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아인슈타인의 철학적 견해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의식과 독립적인 객관적인 실재가 있다고 믿었으며, 또한 그것은 이해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실재를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요? 앞에서도 잠시 보았듯이 아인슈타인은 경험과 이성 활동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경험주의와 합리주의(이성론)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실재를 파악하는(인식의) 수단으로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경험주의이며, 순수한 사유만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합리주의입니다.
이들 철학의 연원은 깊습니다. 고대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철학을 발전시킨 수단은 순수한 사유입니다. 데카르트는 이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통해 합리론을 정립했습니다.
"순수한 사유만으로는 물리적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이제 과학적 시선으로 보겠습니다. 과학은 일반적으로 경험이 우선됩니다. 실험이나 경험 자료 없이 순수한 사유만으로는 물리적 실체를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어떨까요? 경험 자료만으로 온전한 이론을 정립할 수 있을까요? 상대성이론을 창안한 아인슈타인의 방법론을 상기해보겠습니다. 그는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실험적이고 경험적인 자료에 주로 의존했다면, 일반상대성이론에서는 영감에 의한 직관(사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경험 자료의 축적만으로는 이론의 토대가 되는 원리를 발견하기 힘듭니다. 경험에서 원리에 이르는 논리적 경로가 없기 때문입니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여전히 형이상학적이고 기계적인 유물론이 과학자들의 정신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경험적인 형태의 지식을 절대적인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 시대 과학은 기본적으로 수집하는 과학(a collecting science)이었던 것입니다. 축적된 실험 자료를 이론적으로 입증하는 문제는 거의 제기되지 않았습니다.
이론적인 사유에 대한 필요성은 세기의 전환기에, 특히 물리학에서 강하게 대두했습니다. 그때는 그동안 축적됐던 많은 사실들이 일반화(개념화)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던 시기였습니다. 이 작업에 몰두했던 아인슈타인은 인식론의 문제, 특히 감각과 이성, 경험과 이론의 관계를 모르고서는 일반화를 달성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경험주의자들(당시 그들은 자연과학의 방법론에서 우위를 지키고 있었다)과의 논쟁에서 그들이 감각적 자료를 높이 평가하는 데 반해 아인슈타인은 이성적 사고의 역할을 고양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이 과학적 지식에서 사고의 중요성을 자주 강조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합리주의자로 분류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는 친구 베소에게 보낸 편지에서 상대성이론을 순수한 사고활동의 산물로 해석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자네의 마지막 편지를 다시 읽어보면서 나는 정말 화나는 내용을 발견했네. 순이론적인 사색이 경험주의보다 우수하다는 게 입증됐다는 바로 그 대목 말일세. 자네는 상대성이론의 발달을 그것(순이론적인 사고)으로 설명했네. 그러나 대성이론의 발견이 시사하는 바에 대한 나의 생각은 자네의 생각과 정반대라네. 즉 신뢰할 만한 이론은 일반적인 경험사실의 바탕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점이네. 고전역학은 경험적으로 인지되는 관성의 법칙에, 특수상대성이론은 광속불변성에 기초해 있지. 일반상대성이론도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등가라는 경험적 사실에 바탕해 있지 않은가." 1)
아인슈타인은 이렇듯 상대성이론을 포함해 신뢰할 만한 이론은 일반적인 경험사실에 바탕을 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즉, 일반적인 실험사실을 바탕으로 사고 작용을 통해 이론을 창안한다는 말입니다. 즉 경험과 이성을 융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성과 경험의 조화' 본보기 ... 케플러
아인슈타인은 케플러에게서도 경험과 이성의 조화를 발견했습니다. 케플러가 우주의 조화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결코 행성의 운동법칙인 조화의 법칙을 발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케플러의 훌륭한 업적은 경험 자체만을 통해서는 어떤 지식도 얻을 수 없다는 진실을 보여주는 멋진 본보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케플러에게서 협소한 경험주의와 형식에 치우치는 합리론 둘 모두를 거부하는 과학자상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실험데이터에 의존하면서도 똑같이 철학적 지식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이런 철학적 태도를 갖지 않았다면 그의 업적도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아인슈타인은 케플러에 대해 평가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케플러와 갈릴레이 등 역학 창시자들의 업적을 연구하면서 과연 감각자료에 의존하지 않고 순전히 사유만을 통해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 가능한지에 의문을 가졌고, 또 지식에 있어 감각과 이성의 관계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동시에 그는 본래 하나인 인식과정이 인위적인 방법을 통해 수많은 측면으로 분할되는 것에 주목했습니다.
