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82) 천국에조차 내가 있다, 서종현

손현숙 승인 2022.12.31 04:34 | 최종 수정 2023.03.25 17:35 의견 0
서종현 시인

천국에조차 내가 있다
                                         서종현

 

천국에조차 음악인 내가 있다 생명의 흔들림 짧게 혹은 길게 생명이 생명과 부딪쳤다 튀어오르는 떨림 나는 바람에 실려 빗방울에 실려 잠시 나를 휘감는다 방금, 빗방울이 생명의 어깨에 부딪혀 내가 태어난다 바람이 생명의 귓바퀴에 부딪혀, 태어난다 진동하는 생명이 생명과 함께 몸을 누일 때 대기의 곁눈질 끝으로 내가, 요동치는 진동인 내가 생명을 쓸어넘기는 그때 나는, 천국에조차 내가 있다는 음악을 울려 전한다 내가 울릴 때 생명은 생명 바깥에서 노래 부르고, 울리는 내가 울릴 때 생명은 생명 안에서 침묵한다 바람도 빗방울도 태어나게 하지 못한 떨림 나는 내 안에서 태어나 내 안에서 자란다 음악인 내가 음악인 나의

- 시인시대. 2022. 가을호

서종현의 시 〈천국에조차 내가 있다〉를 읽었다. ‘시인시대. 가을호’. 2022.

당신의 천국은 시간인가 공간인가. 그렇다면 그 속에서 언제 살았는가 죽었는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소리나 증상, 진동 혹은 기미나 기척의 생명인가, 그 이전의 무엇인가. 시인은 “음악인 내가”로 주체의 탄생을 기호화한다. 그리고 “조차”라는 조사 하나로 천국의 위치를 간단하게 전복한다. 누구나 기어이 닿고 싶은 그곳 그 시간을, 도착해서는 안 되거나 돌아올 수 없는 어떤 상황으로 혹은 통제의 한 틀로 밀어붙인다. 의미를 넘어선 의미의 해석이랄까. 천국에 관한 또 다른 시선. 생명이 가서 닿는 죄에 관하여. 시인은 개인적인 인간 존재에 관하여 핏기 거둔 채 노래한다. 그렇게 기어이 당도한 여기, 지금. 오늘을 살고 있는 당신은 어떤 처연으로 생명을 살리는가, 죽이는가. 위의 시를 혀끝에 올려서 리듬을 타다 보면 의미를 넘어선 악, 의 광채가 목구멍을 핥는다. 그러니까 시인이여, 당신은 음악인가? 바람인가? 혹은 막무가내 아름다운 악마인가?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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