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85) 내 생의 북쪽, 김용태

손현숙 승인 2023.03.17 17:53 | 최종 수정 2023.03.25 17:34 의견 0

내 생의 북쪽
                      김용태

 

싸리꽃 피었다, 졌다
봄이 갔다는 거다, 불쑥
다녀간 것이
계절만은 아니어서

그 아래
한 마리 나비,
환한 주검 펼쳐져
검은 상복 갖춰 입은
개미 행렬에
장엄히 실려 가고 있다

한 철도 못 되는 생이지만
죽음이라 하면
저쯤은 되어야지,
혈육도 아닌 것을

쪼그리고 앉아
내 생의 북쪽을 가만히
들여다본
그런 날이 있었다

김용태 시집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를 읽었다. ‘오늘의 문학사’ 2021. 

김용태 시인의 시를 유현숙 시인의 페이스북에서 만났다. “2023년 3월 1일 새벽 김용태 시인께서 고인이 되셨습니다”, 란 문구가 왠지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 천천히 따라 들어간 김용태 시인의 시들은 아뿔싸, 이렇게 아름다운 시인을 나는 전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중원에는 협객이 많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서로 유명을 달리하여 얼굴조차 마주할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매 편의 시들을 넘길 때마다 숨을 죽였다. 고요하면서도 생의 바깥을 예견하듯 바라보는 시선이 고결했다. 하여 그는 다정도 병인양, 그 고운 길을 참 일찍도 떠나갔구나, 싶었다. 가신 님의 시집을 손수 포장하여 보내주신 김해미 시인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질문하고 싶었다. 김용태 시인이여, 서둘러 가신 그곳에도 지금 바람 불고 꽃이 피고 새가 우는지. 딱 한 권의 절창 《여린히읗이나 반치음같이》, 을 남기고 간 김용태 시인의 영전에 이 글을 바친다.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