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노드베스트차이퉁>은 2016년 5월 25일 창가에 매달려 떨어질 위기에 처한 흑인 아이를 구한 환경미화원들의 사연을 보도했는데, 이후 자사 페이스북에 “환경미화원이 그 아이를 쓰레기처럼 생각하고 처리하는 게 더 나았을 것”이라는 댓글이 달리자 발견 직후 삭제하고 작성자를 검찰에 고발 조치했다. 법원은 2017년 8월 국민선동죄로 작성자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¹⁾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최근 유튜브에는 문재인 대통령 건강이상설, 노회찬 전 의원 타살설, 북한의 국민연금 200조원 요구설, 쌀 200만톤 퍼주기설, 북한의 박근혜 탄핵 지령설, 5·18 북한군 개입설 등의 허무맹랑한 음모론이 돌아다니고 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구독자 수 상위 40개 ‘보수우파’ 채널 가운데 28곳이 허위정보(가짜뉴스) 하나 이상을 다뤘고, 서로의 허위정보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확대 재생산하면서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따라서 가짜뉴스 창구가 돼버린 유튜브에 사회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유튜브는 막강한 미디어 플랫폼으로서 영향력이 지대하다. 유튜브가 일일이 진위를 판단하고 단속할 수 없다는 반론이 나오지만, 문제 콘텐츠의 확산을 방치하고 부추기면서 이익을 내는 시스템이 진짜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는 허위정보에 대한 국내 기자회견을 단 한 차례도 열지 않았다. 그러므로 유튜브를 분석하고 감시하면서, 한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고 막대한 이익을 내는데 왜 해외와 달리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지, 계속 묻고 정보를 공개하도록 요구하고 대책을 끌어내야 한다²⁾,는 것이다.
그러나 가짜뉴스에 있어 유튜브만의 문제일까? <제이티비시>(jtbc) 태블릿피시 조작설은 논점을 달리해서 지금도 퍼지고 있다. 애초 <조선일보>등의 주장이 불씨를 키웠다. ‘정부여당 개헌 뒤 고려연방제 추진’이나 ‘5·18 북한 특수군 개입’ 주장도 기존 보수언론들이 ‘사회주의 개헌’ 등으로 밑밥을 깔아준 덕에 여러 채널에서 새 버전으로 상영 중이다. (조선일보의) 김일성 사망설, 현송월 처형설 오보의 전통이 5·18 북한 특수군 개입, 풍계리 갱도 연막탄 흔적, 취재비 1만 달러 요구 오보로 이어졌다. 평화를 위협하는 가짜뉴스들이다.³⁾
이뿐 아니다.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이 계속되던 2017년. 핵산업계와 일부 보수 언론은 태양광 패널이 납, 크롬, 카드뮴 같은 중금속 덩어리라는 주장을 펼쳤다. “태양광 패널의 독성이 핵발전의 300배 이상”이라는 보도가 계속 이어졌다. 그러나 국내에서 사용 중인 태양광 패널엔 크롬이나 카드뮴 같은 중금속은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납은 전선을 연결할 때 사용하는 정도(중량대비 0.1% 이하)이다.
한데도 태양광 괴담은 계속 발전을 거듭해 왔다. 이제 태양광 패널은 단순한 ‘중금속 범벅’이 아니라, 토양은 물론 수질까지 오염시키는 ‘유해물질’이 되고 있다. 잘못된 정보로 일부 주민들이 반발하고, 정치권은 이를 다시 정부 에너지 정책 비판에 사용한다. 언론은 이를 다시 보도하는 악순환이 1년째 계속되고 있다.⁴⁾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가짜뉴스를 겨냥해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사회의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이며, 다른 계층이나 집단에 대한 증오를 야기해 사회통합을 흔들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민주주의 교란범”이라며 범정부 차원의 가짜뉴스 엄단 방침을 밝혔다.
그렇지만 정작 가짜뉴스에 대한 정의는 쉽지 않다. “가짜뉴스란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고의로 거짓 또는 왜곡된 사실을 언론 보도로 오인하게 하는 내용의 정보”(자유한국당이 발의한 ‘정보통신망법 개정안’)라고 하지만 개념이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나아가 어쨌든 가짜뉴스에 대한 설득력 있는 개념 정의를 하고, 처벌법을 만들어 대처하면 가짜뉴스의 폐해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하다. 차라리 민주주의의 대들보인 ‘표현의 자유’만 가로막을 뿐이다. 예를 들어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가짜뉴스 대책이 있었다고 가정해 보자. 포털 같은 사업자들은 ‘다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소유다’, ‘최순실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제기를 가짜뉴스로 보고 삭제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짜뉴스 유통을 정부가 규제하는 국가를 찾아보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저서 <말이 칼이 될 때>를 통해 혐오차별 표현을 형사처벌할 경우 벌어지는 문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법이 기준을 제시하면 처벌을 피하는 표현을 쓰는 전략적인 발화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대신 감정적인 사람들만 심판 받을 우려가 있고 △충분히 문제적인 표현을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문제없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고 △표현의 자유 수준이 낮은 나라에서는 기존의 제도와 맞물려 정치적으로 남용될 우려가 있고 △처벌의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데다 시행 중인 국가의 실제 집행 내역도 미미하다.⁵⁾
가짜뉴스는 공론장을 왜곡해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점에 반드시 도태시켜야 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대책이 민주주의 기둥인 ‘표현의 자유’에 재갈을 물릴 수도 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최근 <한겨레신문>의 탐사보도로 가짜뉴스 대책에 대한 관심이 정치권에까지 뜨겁다. 그러나 국내 언론의 가짜뉴스 대책에 대한 열기는 반편뿐임에 아쉬움이 크게 든다.
곧 가짜뉴스의 공급자 측면만 문제 삼고 있는 듯이 보인다. 불량생산품의 근절에는 생산자 처벌보다는 소비자의 외면이 절대적인 작용을 한다. 가짜뉴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가짜뉴스 소비자들에 대한 분석과 대책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Time>지는 지난 8월 20일자에서 가짜뉴스 수용자 측면을 진지하게 다루고, 그 대책에 대한 탁월한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2회에 걸쳐 번역, 소개하려 한다.
※정철운, 「가짜뉴스 해답은 진짜뉴스다」, 『미디어오늘』, 2018년 10월 10일. 2)금준경, 「‘가짜뉴스’ 창구 돼버린 유튜브와 사회적 책임」, 『미디어오늘』, 2018년 10월 3일. 3)김이택, 「가짜뉴스, ‘진짜 아닌’ 뉴스」, 『한겨레신문』, 2018년 10월 18일. 4)이헌석(에너지정의행동 대표), 「사라지지 않는 가짜뉴스 태양광 중금속 괴담」, 『미디어오늘』, 2018년 10월 10일. 5)금준경, 「“유럽처럼 가짜뉴스 규제하자”는 기사가 놓친 핵심들」, 『미디어오늘』, 2018년 10월 10일.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