구상에 없는 다섯 번째 원소인 에테르 ether로 구성된다고 가정했습니다. 이것은 고귀한 천상계의 재료인 플라톤의 제5원소와 같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플라톤은 5각형으로 만들어진 정12면체가 제5원소를 이룬다고 가정했는데, 사실 원소를 구성하는 정다면체 개념은 피타고라스가 창안한 것이죠. 아리스토텔레스의 제5원소, 완전하고 영원불멸인 천상계를 구성하는 재료인 제5원소 개념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지상의 물체는 생성과 소멸을 피할 수 없다 ... 원소의 자체적인 '질적 변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 이론의 특징은 원소 자체의 ‘질적 변화’를 인정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이전 철학자들의 이론과 결정적으로 다른 차이점이기도 합니다. 피타고라스학파의 영향을 받아 최초로 4원소 이론을 제기한 엠페도클레스는 원소가 불변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변화는 얼음이 물이 되고 물이 공기가 되고 공기가 불로 바뀌듯 하나의 원소가 질적으로 인접한 다른 원소로 변화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4원소로 구성된 지상의 물체는 생성과 소멸을 피할 수 없습니다.
또 4원소가 위계질서를 갖고 있다는 것도 아리스토텔레스 4원소 이론의 특징입니다. 흙과 물은 무거운 것이기 때문에 우주의 중심(지구)이 본래의 고유한 장소라고 주장했습니다. 공기와 불은 가벼운 것이기 때문에 지구에서 높게 떠 있는 달의 오목 면이 본래의 장소라고 설명했지요. 그래서 흙이나 물은 높은 곳에서 떨어뜨리면 지면으로 수직 낙하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입니다.
이는 자발적으로 흙과 물이 본래의 고유한 장소로 돌아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과학적 지식으로 판단하면 유치하다고 생각되겠지만, 중력이란 개념은 이로부터 거의 2000년이 지나서야 뉴턴에 의해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불꽃이나 연기가 상승하는 것도 본래의 고유한 장소를 향한 자발적 운동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체의 본성에 따른 이와 같은 자발적 운동을 ‘자연운동’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이에 반해 돌을 던지거나 바람에 의해 불꽃이 흔들거리는 것은 ‘강제운동’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자연운동이든 강제운동이든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멈추게 돼 있다고 보았습니다. 지상은 천상과 달리 영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상의 물체가 생성과 소멸을 겪는 것은 필연이라고 여겼습니다.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이론은 엉터리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갈릴레이가 지상에서건 하늘에서건 ‘모든 물체는 영원히 같은 운동을 지속하려 한다(관성)’는 사실을 발견했고, 뉴턴은 이를 '관성의 법칙'으로 정립한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은 갈릴레이와 뉴턴 시대 이전 약 2000년 동안 '진리'로 통했다는 것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제5원소인 에테르는 완전한 원소 ... 천상의 세계는 완전하고 영원불멸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의 4원소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제5원소(에테르)를 상정했습니다. 그는 에테르에 대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며, 새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더 증가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고 정의했습니다. 제5원소인 에테르는 완전한 원소이며 따라서 에테르로 구성되는 천상의 세계는 당연히 변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천상의 세계에 있는 천체는 영원히 원운동을 계속합니다. 이 같은 개념 역시 가깝게는 스승인 플라톤, 멀게는 피타고라스의 사상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천체론』에서 “과거부터 전해져온 기록에 따르면 지극히 높은 곳에 있는 하늘은 전체를 보아도, 부분을 보아도 어떤 변화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예부터 항성의 위치는 변하지 않으며, 모든 천체는 영원히 원주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죠.
이렇게 볼 때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는 직접적인 경험을 즉자적으로 논리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생각은 지구의 부동성과 천동설에 대한 자연학적 토대가 되었으며, 16세기 코페르니쿠스의 등장까지 2000년 동안 인류 우주관의 뼈대를 형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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