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77) 시집은 왜 내는가?, 서봉교
손현숙
승인
2022.11.25 17:28 | 최종 수정 2023.03.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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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은 왜 내는가?
서봉교
4년 전 애들 불장난처럼 낸 시집이
잊혀져 갈 무렵
우연히 검색하다가 발견한 계모 같은 마누라
그것도 중고 서점이라니
권 당 4천 원
저자도 꿈도 못 꿀 그 가격
저것을 주문을 해 말어
누가 내다 팔았을까
핏덩이를 몰래 내다 버리고
성장한 아이를 보고
쉽사리 접근 못 하는 부모들처럼
심란한데
밥도 안되고 그렇다고 돈도 안되는
시집은
왜 내는가?
서봉교 시집 《침을 허락하다》을 읽었다. ‘시로여는세상’. 2022.
지금 세상에 누가 시를 쓸까, 읽을까? 밥도 명예도 자랑조차 되지 않는 시에 목을 맬까? 그러거나 말거나 이 골목에서는 시 한 줄, 한 단어, 조사 하나에 밤도 새우고 마음도 다치고 더러는 시절 인연을 절단내기도 한다. 그렇게 시인은 무위하게 시를 쓰고, 발표하고, 다시 그 시들을 모아서 한 권의 시집을 완성한다. 그리고 서로 나눠 읽고 감동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어쨌거나 안다, 우리도. 문학이라는 이 작은 골목을 살짝만 벗어나도 여기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감동은 관심조차 받지 못한다는 것을. 결국 우리는 이 골목에서 자치기 하다가 혹은 운이 좋으면 골목대장 하다가 스러진다는 것을. 그런데 생각해보면 생이 원래 그런 것 아닐까. 서봉교 시인의 시집을 읽으면서 일상이 모두 시가 되는 경험을 한다. 이쯤 되면 시인은 시를 그냥 산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삶을 언어로 새로 세우는 일.
그런데 무명 씨여, 부탁하노니. 시집을 버리거나 내다 팔 때는 시인의 서명은 제발 떼고 행동해 주시길. 바라는 것이 없어서 무서울 것도 없는 시인이 어느 날, 당신을 찾아갈지도 모르니까. 이건 협박이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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