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압서사에 소장된 고서 중에는 마지막 페이지에 ‘하경룡장판((河慶龍藏版)’이라고 간인(刊印)된 책들이 좀 있다. 우리나라 출판의 역사에 대해 사전지식이 없는 독자들께서는 아마 하경룡장판이 무엇인지 잘 모르실 것이다. 19세기에 전북 전주(全州)에는 개인이 상업적으로 출판을 하는 출판사가 여럿 있었다. 하경룡장판은 그 중의 하나로 주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출판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하경룡장판에서 출판된 책들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그러면 먼저 하경룡장판이 무엇인지 그 성격을 알아보겠다.
하경룡장판은 19세기 후반 전주지역에서 ‘칠서방(七書房)’을 운영한 출판업자인 하경룡(河慶龍)이 간행한 상업용 책을 일컫는다. 그의 개인적 정보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 여하튼 하경룡은 19세기 후반 전주 남문 밖 천변(川邊)에서 출판업과 서점업을 겸해 칠서방(七書房)을 운영한 출판업자였다. 칠서방이란 흔히 칠서(七書)로 알려진 사서삼경을 전문으로 간행하는 출판사라는 의미로 붙여진 상호이다.
하경룡이 운영하던 칠서방에서는 물론 사서삼경뿐 아니라 32종의 판매용 책도 간행하였다. 그는 칠서방에서 현전하는 상업용 사서와 사서언해서, 그리고 삼경과 삼경언해서 80책을 간행하였다.
그러면 하경룡장판 간기로 발행된 책 종류를 대략 살펴보자.
『논어집주대전』(20권 8책)·『논어언해』(4권 4책)·『대학장구대전』·『대학언해』·『중용장구대전』·『중용언해』·『시전대전』(20권 10책)·『시경언해』(20권 7책)·『서전대전』(10권 10책)·『서전언해』(5권 5책)·『주역전의대전』(24권 14책)·『주역언해』(9권 5책) 등에는 모두 ‘세경오중춘개간전주하경룡장판(歲庚午仲春開刊全州河慶龍藏板)’이라는 간기가 찍혀있다. 경오년 중춘(仲春), 전주부에서 하경룡이 만든 판본임을 알 수 있다. 간기에 적힌 ‘경오(庚午)’년을 1810년(순조 10)으로 보기도 하지만, 대체로 1870년(고종 7)으로 본다.
사서삼경 책은 서당과 향교 등에서 교육용 교재로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책의 판형 자체가 좀 컸다. 책의 판형이 클수록 종이가 더 들어가는데 이 문제는 전주가 한지 생산지였기 때문에 그다지 어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전주에는 칠서방 외에 가장 오래된 서점 겸 출판사로 완서 방각업소인 서계서포(西溪書舖)가 있었고, 다가서포도 있었다.
서계서포와 다가서포는 사서삼경보다는 『홍길동전』 등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고전소설 등을 주로 간행하였다. 서계서포에서는 1800년대부터 1911년까지 앞에서 언급한 『홍길동전』 외에 한글 고전소설인 『화룡도』·『조웅전』·『유충열전』·『심청전』·『초한전』·『소대성전』·『장풍운전』·『열여춘향수절가』·『이대봉전』·『구운몽』·『삼국지』 등 17종의 고전소설을 찍어냈다.
조선시대 전국에서 책을 찍을 때 만든 책판의 목록을 기록한 ‘책판목록(冊板目錄)’이 있다. 1750년경에 쓰인 ‘제도책판록(諸道冊板錄)’에는 ‘남문 외 사판(南門外 私板)’, ‘서문 외 사판(西門外 私板)’으로 표기돼 있다. ‘南門外’는 칠서방, ‘西門外’는 서계서포를 일컫는다.
칠서방에서 사용한 사서삼경 책판은 하경룡이 직접 판각한 것이 아니라, 1870년에 전라 감영의 책판을 임대하거나 소장했다가 자신의 이름을 넣어 출판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랬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왜냐하면 책판을 만든다는 게 여간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게 아니고, 시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하경룡장판은 칠서방에서 간행한 목판본 중 하경룡이 칠서방을 운영했던 19세기 후반(1870년)에 만들어진 판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판매용 책인 완판방각본의 시작은 『동몽선습』(童蒙先習)으로 보고 있다. 그 발간연도를 1714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목압서사 소장의 전주부 하경룡장판으로 간행한 인출 목판본 『주역언해』(周易諺解)를 한 번 보자. 9권 5책으로,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전주부하경룡장판(全州府河慶龍藏板)’이라는 간기가 있다. 책판 크기는 21×세로 32.2cm이다.
‘칠서방’은 일제시기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의 1908년 07월 04일자’에 최신 신간 서적광고를 냈다. 또 1908년 6월 6일부터 1908년 7월 19일까지 ‘황성신문’에도 32차례의 서적 광고를 냈다.
20세기 초에 들어서면 일제의 출판 간섭으로 모든 책에는 판권지를 붙였다. 칠서방도 예외는 아니었다. 판권지에 구체적인 출판소의 이름이 등장한다. 1916년 현재 칠서방의 주인은 장환순으로 돼 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