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현숙 시인의 '詩의 아고라'(88) 빙하, 최영규

손현숙 승인 2023.04.07 17:43 | 최종 수정 2023.04.11 13:42 의견 0

빙하
                        최영규


지금을 영원이라고 하자

생각의 흔적마저 지워가는
시간의 눈빛이거나 고뇌라고 하자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아름다음처럼

영원을 지금이라고 하자

최영규 시인

 

최영규 시집 『설산 아래에 서서』을 읽었다. ‘리토피아’ 2022. 

그에게서 소식이 왔다. 이번에는 네팔 어디라던가, 에베레스트 8,848m 산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어느 부근이라던가. 초오유Cho Oyu, 나는 살아서 갈 수 없는 그곳을 그는 벌써 몇 번을 오르고 또 내려왔다. 이번에도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문자의 내용은 농담처럼 간단했다. 그러나 나는 서쪽이라는 말에 오래도록 목이 탔다. 그러니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을 향해 한 발 한 발 자기 발자국을 찍으며 오르고 또 오르는 사내다. 사람의 냄새가 사라진 하늘땅에서는 몸서리치게 외로운 시간도 만났을 터이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을 뒤돌아서 확인한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매 순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첨예한 자기 발자국을 흰 종이 위에 또박또박 기록한다. 혼자를 예감하며 맹렬하게 죽음을 연습하는 시인. 밝고, 환하고, 단정하면서도 아름다운 그의 문체는 그러니까, 그가 매번 죽음을 담보하면서 받아쓴 정직한 몸의 기록이다. 

 

손현숙 기자

◇손현숙 시인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너를 훔친다》 《손》 《일부의 사생활》 《경계의 도시》(공저)  《언어의 모색》(공저) 
▷사진산문집 『시인박물관』 『나는 사랑입니다』 『댕댕아, 꽃길만 걷자』 
▷연구서 『발화의 힘』, 대학교재 『마음 치유와 시』 
▷고려대 일반대학원 문학박사(고려대, 한서대 출강) 
▷현 조병화문학관 상주작가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