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 주차장.
주·정차되어 있는 타인의 자동차를 충돌하여 파손시켰음에도 아무런 연락도 없이 도주하는 자동차 운전자의 행위를 일반적으로 ‘주차장 뺑소니’ 또는 ‘물피도주’라 합니다. 사회 일반적으로 ‘뺑소니’라고 지칭되는 행위는 이 같이 물적 피해만을 입히는 물피도주와, 교통사고로 사람을 사상한 후 도망친 행위를 모두 포함하는 용어로 흔히들 이해되어 왔습니다. 또한 뺑소니 범죄는 매우 중한 범죄로 인식되고 있어, 물피도주를 당한 피해자는 사고 직후 경찰에 사고를 신고하며 경찰이 반드시 가해자를 잡아줄 것이라는 기대를 해왔습니다.
하지만 과거 주차장 뺑소니를 당한 피해자들은 막상 사고를 당한 이후에서야 대부분의 주차장 뺑소니가 형사상 처벌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는 다음과 같이 물피도주의 경우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 그리고 사람을 사상케 하고 도주·유기하는 행위만을 형사상 처벌하던 당시 관련 법제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즉 차량운행으로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하는 대인피해의 경우, 가해자는 사상자를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와 피해자에게 인적 사항을 제공할 의무가 있는데(도로교통법 제54조 제1항) 이를 위반하고 도주하는 경우에는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 피해자가 상해만을 입은 경우에도 1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만원 이상 3천만원 이하의 벌금이 각 처해지는 등(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5조의3) 무거운 죄책이 부과되었습니다.
또한 차량운행으로 타인의 자동차 등 물건을 손괴하는 대물피해의 경우에는, 가해자는 사고 후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으나 이 때 필요한 조치란 도로에서 일어나는 교통상의 위험과 장해를 방지·제거하여 안전하고 원활한 교통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사고로 인하여 도로에 발생한 파편이나 유류물을 제거하는 행위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아, ‘사고 장소 주변에 교통상 장해가 발생하였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경우에 한하여’ 5년 이상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의 벌금이 처해졌습니다.
다시 정리하자면,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그간 뺑소니 중 처벌되는 행위는, 교통사고로 인하여 대인피해를 발생시키고 도주하는 행위나 대물피해가 발생하였고 주변에 교통상 장해가 발생하였음에도 도주하는 행위만에 국한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위와 같은 도로교통법 등 이외에도 형법상 재물손괴죄가 규정되어 있으나(형법 제366조), 형법은 고의에 의한 손괴죄만을 처벌하고 과실손괴는 처벌하지 않으므로 운전 중 과실로 대물피해를 입힌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람이 타고 있지 않은 주차 중 자동차를 충돌하는 경미한 교통사고의 경우 가해자가 도주한 경우에도 이를 처벌할 방안이 없었고, 피해자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받는 이외에 가해자에게 형사상 책임을 물을 방법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주차장 뺑소니는 2011년 기준 연간 약 33만 건(보험개발원 조사자료) 발생할 정도로 많이 발생하고 있으며, 피해자는 가해자가 누구인지 확인되지 않는 경우 민사상 배상도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 같은 문제점으로 주차장 뺑소니를 방지하기 위한 입법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지속되었고, 도로교통법은 이를 반영하여 제54조 제1항 및 제156조 제10호에서 운전 중 주·정차된 차량과 충돌하여 손괴하고 피해자에게 인적사항을 제공하지 아니한 가해자에게 2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 또는 과료(科料)를 과하도록 개정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당해 개정법이 시행된 2017녀 6월 3일부터 주차장 뺑소니는 과거와 달리 형사상 처벌되는 범죄행위에 해당하며, 가해자는 주차 중 차량과 사고를 일으킨 경우 반드시 피해자에게 연락하여 사고수습에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할 것입니다. 개정법을 통해 주차장 뺑소니로 인한 억울한 피해의 방지가 기대되며, 사고가 발생한 경우 반드시 필요한 조치를 이행하여야 한다는 운전자들의 의식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