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관 오디세이 - 상대성이론, 시간과 공간 개념의 혁명
절대온도 단위 켈빈으로 잘 알려진 윌리엄 톰슨(켈빈 경)은 19세기의 마지막 해인 1900년 미국 볼티모어에서 ‘열과 빛에 관한 역학적 이론에 드리워진 조각구름’이란 제목의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물리학의 하늘은 대체로 맑다. 에테르와 흑체복사 문제 등 두 개의 조각구름이 떠 있을 뿐이다.”1)
켈빈 경은 같은 해 영국 과학협회에서 “물리학에서 새롭게 발견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단지 측정의 정확도를 높이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고 공언했습니다. 심지어 양자론 창시자인 막스 플랑크는 지도교수에게 물리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가 "물리학은 연구가 다 끝났으므로 다른 분야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켈빈 경과 플랑크의 지도교수의 전망은 틀렸다는 것이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났습니다. 켈빈 경이 지적한 두 개의 작은 조각구름은 물리학계에 폭풍을 몰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 폭풍은 뉴턴물리학 체계를 뒤엎고 새로운 물리학 체계의 양대 기둥인 상대성이론과 양자론의 탄생을 가져왔습니다.
당시까지만 해도 뉴턴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학은 워낙 성공적이어서 물리학자들이 낙관적인 전망을 내놓은 것은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뉴턴역학과 맥스웰의 이론을 결합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맥스웰의 전자기학 이론은 전자기파(빛)가 파동임을 분명히 합니다. 뉴턴역학에 의하면 파동이 전달되기 위해서는 매질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빛은 진공에서도 전달될 뿐만 아니라 전파 속도가 모든 기준에서 똑같이 초속 30만km입니다. 이 같은 사실은 뉴턴역학의 상식으로는 납득할 수 없는 것입니다. 뉴턴역학과 전자기학의 융화가 불가능하며, 따라서 둘 중 어느 하나가 폐기돼야 할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이 돌파구를 연 사람이 아인슈타인이며, 그 결과물이 특수상대성이론입니다. 특수상대성이론은 뉴턴역학과 전자기학을 융합하는 과정에서 탄생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뉴턴역학이 다루지 않았던 전자기 장(electromagnetic field)의 개념을 연구함으로써 도출되었습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맥스웰의 전자기학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전기와 자기는 같은 몸의 다른 얼굴
빛과 전기 그리고 자기에 관한 연구는 오래 전부터 물리학의 주요 분야였습니다. 18세기 후반까지 이들 세 종류의 자연현상은 각기 다른 물리적 실체로 여겨졌으며, 이들에 대한 연구도 별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전기와 자기 현상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덴마크의 물리학자 외르스테드(Oersted, 1777~1851)와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페르(Ampere, 1775~1836)가 기여한 바가 큽니다.
외르스테드는 전선에 흐르는 전류가 전선 근처에 있는 자기바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전기장의 변화가 자기장의 변화를 동반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곧 전기장과 자기장을 연결해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의 단초를 제공했습니다.
전류의 단위로 이름을 남긴 앙페르도 전기와 자기의 통일성을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실험을 했습니다. 서로 평행하게 놓여 있는 두 전선을 따라 전류를 흘려보내면 마치 자기적인 인력과 척력처럼 서로 영향을 미치는 것을 관찰했던 것입니다. 그는 또 지구 속에 전류와 비슷한 어떤 현상이 있다는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모든 자기 현상을 순전히 전기적인 사건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환원시켰습니다.
