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지리산 산책(145) 올해 처음 얼굴을 내민 고사리
낫 한 자루 들고 차산에 올라 묵은 고사리, 잡목 베내다
억새 무더기 몇 곳 베어내다보면 땀 나고 허리도 아프지만
아기 손처럼 오므리고 얼굴 내민 첫 고사리, 경이롭고 신비로워
조해훈
승인
2024.03.22 18:03 | 최종 수정 2024.03.22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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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첫 고사리가 3월 21일에 올라왔다.
전날에 이어 3월 21일(목요일) 오후에도 낫 한 자루 들고 차산에 올랐다. 언제나 그렇듯이 바람이 세찼다. 차밭 입구에서 보니 며칠 전까지 피어있던 매화가 거의 다 지고 가지만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다. 아래 차밭 사이로 가지 않고 옆으로 난 산길을 따라 원두막으로 갔다. 원두막에서 보니 빈 가지만 있는 매화나무들이 더 잘 보였다.
고성에서 ‘동시동화나무의 숲’을 운영하시는 동화작가 배익천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기서 발간하는 계간 아동문학지인 ‘열린아동문학’이 어제 목압서사로 배달돼 1시간 전쯤 겸사겸사 전화를 드렸다. 그런데 바쁘신지 전화를 받지 않으셨는데, 산에 올라오자 전화가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필자가 “조만간 한 번 들리겠습니다”라며 통화를 마쳤다.
원두막에서 위쪽 차밭 안쪽으로 들어가며 낫으로 묵은 고사리와 가시들을 베어냈다. 해마다 가장 먼저 고사리 하나가 올라오는 지점에 가보니 아직 소식이 없었다. 그곳에서 20, 30m쯤 더 올라가니 고사리 하나가 올라와 있는 게 아닌가. 반가워 사진을 찍었다. 올해 필자의 차산에 처음 올라온 고사리였다. 해마다 첫 고사리를 보면 경이롭고 신기하다. 게다가 아기 손처럼 오므린 고사리의 머리 부분을 보면 신비롭기까지 하다. 아직 며칠 더 있어야 한 번 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공간인 차산에 올라오면 항상 그렇지만 마음이 그렇게 편안할 수 없다. 굳이 수행이니 마음을 비우니 하는 수식어가 필요 없다. 바람소리와 새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조차 없다. 게다가 낫으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다보면 비우고 채울 마음 자체가 없어진다. 해마다 넓은 차산의 억새와 가시, 묵은 고사리 등을 낫 한 자루로 잘라내어도 해가 갈수록 더 많이 올라온다. 나이를 먹을수록 버려야 할 것, 비워야 할 것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일거리가 더 많아지는 것일 게다. 그걸 귀찮게 여기지 않는다. 손가락이 아프고 손목이 쑤셔 병원에 가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아 먹어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한 순간도 일어나지 않는다. 일하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올해는 차를 얼마만큼 만들어야 겠다’ 라는 생각도 없다. 모든 일에 그렇듯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혼자 찻잎을 따봐야 얼마 되지 않는다. 겨우 혼자 마실 양, 그리고 벗들이 오면 함께 마실 양 정도의 차밖에 만들지 못한다. 하지만 이 가파르고 넓은 차산의 관리는 해줘야 한다. 일 하지 않고 말로만 ‘수행’이라는 용어를 자주 쓰는 사람들과는 다르다.
그 위쪽, 고사리가 많이 나는 곳으로 올라가면서 잡목 올라오는 것들을 잘랐다. 거기서 왼쪽으로 꺾어 걸었다. 계속 낫질을 해줘 밭이 훤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산길에 억새밭이다. 올해는 차산에 억새가 더 많다. 아래로 내려가는 산길의 억새를 자르다보니 얼굴에 땀이 줄줄 흘렀다. 땀이 눈에 들어가 눈이 따가웠다. 억새와 차나무들을 덮은 묵은 고사리를 베어내다 보니 몇 시간이 흘렀다. 억새 무더기 몇 곳 베어내면 땀도 나지만 허리가 아프다. 억새를 베어내는 게 필자에게는 가장 힘이 든다. 졸시 한수를 지어본다.
억새를 베어내며
마음을 비운다고 멀리 갈 것 없다
낫으로 가파른 차산에서 억새를 베다보면
땀으로 옷이 젖어 쉰내가 나고
바람소리 새소리만 듣다보면
예수님이 보이고 부처님이 보이고
공자와 노자의 목소리가 귀에 들린다
입으로 보란 듯이 떠들지 않고
혼자 속으로 살면서 알게 모르게 세상에 지은 죄
속죄를 하고 또 속죄를 하다보면
나보다 훨씬 키 큰 억새를 베다보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감정이 다 든다
속옷은 말할 것 없이 군복 무늬의 외투까지 젖으면
생각도 사라지고 마음도 없어지고
마침내 내가 예수님이 되고 부처님이 된다
날이 어둑해졌다. 내려오면서 아래 차밭에 있는 억새 한 무더기를 더 베어냈다. 그리곤 아래로 내려오다 움막으로 들어갔다. 움막의 사방에는 철골구조만 있고 벽체가 없다. 몇 년 전부터 대나무를 잘라 얼기설기 벽체를 엮고 있는데 아직 듬성듬성하다. 움막 바로 위쪽에 있는 자그마한 차밭의 대나무를 하나 잘라 댓잎을 쳐내고 길이를 잘라 듬성한 곳에 묶었다. 파란 노끈을 잘라 가로로 엮어놓은 대나무에 묶은 것이다. 다시 움막 입구 쪽에 있는 대나무를 하나 더 잘라 역시 듬성한 곳에 묶었다. 손재주가 없어 전문가들이 보면 ‘아이들이 장난질 해놓은 것인가?’라고 의이할 정도로 벽체 만드는 솜씨가 유치하다. 벽체도 그렇지만 바닥도 고르지 않아 곡괭이로 흙을 조금씩 파 평탄작업을 하고 있지만 역시 아직 멀었다. 언제 움막 작업이 마무리 될지 알 수 없다. 적어도 5년은 족히 걸릴 것 같다. 여기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고 ‘벗들과 함께 차를 마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마을로 내려오니 제법 껌껌하다. 마을회관에도 어르신들이 안 계신지 불이 꺼져 있다. 집에 가는 방향으로 서 있는 가로등에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다. <글·사진=조해훈>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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