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태복음 25:40-
#2. ‘난타’라는 여인이 있었는데, 가난하고 고독하여 구걸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며 지냈다. 어느 날 국왕과 귀족들이 부처님께 크고 화려한 등을 바치는 것을 보았다. 난타도 등을 밝히고 싶었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온종일 굶으며 구걸을 해, 작고 초라한 등 하나를 겨우 밝혔다. 밤이 깊어지자 화려했던 등들은 하나둘 꺼졌다. 그러나 초라한 등 하나가 꺼지지 않고 끝까지 밤을 밝혔다. 목련존자가 그 불을 끄려고 손바람을 일으켜도 불꽃이 흔들리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보고 부처님은 “비록 가난한 여인의 소박한 등이지만, 그 여인의 지극한 정성이 깃들어 있기에 결코 꺼지지 않을 것이다”고 말씀하셨다. 부자들의 화려한 등보다 빈자들의 정성 깃든 등 하나가 훨씬 더 소중함을 일깨워 준 것이다. -『현우경賢愚經』/<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빈자일등貧者一燈-
#3. ‘착한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을 사람들의 복지, 경제적 여건과 건강 상태 개선을 위해 사용하는 게 착한 권력이다. 500년 전에 비하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훨씬 더 착한 권력 쪽으로 이동했다. 착한 권력은 트럼프·김정은·문재인만의 과제가 아니다. 우리 자식들과의 관계, 직장 동료들과의 관계에서도 착한 권력이 대세다. -『선한 권력의 탄생:1%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권력 사용법』(장석훈 옮김/2018)의 저자 대커 켈트너-
윤 정권은 어떤 권력일까? 2022년 이후 종합부동산세와 법인세 경감,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주식 양도소득세 부과 대주주 기준 10억에서 50억으로 상향 조정, 금융소득세 폐지 추진 등 ‘부자감세 행진’을 하고 있다. 결과로 세수가 56조 펑크 났다.
반면에 연구개발 예산 4.6조 깎고, 교육 예산 6.2조 줄이고, 농어업·제조업 등에 필수적인 이주노동자의 적응을 돕는 외국인노동자센터는 예산 삭감으로 대거 문을 닫았다.
사회적 강자인 기업주와 부동산·주식 큰손을 위해 젊은 연구자, 학생, 취약 노동자에게 피해를 주는 정책을 ‘낙수효과’(trickle down effects)로 정당화한다.
2022년 1월 영국 킹스칼리지런던대 데이비드 호프와 줄리언 림버그 교수는 <소시오이코노믹 리뷰>에 ‘주요 부자감세의 경제적 결과’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결론은 간단하다.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등 보수파 정부가 줄기차게 외친 낙수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기업과 고소득층의 세금을 줄여줘도 그 혜택이 ‘아래로 흘러내리는 현상’은 없었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증가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반대로 상위 1% 부자들이 국민소득에서 가져가는 몫이 늘어나는 등 불평등은 심해졌다. 이론만 있고 실증이 없는 ‘감세의 낙수효과’를 관에 넣고 못질을 한 것이다.
대통령은 인사를 통해 자신의 정책을 구현한다. 김채환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장의 개인 유튜브 영상의 언어는 현 정권의 눈높이를 가늠하게 해 준다.
“솔직히 말해 60억대 재산을 가진, 현금성 자산만 40억이 넘는 김 여사의 눈에 300만 원짜리 핸드백이 들어왔겠냐”, “(김 여사가) 그런 게 없어서 욕심을 냈겠냐”, “국민 정서상 파우치, 가방 하나에 300만 원이면 비싼 가방인 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적어도 명품이라고 느껴지려면 최소한 몇 천만짜리가 넘는 샤넬백, 에르메스 ‘버킨백’ 정도는 돼야 명품이라 할 만한 것 아니겠냐”, “명품이라는 것도 사람의 수준에 따라 상대적이다.”
예수와 부처가 돌아앉을 만한 이야기다. ‘착한 권력’과 대척점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권력은 착한 권력 쪽으로 진화함이 대세라는 주장은 정당한가? 그렇다. 단적인 예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손준성 검사 유죄 판결이다.