이런 발견들은 전기와 자기의 물질적인 속성을 아는 데 상당한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마이클 패러데이(Michael Faraday,1791~1851)가 장(field)의 문제를 탐구하는 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패러데이는 외르스테드의 실험과는 거꾸로 자기장을 변화시키면 전선에 유도전류가 생기며, 그 결과 전기장이 형성된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1822년부터 자기로부터 전류를 만드는 실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도선 곁에 자석을 두기도 하고, 자석에 도선을 감기도 하고, 단순한 코일을 나선모양으로 바꾸어 그 안에 철심을 넣어 보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실험은 전기와 자기현상이 서로 내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일련의 새로운 실험들을 통해 그는 1831년 마침내 전자기유도 현상을 발견하였으며, 이것이 바로 인류 문명의 향방을 바꾼 발전기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난 패러데이는 성실과 겸양의 미덕을 가졌던 위대한 실험 물리학자로 그의 이 발견은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으로 이어져 과학사의 빛나는 업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패러데이는 전기장과 자기장 사이의 내적 관계만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역선(力線 lines of force)을 이용해 장(field)의 개념을 가시화했습니다. 이는 물리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패러데이는 전기력과 자기력이 작용하는 공간상의 각각의 점을 기하학적으로 조사해본 후 장의 물리적인 속성에 대해 결론을 내렸습니다. 즉, 힘과 물질의 개념을 분리시킬 필요가 없으며, 힘이 작용하는 두 물체 사이의 공간에는 ‘어떤 것’으로 채워져 있는데 그는 그것을 '장(field)'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장이라는 개념을 가시화하기 위해 패러데이는 역선을 이용했던 것입니다.
패러데이는 자석이 공간상으로 떨어져 있는 어떤 물체에 힘을 미친다는 사실을 통해 자석 내부뿐만 아니라 바깥에도 물리적인 역선이 존재한다고 추론했습니다. 그 역선은 직선뿐만 아니라 곡선 형태로도 존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패러데이는 전기적인 역선에 대해서도 똑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자기역선과 마찬가지로 전기역선도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전기 연구를 통해 거리에 따른 인력의 존재를 파악했습니다. 또 동전기의 경우에도 역선의 존재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역선은 자석의 역선과 그 성질이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패러데이와 외르스테드, 앙페르의 여러 실험 결과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한층 확장한 과학자가 바로 전자기학의 뉴턴이라 불리는 수리물리학자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입니다. 맥스웰이 사망한 해(1879년)에 아인슈타인이 태어났다는 것은 우연 이상의 과학사적 의미를 지닙니다. 맥스웰이 세운 전자기장이론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갈릴레이가 사망한 직후 태어난 뉴턴이 갈릴레이의 업적을 토대로 과학의 꽃을 피운 사실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습니다.
맥스웰은 패러데이 등의 실험데이터를 이용해 전자기 현상에 대한 현대적인 개념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그는 두 물체 사이의 공간을 메우고 있는 매질이 물리적으로 어떤 속성을 갖는가에 대해 탐구했습니다.
맥스웰은 전기장과 자기장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출발점으로 삼아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이라는 개념을 고안해 전자기장이론 창안에 착수했습니다. 그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상호작용에 관한 패러데이의 발견을 수학적으로 정식화하면서 놀랄 만한 사실을 포착했습니다. 즉, 장의 변화는 매우 빠르지만 유한한 속도(빛의 속도)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장의 변화가 유한한 속도로 전달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물리학사의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그 이전까지 절대 진리로 여겨졌던 뉴턴역학에 의하면 힘은 공간을 통해 즉각(무한한 속도로) 전달됩니다. 우주의 어느 한 부분에서 요동이 일어나면 온 우주에서 즉각 감지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후반의 혁명적 발견 : 전자기파 속도의 유한성, 빛은 전자기파의 일종
그러나 맥스웰은 탁월한 관찰을 통해 전기와 자기의 효과는 뉴턴의 힘처럼 즉각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유한한 속도로 전파된다는 것을 알아챘습니다. 즉, 전기와 자기의 효과가 전달되는 데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전자기적 작용에 시간이 걸린다는 생각은 맥스웰에게도 청천벽력 같은 충격이었습니다.
맥스웰은 자석을 흔들면 부근의 철가루가 반응을 보일 때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린다는 사실을 간파했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진 경우를 상상해보겠습니다. 물결은 원을 그리며 호수가로 퍼져나갑니다. 이 물결이 호수 가장자리까지 전파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할 수 있습니다.