예를 들어 경험주의자들은 감각적 자료에 주로 주의를 기울입니다. 인식과정에서 경험적인 측면이 절대화된 것은 원래 17세기와 18세기에 각각 영국과 프랑스의 형이상학적 유물론자들에 의해서였습니다. 나중에 경험주의는 실증주의의 인식론적 기초가 됩니다. 이들은 인식과정에서 추상적 사유의 역할을 하찮게 여겼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감각적인 인식을 절대화하는 이 같은 철학사상에도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순수한 사유가 무한한 통찰력을 갖고 있다고 믿는 이 귀족적인 환상은 소박한 실재론을 믿는 서민적인 환상과 한 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서민적인 환상에 따르면 사물은 우리가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하는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2)
소박한 실재론은 외부세계의 대상을 감각을 통해 얻는 직접적인 정보와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훨씬 정교한 리얼리즘’을 등장시킵니다. 유물론의 새로운 변화를 원자이론, 즉 직접적인 관찰에만 기초한 이론이 아니라 감각과 이성작용 모두에 기초해 있는 이론과 연관지었습니다. 물질관의 변화, 즉 맥스웰의 전자기장을 물질로 인식하는 철학적 통찰은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또 경험론과 정반대되는 인식론적 개념, 즉 합리주의가 지닌 약점에도 주목했습니다. 합리주의는 인식과정의 또 다른 측면인 인간의 이성적 활동을 절대적인 것으로 봅니다. 합리주의는 감각적인 자료를 통해서는 입증할 수 없는 자연에 대한 수학적이고 과학적인 명제들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도입되었을 뿐 아니라 이성을 초월하는 신념(신앙)에 기초한 방법론에 대응하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합리주의자들은 인식에 있어 감각적인 역할을 무시하는 대신 이성을 결정적인 위치에 앉혔습니다.
이처럼 외부세계에 대한 인식을 단지 순수한 사유를 통해 얻으려는 태도는 아인슈타인에게 끊임없는 회의를 불러일으켰습니다.
“최근까지 철학과 자연과학이 일깨워준 지식을 잠깐이나마 무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아마 경험적으로 느끼는 사물보다 ‘이데아’가 더 실제적이라는 플라톤의 주장에 전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스피노자와 헤겔에 있어서 이런 편견은 활력으로 작용해 그들의 철학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3)
이처럼 양쪽의 강점과 약점을 모두 파악한 아인슈타인은 인식과정에 대해 일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순수한 사유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지식에도 이를 수 없으며, 또한 이론적인 분석이 따르지 않는 경험적인 사실도 그것만으로는 과학의 개념을 끌어내는 데 실패하고 만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통상적인 경험에만 기초한 지식은 전혀 의지할 것이 못되며 과학적인 지식은 영원한 진리가 아니라 상대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화할 수 없다는 것을 과학의 역사는 증언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또 경험과 이론, 귀납과 연역 등과 같은 개념들은 서로 대립되거나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상호 연관돼 있다는 사실이 그에게 명확하게 다가왔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경험과 이성의 관계에 관한 문제를 다루면서 경험적인 자료의 역할을 무시하고 인식에서 이성의 역량을 절대화한 철학자들과 싸웠을 뿐 아니라 이성적인 사유의 역할을 거들떠보지도 않던 실증주의자들과 형이상학적 유물론자들과도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는 객관적인 실재를 부정한 관념론자를 비판했을 뿐 아니라 인식론적인 측면에서 감각적 경험적 태도만을 중시하는 실증주의자들도 비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창조적인 과정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 두 요소(감각과 이성)를 고려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입니다.
경험과 이성 간의 관계와 관련해 아인슈타인이 ‘비판에 답함(Reply to Criticism)’이라는 글을 통해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인 마르게노(Henry Margenau)에게 했던 답변이 흥미롭습니다. 마르게노는 아인슈타인의 입장에는 합리주의와 극단적인 경험주의의 특징이 뒤섞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마르게노의 지적이 지극히 옳다고 인정하면서도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러면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사이의 동요는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가 라고 자문하면서 다음과 같이 답했던 것입니다.