공수처는 시민사회의 숙원이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이 기득권 세력과 유착한 상태에서는 민주주의가 뿌리 내릴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었다. 1996년 참여연대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을 포함한 부패방지법을 처음 입법 청원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공직부패수사처의 설치에 관한 법률안’을 정부 입법으로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했다. 한나라당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보수정당은 공수처 설치에 극구 반대했다.
이른바 보수정당이 공수처 설치를 반대하는 진짜 이유가 뭘까? 보수 기득권 세력과 검찰 카르텔이 ‘같은 편’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검찰 고위직 출신들은 대부분 보수 기득권 세력의 일원이다. 보수 기득권 세력의 가치관은 ‘권력과 돈’이다.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계속 쥐고 있어야 검찰 고위직 출신들은 퇴임 후 전관예우(비리)로 큰돈을 벌 수 있다. 공수처가 만들어지면 검찰의 권한이 분산된다. 보수 기득권 세력과 검찰 카르텔이 공수처 설치를 극구 반대하는 이유이다.
‘보수 기득권 카르텔’의 줄기찬 반대를 극복하고, 입법 청원 후 20여 년 후 드디어 2021년 1월 21일 공수처가 출범했다. 사실상의 검찰 견제 기관이다. 그러나 보수 기득권 카르텔의 방해로 처장과 차장을 포함하여 검사 25명에 부장검사가 4자리뿐이어서, 부장검사가 4자리인 청주지방검찰청 정도의 규모에 불과했다.
출범 후 최근까지 공수처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빌 공’(空)의 공수처란 비난까지 받았다. 그러나 지상에 존재하는 어떤 미물도 그 존재의 역할을 하듯, 공수처도 역사 발전에 한 획을 긋는 존재감을 현현했다. ‘고발 사주’ 사건에서이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2020년 4·15, 곧 21대 총선 직전 손준성 당시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고발장을 작성해서 김웅 국회의원 후보에게 전달함으로써, 국민의힘(당시 미래통합당)이 고발을 하도록 사주했다는 것이다. 고발장에는 윤석열 검찰총장 부부와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전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가 명예훼손 피해자로 적시돼 있었다.
이 사건을 공수처가 수사해서 기소했다. 검찰은 피고인인 손준성을 무혐의 처리하고 검사장으로 승진까지 시켰다. 공수처가 없었다면, 이 사건은 재판으로까지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김옥곤)는 1월 31일 공무상 비밀 누설 등 일부 혐의를 유죄로 판단해 손 검사장에게 집행유예 없이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을 들어 법정 구속은 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손준성 검사장의 혐의를 하나하나 따져가며 징역 1년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는데, 판결 주문을 읽기 직전에 그를 향해 “검사가 지켜야 할 핵심 가치인 정치적 중립을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사안이 엄중하고 죄책 또한 무겁다”고 질책한 것으로 전해진다.
손 검사장에 대한 유죄 선고의 의미는 손 검사장에서 끝나지 않는다. 한동수 전 대검 감찰부장은 지난해 10월 30일 증인으로 출석해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손준성 검사 개인이 (고발사주를) 혼자 했을 리 만무하다는 건 검찰에서는 누구나 동의하는 사안이다.” “고발장 작성은 손준성 개인의 일탈이 아니고, 총장 지시 하에 검사와 수사관들이 함께 작성했고, (고발장이) 나가지 전에도 총장 컨펌(confirm. 확인.인가)이 이뤄졌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공수처는 2월 21일 고발 사주 사건과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재수사하기로 하고, ‘입건’(범죄 혐의의 사실이 인정되어 사건이 성립함)했다.
입건되면 피고발인은 신분은 ‘용의자’에서 ‘피의자’로 바뀐다. 현직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피의자’로 입건된 것은, 수사 결과에 관계없이 그 자체로 중대하고 심각한 사안이 아니겠는가.
역사 진보의 수레바퀴는 진창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요철(凹凸) 길바닥에서 덜컹거리긴 해도,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에 쉼이 없다. ‘착한 권력’ 쪽으로 더디더라도 나아가는 것이다.
“보수주의자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가로막으며, ‘멈춰라’고 외치는 사람이다”고 윌리엄 버클리(1925~2008)라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자가 말했다고 하던가.
당랑거철(螳螂拒轍)이다. 사마귀가 앞발을 들고 수레바퀴를 가로막는다고 수레바퀴가 멈출 턱이 있는가!
<작가/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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