만약 호수의 표면이 거미줄 같은 그물로 이뤄져 있다고 생각해보겠습니다. 역시 그물의 한가운데에 돌을 던지면 그물은 흔들리면서 파동을 일으키고 이 파동은 바깥으로 퍼져나갈 것입니다. 이 과정은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뉴턴의 힘’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물처럼 장도 어떤 일정한 속도로 진행하는 파동이 생기는 것을 허용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맥스웰은 전자기장이 전달속도의 유한함을 확신했습니다.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실험에서 확인한 전기장과 자기장의 변증법적인 현상에 주목했습니다. 자기장이 전기장을 만들고, 그 반대로 전기장이 자기장을 만드는 현상은 신비롭지만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발전기(수력발전)와 모터(선풍기)의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댐에서 떨어지는 물의 힘으로 자석을 돌리면 자기장의 변화가 주변 전선 속의 전자를 움직이게 합니다. 이것이 전류(전기장)인데, 전선을 타고 선풍기의 코일을 따라 흐르면 자기장이 발생해 자석을 움직입니다. 이 힘에 의해 모터에 붙은 날개가 돌아갑니다.
맥스웰은 천재적 능력을 발휘하여 이 두 효과를 한데 엮었습니다. 자기장이 전기장을 만들고 이 반대 과정도 일어난다면, 이 두 가지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과 결과가 되는 순환패턴을 이끌어낼 것입니다. 맥스웰은 곧바로 이 순환패턴이 연속적으로 움직이는 전기장과 자기장의 다발을 만들어낼 것이며, 이 모두가 조화롭게 진동하면서 영원토록 끊이지 않는 상호유도작용을 계속할 것이란 점을 깨달았습니다.
맥스웰은 이 진동하는 파동의 구체적인 속도를 계산했습니다. 놀랍게도 그 속도는 빛의 속도와 같았습니다. 그는 이처럼 진동하는 파동을 바로 빛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는 아마 19세기의 가장 혁명적인 서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맥스웰은 이어 "우리는 빛이 전기와 자기 현상을 일으키며 매질 속에서 횡적으로 진동하는 파동들로 이뤄졌다는 결론을 거의 피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수천 년 동안 빛의 본질에 대해 숙고해왔던 과학자들은 마침내 그 가장 깊은 신비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뉴턴의 힘과 달리 이 장들은 일정한 속도, 곧 빛의 속도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1864년 맥스웰은 이 같은 전자기장의 동역학적인 메커니즘을 ‘맥스웰 방정식’으로 정식화했습니다. 이것은 8개의 편미분방정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신의 방정식’이라고 불릴 만큼 아름다운 방정식입니다. 이것은 17세기 뉴턴의 업적과 20세기 아인슈타인의 업적 사이에 존재하는 가장 뛰어난 이론적 성취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맥스웰 방정식을 풀면 장이 시간적으로 변화하지 않을 때는 쿨롱 장, 즉 쿨롱의 법칙을 만족시키는 정전기장이 구해집니다. 하지만 장이 시간적으로 변할 때의 일반 해(general solution)는 놀라운 결과를 제시합니다. 전기장의 변화는 그것과 수직한 방향으로 자기장을 생성하고, 자기장의 변화는 그것과 수직한 방향으로 전기장을 생성하여 자기장은 같은 위상이면서도 서로 수직으로 진동하는 파동이 되어 공간 속에서 진행한다는 사실이 유도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동하는 파를 전자기파(electomagnetic wave)라고 맥스웰은 이름 붙였습니다.
전자기파는 전하(electric charge)나 전류로부터 나오지만, 일단 사출되면 전기장의 변화는 자기장을 생기게 하고, 자기장의 변화는 전기장을 생기게 하여 전기장과 자기장이 서로 상대방의 원천이 되어서 공간 속에서 진행하여 에너지를 운반합니다.
맥스웰은 이런 과정들이 새끼줄 꼬이듯 연속적으로 진행된다고 보았습니다. 전기장과 자기장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짧고 빠르게 뛰어오르며 계속해서 서로의 등을 짚고 넘어갑니다. 그는 이것을 ‘얼싸안기(mutual embrace)’라고 표현했습니다. 맥스웰은 이러한 추론에 의해서 전자기파의 존재를 예언했습니다.
또 그는 전자기파가 전파하는 속도를 이론적으로 초속 30만km라는 것을 계산해내었습니다. 이 속도는 빛의 속도와 일치하므로 맥스웰은 한 걸음 더 나아가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이라는 대담한 가설을 제안하기에 이르렀으며, 이것이 유명한 맥스웰의 ‘빛의 전자기파설’입니다.
※ 1) "Nineteenth century clouds over the dynamical theory of heat and light", delivered on 27 April, 1900 before the Royal Institution of Great Britain and published in Philos. Mag. (ser. 6) 2, 1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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