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와 종자기의 지음지교를 그린 상상도. 출처: 매일두조(kknews)
춘추시대 때 백아伯牙라는 거문고의 명수가 있었다. 친구인 종자기鍾子期는 백아가 거문고를 타서 높은 산의 모습을 표현하려고 하면, ‘야, 굉장하다. 높이 치솟는 느낌인데, 마치 태산 같구나’며 칭찬해 주었다. 흐르는 물의 기상을 표현하려고 하면, ‘정말 좋다. 양양하게 물이 흐르는 느낌인데, 마치 장강이나 황하 같구나’하고 기뻐해 주었다.
이런 식이라 백아가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거문고에 의탁하는 기분을 종자기는 정확하게 들어서 틀리는 법이 없었다.
어느 날 두 사람은 함께 태산 깊숙이 들어간 일이 있었다. 그런데 도중에 갑자기 큰 비를 만나 두 사람은 어느 바위 밑에 은신했으나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비는 그치지 않고 물에 씻겨 흐르는 토사土砂 소리만 요란했다.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백아는 언제나 떼어놓는 일이 없는 거문고를 집어 들고 서서히 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임우지곡霖雨之曲, 다음에는 붕산지곡崩山之曲을 연주했다. 한 곡을 끝낼 때마다 여전히 종자기는 정확하게 그 곡의 취지를 알아맞히고 칭찬해 주었다.
그것은 항상 있었던 일이었으나 그런 사태 속에서도 하나도 틀리지 않고 자기의 음악을 알아주는 종자기에게 크게 감격한 백아는 거문고를 내려놓고 말했다.
“아아, 정말 자네의 듣는 귀는 굉장하네. 자네의 그 마음의 깊이는 내 맘 그대로가 아닌가. 자네 앞에 나오면 나는 거문고 소리를 속일 수 없네.”
두 사람은 그만큼 마음이 맞는 친구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불행하게도 종자기는 병을 얻어 죽고 말았다.
그러자 백아는 그토록 거문고에 혼을 기울여 일세의 명인으로 일컬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용하던 거문고를 부숴버리고 줄을 끊어(백아절현 伯牙絶絃) 죽을 때까지 두 번 다시 거문고를 들지 않았다.1)
“송원아, 폐차 값만 주고 가져가라. 시골 생활에서는 차가 발이다.”
1년여 만에 만난 친구 A가 권했다. 자신은 1톤 트럭을 신차로 이미 뽑았단다. 공짜로 주고 싶지만 아내의 눈치가 보인다며 30만 원만 달라고 했다. 그것도 자신에게 말고 아내에게 주란다.
맞는 말이다. 볼일로 읍내라도 나갈라치면 버스 기다리는 게 고역이다. 그러나 찻값도 문제이거니와 보험료며 유지비 때문에 언감생심이었다. 월 100만 원 내외로 겨우 생활을 꾸려가는 처지다. 책값만 들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욕심을 내볼 만한 유혹이지만, 편리하자고 내 근본은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하여 친구의 딱 맞춤한 중매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한데 세상일이란 우리의 헤아림 너머로 작동한다. 그 이튿날 친구 B에게서 전화가 왔다. 읍내에서 작은 사업을 하는 친구다. 주로 군청 일을 도급하는데 행정서류가 많다고 했다. 하여 내 귀향 소식을 듣고는 대신 관청 출입을 좀 해달란다. 책값 정도는 책임지겠다며. 다만, 시간을 다투는 경우도 있으니 차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트라제 2000년산, 이제 어엿한 ‘오너 드라이버’로 승격했다. 누가 요즘은 인격보다는 ‘차격車格’이라 했던가. 요 근래 5년여 동안은 ‘무격無格’이었으니 하품下品일망정 승격이 적실한 표현이다. 더구나 망외의 소득이 특별났다. 역시 늦복이 터지나 보다.
낙향 10여 년 동안 10번의 겨울을 친구 C에게 의지해 왔다. 겨울에는 뭐니 뭐니 해도 ‘따뜻함’이 보배다. 내 8평 서재는 재래식 아궁이이다. 하여 군불 나무가 많이 든다. 친구는 10동이 넘는 비닐하우스에 딸기, 부추, 수박 등을 재배하고 밤나무 산도 8정보 남짓이나 관리한다.
