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75) 꽃, 못밟겠다

손현숙 승인 2022.11.11 13:22 | 최종 수정 2022.11.15 10:59 의견 0

꽃, 못밟겠다
                                   손현숙

 

 

때죽나무 가지에 목매달았던 꽃송아리 제 목을 제가 친다
꽃그늘 자욱한 낙화 천지 무서운 무엇을 본 것 같다

꽃 이파리 건너, 건너 까치발 뗀다 백白의 그림자처럼 뒷걸음질 친다

꽃대궐, 모르는 동네 어귀에서도 안으로는 들지 못하고 밖으
로 빙빙 돌았던 기억,

백기 투항하듯 저를 부리는, 저 무지몽매 아름다운 한순간,

한 차례 비긋고 나면 꽃, 함부로 사라질까 먼 곳으로 돌아, 돌아가는
원경이 나는 좋다

손현숙 시인

시작메모:

필멸과 불멸에 대해 생각한 적이 있다. 꽃피는 봄이 오면 찾아오는 불안증. 피기도 전에 지는 꽃이 눈에 밟힌다. 나는 왜 아름다움의 절정을 마주 할 용기가 없는 걸까. 꽃 피는 몰입의 시간. 그러나 그 꽃 질 때는 속절없다. 저가 저를 저버리면서 가차 없는 꽃, 무섭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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