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74) 토마토 다섯 알, 이향지

손현숙 승인 2022.11.04 20:18 | 최종 수정 2022.11.08 09:59 의견 0
이향지 시집 《야생》 표지

토마토 다섯 알
                         
이향지
                            

 

토마토 다섯 알을 땄다 올여름이 베푼 첫 열매다 예쁘다, 토마토는 더디게 익는다, 느릿느릿 익어가는 열매가 못 말리게 예뻐서, 애가 달아서 땄다 탱탱하고 싱싱한 토마토 다섯 알, 라스베가스에서 백 불을 땄을 때보다 기분이 좋다, 토마토 다섯 알로 무얼 하지, 부족을 깨우치기 전에 충만을 깨닫게 해 준 토마토 다섯 알, 갓난이처럼 씻겨서 채반에 앉혔다 작은 채반에 담긴 토마토 다섯 알,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투덜거린다 부족하고 부족한 나의 토마토 다섯 알의 눈치를 보게 된다, 토마토는 나보다 숫자가 많다 부족하고 부족한 나는 토마토 다섯 알을 먹기 전에, 내 손안에 무기 없음을 먼저 펼쳐 보인다

 

이향지 시인

이향지 시집 《야생》을 읽었다. ‘파란’. 2022.

어릴 적 친구들을 좋아한다. 뭔 짓거리를 해도 나를 공격하지 않을 친구들. 믿음에 대한 조건 없는 생각들. 그렇게 벗들은 순연하게 왔다가는 가고, 또다시 돌아온다. 기교 없이 쉼표로 호흡을 다스리는 이향지 시인의 야생처럼 “올여름이 베푼 첫 열매”에 대한 상념들. 그것은 모든 존재들의 ‘그러함’에 대한 것들을 알게 한다. 쓸쓸함과 다정함의 동시성. 공격성의 문제가 아니라, 천연한 삶에 대한 다짐이랄까. “부족하고 부족한 삶”이라는 일갈 속에는 차라리 시인의 고뇌가 역력해서. “내 손 안에 무기 없음을 먼저 펼쳐 보인다” 앞에서 나는 오래 서성거렸다. 이향지 선생님의 시집 《야생》의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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