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송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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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30 14:43 | 최종 수정 2020.06.1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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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에세이] 에테르의 귀환 /조송현
국제신문 2019-11-18
100여 년 전 앨버트 아인슈타인이 물리학에서 추방한 에테르(aether or ether)가 최근 화려하게 귀환했다. 현대 물리학의 난제인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통합하고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신비를 푼다는 막중한 임무를 띠고서.
에테르는 고대 그리스의 아이테르에서 유래한다. 어원은 ‘항상 빛나는 것’이다. 신의 제왕 제우스가 지배하는 영역을 의미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테르를 천상 세계를 구성하는 제5의 원소로 상정했다. 그는 에테르를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으며, 새로 만들어지지도 않고 소멸하지도 않으며, 더 증가하지도 않고 변하지도 않는다’고 정의했다.
2000년간 ‘고귀한 천상 세계의 물질’이란 개념으로 굳어진 에테르는 19세기 빛과 전자기장의 신비를 푸는 과정에서 인간 곁으로 다가온다. 파동인 전자기파(빛)의 매질로서 에테르가 정중히 초대된 것이다. 파동은 본질적으로 매질을 통해 전파된다. 빛도 파동이니 매질이 필요한데, 에테르는 안성맞춤인 것 같았다. 이제 에테르는 그 옛날 ‘고귀한 천상의 물질’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빛의 매질로서 물리적 요건을 충족해야만 했다. 당시 물리학자들은 에테르는 밀도는 높은데도 공기처럼 가볍고 보이지 않으면서 온 우주에 충만한 물질이라고 봤다. 또 빛의 속도의 기준이 되는 절대정지 상태여야 했다. 투명하고 움직이지 않는 안개라고 할까, 불가사의한 물질임에 틀림없다.
에테르 찾기 노력 중 ‘마이컬슨-몰리 실험’이 유명하다. 바람이 없는 날에도 연을 들고 달리면 연이 뜨듯이 정지한 에테르 안개 속을 달리는 지구에는 ‘에테르 바람’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며 그 효과를 검출하려는 실험이다. 정교한 실험인데도 에테르 효과는 포착되지 않았다. 반드시 존재해야 할 에테르의 흔적을 찾지 못한 물리학계는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에테르 없이는 빛의 요상한 행동을 설명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당시 관측에 의하면 광원이나 관측자가 어떻게 움직이든 빛의 속도는 일정했다. 매질도 없이 언제나 꼭 같은 속도로 달리는 파동(전자기파, 곧 빛)이라니.
물리학의 붕괴 위기라며 모두 전전긍긍할 때,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단칼에 베어버린 알렉산더처럼 에테르 문제를 일거에 해결한 인물이 나타났으니 그가 바로 아인슈타인이다. 그는 “에테르는 필요치 않다”고 선언했다. 아인슈타인은 운동의 상대성을 들어 “빛은 절대정지의 에테르(매질) 없이도 일정한 속도로 전파한다”며 요상한 빛의 행동을 간단히 ‘광속 불변의 원리’로 설명해버렸다. (특수)상대성이론의 성공은 아인슈타인의 기상천외한 선언이 옳았음을 보증해주었다. 이로써 빛의 매질이자 절대기준계로 상정된 에테르는 상대성이론이라는 혁명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듯했다.
에테르가 소환된 것은 1990년대 이후 우주의 거대구조를 설명하는 상대성이론과 미시세계를 기술하는 양자역학의 통합작업이 난항을 겪으면서다. 미국 메린랜드대학 자콥슨 교수팀은 2000년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에서 에테르의 허용 가능성을 발견하고 ‘아인슈타인-에테르 이론’을 제안했다. 더욱 주목되는 것은 에테르가 현재 물리학계의 가장 뜨거운 감자인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의 신비를 푸는 열쇠로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프라하의 체코과학아카데미 연구팀은 에테르가 암흑물질을 설명하고, 영국 맨체스터의 천체물리학센터 연구팀은 에테르가 암흑에너지를 설명할 수 있음을 제안하는 논문을 지난해 발표했다.
아직 에테르의 존재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증거의 부재가 부재의 증거는 아니다. 아인슈타인도 “불필요하다”고 했지 부재를 증명한 것은 아니다. 물리학계는 또다시 에테르 찾기에 나섰다. 이왕 우주의 신비를 풀어줄 열쇠라면 심미적으로도 ‘암흑물질’이나 ‘암흑에너지’보다야 고귀한 천상의 물질 ‘에테르’가 낫지 않겠는가. 실패한 아이디어의 대명사였던 에테르가 100여년 만에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존재로 화려하게 귀환한 것이다.
<웹진 인저리타임 대표·동아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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