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말 필자는 매주 한 차례씩 고전공부를 하는 분들과 함께 경남 하동 악양면에 소재한 형제봉으로 산행을 갔다.
오전 11시쯤 하동~화개 지방도에서 승용차로 부춘마을로 올라갔다. 부춘마을 올라가는 들머리에는 한밭제다에 차(茶) 체험을 온 분들이 길가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계셨다. 원부춘(元富春) 마을회관을 지나 한참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활공장(해발 1,050m)으로 올라갔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했다. 전망대에서 겹겹의 웅장한 지리산을 바라보다 섬진강을 내려다보았다. 몇 사람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먼저 활공을 했다. 큰 새가 나는 것 같았다. 저렇게 하늘을 날아 저 아래 섬진강 백사장에 내려앉는다고 했다.
주차장 옆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하기로 했다. 점심을 먹은 후 조금 쉬었다가 낮12시 20분에 형제봉으로 출발했다. 오늘 산행은 활공장~형제1봉(1,108m)~성제1봉(1,112m)~성제2봉(1,108m)구름다리로 가 활공장으로 되돌아오는 코스다. 오늘 함께 산행하는 도반들은 지난해 봄에 악양 강선암에서 형제봉과 성제1봉, 구름다리를 산행한 적이 있다. 필자는 일이 있어 산행에 참가하지는 못하고 산행이 끝난 후 합류했다.
활공장 자체가 주능선에 위치해 있어 형제봉으로 가는 길은 그다지 난코스는 아니다. 능선 아래쪽은 악양 들판이 부분적으로 보이고 모래가 많이 퇴적돼 있는 섬진강도 저 아래에 굽이져 흐르고 있다. 섬진강 너머는 전남 광양 쪽의 산들이 이어져 있다.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산악회에서 단체로 온 등산객들이 주를 이루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전망이 뛰어난 데다 산행코스가 어렵지 않고 짧기 때문일 것이다.
형제봉(1,108m)까지는 천천히 걸어 30~40분 소요됐다. 형제봉을 거쳐 성제1봉(聖帝1峰)에 도착하니 오후 1시 10분이었다. 주능선에 암벽이 많지는 않으나 성제봉 정상은 바위로 이뤄져 있었다. 활공장에서 출발하여 40분가량 걸은 셈이다.
필자는 스무 살 때부터 지리산을 산행하였다. 그 시절에 집안은 너무나 가난하여 차비는 고사하고 라면도 끓여 먹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세속과 거리를 둔 선비로서의 삶을 고집한 선친의 신념 때문에 집안의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고 부산 내의 송도로, 사상으로 전 가족이 옮겨 다니며 단칸방 생활을 할 때였다. 그런데 어찌어찌하여 필자는 지리산을 계속 탔다. 특히 군대 제대하고 복학을 하고서는 지리산 산행을 더 자주 하였다. 국제신문 기자시절 산행을 담당할 때는 취재 목적 이외에도 가까운 산꾼들과 지리산을 자주 찾았다. 특히 백두대간 종주를 할 때는 지리산 서북능선뿐 아니라 워밍업을 한다고 소위 산꾼들조차 찾지 않는 코스를 많이도 다녔다.
성제1봉에 서서 겹겹의 지리산을 둘러보니 지나온 세월만큼이나 지리산에 찍힌 필자의 발자국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우리가 소위 ‘형제봉’이라 일컫는 이 산에서 가장 높은 곳이 지금 서 있는 성제1봉인 것이다. 해발 1400m 이상인 지리산 주능선에 비하면 고도는 낮지만 지리산 남쪽에 떨어져 우뚝 솟아 있다. 악양 들판 너머의 저 봉우리는 구재봉(龜在峰·768m)이다. 하동 악양면과 적량면, 하동읍의 경계에 자리한 구재봉은 원래 구자산으로 불렸다. 구재봉은 악양 들판과 섬진강을 조망하기에는 사실 형제봉보다 월등하다. 그 넓은 악양 들판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하튼 성제1봉에서 10분가량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니 또 다른 성제봉이 나타났다. 일명 성제2봉(1,108m)이다. 성제봉 표지석에는 1, 2봉 구분이 없으나 이 산을 찾는 사람들은 통상 그렇게 1, 2봉으로 나눠 호칭한다.
해발이 높다보니 철쭉은 이제야 조금씩 피어나고 있었다. 성제2봉에서 헬기장 등을 지나 50분쯤 가니 구름다리에 도착하였다. 이 구름다리는 해발 900m에 2021년에 설치되었으며, 길이는 137m이다. 악양 어디서든 형제봉의 이 구름다리가 보인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저 산꼭대기에 웬 구름다리이지?”라고 궁금해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이 구름다리를 찾는다.
구름다리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다 이제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사실 구름다리를 포함해 형제봉으로 오르는 데는 여러 길이 있다. 필자가 오늘 부춘마을에서 올라온 길 외에 악양의 강선암에서 올라오는 길이 있고, 악양의 노전마을에서 올라오는 길도 있다. 돌아올 때는 등산객들이 더 많아 ‘붐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형제봉과 성제1·2봉을 거쳐 구름다리까지 갈 때는 계속 쉬면서 갔지만 되돌아올 때는 잠깐 잠깐 쉬고 계속 걸었다. 출발했던 활공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20분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설렁설렁 3시간을 산행한 것이다. 이제 몸이 풀리는 것 같다. <글/사진 = 조해훈>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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