죽은 밤나무를 기계톱으로 베어 넘어뜨린다. 잔가지는 불쏘시개로 간추린다. 큰 가지와 줄기는 장작으로 패기 좋게 한 자 반 길이로 자른다. 그것들을 1톤 트럭에 고봉을 싣고 우리 집에 온다. 물론 내가 조수로 일을 거들기는 한다. 이렇게 해마다 땔감 두 트럭으로 겨울을 났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그래서 밥값이 든다. 밥값 벌충하러 객지에 1년 남짓 가 있었다. C 친구의 트럭으로 책 몇 권과 옷가지를 정리해 작년 11월 중순에 귀향했다. 오니 모옥은 의구依舊한데 땔나무가 없다. 신문지며 감나무 낙엽을 긁어모아 지펴도 솥전이 뜨거워지지 않는다. 아궁이에 재만 찰 뿐이다. 냉돌은 이불로 어떻게든 감당해 보겠는데 웃풍은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코끝이 시리다. 콧물이 나온다. 머리까지 아프다. 이래선 밤에는 물론 낮에도 책을 볼 수 없는데... 걱정이다. 해마다의 겪을 일이건만 어리석게도 귀향 작심 때 예상에 넣지 않은 복병이었다.
“겨울에 몸이 얼면 약도 없다. 이제 나이 좀 생각해라.”
귀향한지 1주일, 한파가 닥친다는 일기예보가 있은 지 하루만에 C가 땔나무 하러 가자며 왔다. 내가 몸이 얼고 있는데 어찌 모르랴. 몇 번이라도 전화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차마 전화를 넣지 못했다. 딸기 수확 철이다. 되게 바쁠 때이다. 더구나 요즘은 일손도 부족하다. 친구 아내의 눈 흘김도 예사로 봐 넘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친구는 이런 내 속내를 훤히 꿰뚫은 모양이었다. 그 바쁜 와중에도 틈틈이 밤나무 산에다 무더기무더기 땔나무를 장만해 두었다. 같이 트럭에 싣는 것으로 보름치 땔감은 마련되었다. 다음번은 이번 한파 넘기고 나서 시간을 내자고 했다.
트라제, 참 좋은 차이다. 6인승이다. 맨 뒤 의자 둘을 앞으로 당기면 제법 공간이 널찍해진다. 연식이 오래됐으니 나에겐 안성맞춤이다. 동네 뒷산에서 몇 동네 건너까지 임도가 났다. 임도를 내면서 베어 넘어뜨린 나무가 길 아래 켜켜이 쟁여있다. 지게질에도 이골이 나 있다. 그러나 지게질은 흘러간 장면, 체력 상으로 시간적으로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다. 불땀 좋을 만치 마른 잡목을 간종그려 트라제로 싣고 오는 데 3시간, 1주일 땔감은 좋이 마련되었다.
C가 자신이 소속한 단체의 일을 상의하러 내 집에 왔다. 마당 한 녘에 수북한 나무 가리를 보자 맑게 미소를 피워 올렸다. 내 얼굴에도 자연스레 미소가 흘러나왔다.
알아주는 사람의 미소, 알아주는 사람을 알아보는 사람의 미소. 이심전심이다.
망외의 소득은 또 있다. 트라제는 축지법을 쓴다. 버스를 타고 내리고, 또 타고 내리고, 다시 타고 내려야 비로소 도착할 곳을 한 번 타서 내리기만 하면 갈 수 있게 도술을 부린다.
秋夜雨中 추야우중 / 崔致遠 최치원
秋風唯苦吟 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 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 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 등전만리심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
세상에 알아주는 이 드물구나.
창밖엔 한밤중, 비가 내리고
등불 앞 내 마음, 만 리를 달리네.
최치원은 고향이 그리웠을까, 알아주는 사람이 그리웠을까? 고향은 없어도 기다리는 임은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삶이란 큰 책, 무자서無字書를 읽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세상의 한 부분만 저자의 인식대로 저술한 책, 유자서有字書를 읽는 사람을 알아준다. 지음知音이다. 그러면 유자서는 무자서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모든 훌륭한 것은 힘들 뿐 아니라 그만큼 드물다.(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 But all things excellent are as difficult as they are rare.)2)
※1)한국고전신서편찬회 編, 『동양 고사성어』, <伯牙絶絃>(홍신문화사, 1988)
2)B. 스피노자 지음/강영계 옮김, 『에티카』(서광사, 2010), 3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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