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78) 덜 된 부처, 홍사성

손현숙 승인 2022.12.02 14:22 | 최종 수정 2023.03.25 17:37 의견 0
홍사성 시인

덜 된 부처
                                    홍사성

 

 

실크로드 길목 난주 병량사 14호 석굴입니다

눈도 코도 귀도 입도 없이 겨우 형체만 갖춘
만들다 만 덜 된 불상이 있습니다

다 된 부처는 더 될 게 없지만
덜 된 부처는 덜 돼서 될 게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 앞에 서니 나도 덩달아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홍사성 시집 《샹그릴라를 찾아서》을 읽었다. ‘책만드는집’. 2022. 

도서관의 서가 앞에서 가슴 뛰던 시절이 있었다. 저기, 저 모르는 길을 걷다 보면 어떤 지점에는 닿을 수 있지 않을까,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그때는 손에 쥔 것 아무것도 없어도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해서 부끄럽지 않았다. 홍사성 시인이 ‘병량사 14호 석굴’ 안에서 발견한 ‘덜 된 불상’도 완성이 아닌 과정의 자유 같은 것을 노래한다. 아니다, 오히려 모든 것이 지나간 자리 ‘텅’ 비어서 꽉 찬 느낌의 경지. 시인의 직관은 그 한 지점을 향해 오롯하다. 차갑게 사르는 불꽃처럼 완성이 아닌 거기가 시작이라는 일갈이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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