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84) 난파선, 김상미
손현숙
승인
2023.03.11 10:13 | 최종 수정 2023.03.25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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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파선
김상미
그와 내가 닮은 점은
부서지고 가라앉으면서도
서로를 열렬하게 원한다는 것이다
사랑을 가지고도 아무 일도 하지 못할 때
나약한 인간들은 자신을 거세하고
사랑의 통증이 헌신적으로 심신을 좀먹는 걸
그냥 두고 즐기지만
세상엔 아무리 더럽히려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 게 있다
그것은 많은 배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도
바다를 결코 원망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와 내가 닮은 점도 그런 것이다
끝없이 가라앉고 부서지면서도
서로를 열렬히 원한다는 것
김상미의 시 《갈수록 자연이 되어가는 여자》를 읽었다. ‘문학동네. 2022.
어릴 적, 사랑은 안전선 안에서 보호받아 마땅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 지나 그것은 허방에 발 빠뜨리면서도 포기하지 못하는 가혹이었다. 원망도 후회도 없는 자리에서 끝끝내 잊히지 않는 이름. 김상미 시인은 그것이 사랑이라 일갈한다. 서로를 해치면서도 간절하게 원하는 무엇. 함께 난파되면서도 “서로를 열렬히 원”하는 무모함. 무섭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런 몰락, 한번쯤 아름답지 않을까.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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