합리주의와 경험주의 사이의 동요는 어디에서 연유하는가
“하나의 논리적인 개념체계도 그 개념과 주장이 경험세계와 필연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면 물리학이 됩니다.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물리학으로서의 논리적인 개념체계를 세우려는 사람은 위험한 장애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가능한 한 직접적이고 필연적으로 경험세계와 개념을 연결시키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 경우 그의 태도는 경험적입니다. 이런 방법은 흔히 좋은 결과를 낳긴 하지만 효과를 확신하기는 힘듭니다. 왜냐하면 하나의 체계로서의 특정한 개념이나 주장을 경험적으로 주어지는 것에 한정시켜야 하는데 경험적인 것을 통해 개념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논리적인 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는 그 체계가 경험과는 독립된 논리체계라고 판단하고 다시 합리적인 태도로 기울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경험세계와의 모든 접촉을 잃기 때문에 위험합니다. 이처럼 양극단 사이에서 동요하는 것이 나에겐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4)
아인슈타인이 감각과 이성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정확히 해석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현대 물리학에서는 이론적인 사고의 역할을 고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자주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일반상대성이론 완성 이후 통일장이론에 매진할 때의 일입니다. 사실 현대의 이론은 실험사실의 종합 분석에 그치지 않고 더 높은 수준의 일반화와 추상화를 요구합니다. 그래서 수학적 가정을 통한 방법이 현대 물리학에 적용되고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통일장이론을 창안하려고 노력할 때도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소련 물리학자 바빌로프(S. I. Vavilov)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이 같은 추세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새롭고 난해한 도구에 의존하며 보통사람들의 의식에 익숙하지 않은 생소한 세계를 반영합니다. 이미지와 개념들은 눈에 보이거나 모형을 통해 이해될 수 있는 성질이 더는 아니라 수학적인 형태로 구체화되는 무한한 폭의 논리이며, 이미지와 개념은 새롭고 이해할 수 없는 세계에 세워진 질서로서 물리적인 예측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5)
아인슈타인은 감각과 이성을 영원히 의미가 변하지 않는 개념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운동하며 상호 작용한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들 개념이 더는 유연하고 유동적이라고 해서 진리와 객관적 실재를 인식하는 경로에 관해 자신이 세운 철학적으로 중대한 명제를 거부하지는 않았습니다. 이 명제는 바로 진리와 객관적 실재를 인식하는 과정은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으로부터 추상적인 일반화, 그리고 실천으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인식과정에서 경험적인 요소와 이성적인 요소의 역할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이유는 과학사를 통해 이 개념들의 의미가 변화해왔기 때문입니다. 과학적인 범주의 발달, 즉 범주들이 지닌 내용의 변화는 변증법을 모르는 사람들로 하여금 범주의 객관성을 부인하도록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여기서 시간 공간 인과율 등과 같은 개념들이 변화해온 역사를 되돌아봅니다. 이들의 본질에 관한 인식이 깊어질수록 그들의 의미는 변화되며 따라서 이 범주들은 전적으로 우리의 감각기관과 의식에 의존해 존재하며 그들의 통제를 받는다고 결론내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예컨대 고전역학에서의 인식(작용)은 양자역학에서보다 훨씬 더 분명하고 일상적입니다. 고전역학에서의 탐구대상은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는 움직이지 않는 거시적인 물체였습니다. 그런 종류의 물체를 탐구하는 사람은 그 물체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기 때문에 탐구대상의 성질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점점 물질세계의 미세한 층이나 직접적으로 감지할 수 없는 가려진 자연의 부분으로 깊이 통찰해 들어감에 따라 인식과정이 더욱더 복잡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미시적인 대상의 속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탐구자는 이성(감각이 아닌)의 활동에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 1) D.P. 그리바노프, 이영기 옮김, 아인슈타인의 철학적 견해와 상대성이론, 일빛, 1992. 186p
2), 3) 같은 책 182p
4) 같은 책 183p
5) 같은 책 188p
<'우주관 오디세이' 저자·인저리타임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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