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버든 사람 이야기(방앗간집 청화)④
저녁 일찍 손이 떨어졌다. 보통 잔치면 단주술이라 해서 노인에는 노인네들끼리 사랑방에 자리 잡고, 안노인은 안노인끼리, 처녀들은 처녀들끼리, 남정네나 아이들도 각각 제 또래끼리 바께스를 들고 잔칫집에 가면 술 한 바께스, 지짐 한 소쿠리씩 넉넉히 주어 동네 구석구석 술판이 벌어지기 마련이었는데 그 날은 단주 술 얻으러 오는 사람마저 없었다. 신방에 문구멍 뚫는 사람도 없이 촛불이 꺼졌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읍에서 석 대뿐인 코로나택시 두 대를 불러서 시집을 보냈다. 한 대에는 신랑각시와 억지로 상객을 떠맡은 구장이 타고 또 한 대에는 큰아들 만철이가 타고 차도 못 들어가는 고갯길에서 다리 저는 신랑과 배부른 신부를 부축할 사람과 상이불 지는 사람 둘을 사서 보냈다.
겨울방학이 되어도 택신이는 내려오지 않았다. 무심하게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다시 추석이 다가왔지만 그해에는 연극도 콩쿨대회도 열리지 않았다. 추석 다음날 송화는 남산만 한 배를 앞세우고 친정에 왔다. 다시는 시집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며칠을 버티다 스무 사흘에 몸을 풀었다. 멀쩡한 사내아이였다.
마을사람들은 갓난애를 둔터댁으로 보내야 된다고 수군대었다. 하지만 둔터댁에서도 일절 반응이 없는 데다 옴말댁의 방해로 파토가 나고 말았다. 둔터댁이 그러더라고, 바람난 년이 낳은 아이를 뉘 새낀 줄 알고 받겠느냐고, 동네방네 돌아다니며 소문을 퍼트린 것이었다.
며칠 뒤 병신신랑이 찾아왔다. 안 가려고 버티는 청화와 우격다짐 끝에 코로나택시를 불러 만철이가 신랑각시와 갓난애를 태우고 차가 들어가는 데까지 태워다주고 돌아왔는데 이튿날 각시가 도망갔다고 신랑이 다시 찾아왔다.
그날 저녁 인동골 못에서 웬 아이 우는 소리에 못둑에 올라가본 마을 청년들이 코고무신을 벗어놓고 빠져죽은 퉁퉁 불은 청화의 시채를 건져내었다. 희한하게도 담요에 싸인 갓난애는 아직 숨이 붙어있었다.
“그래. 그래 하고도 싸지. 공은 공대로 가고 죄는 죄대로 간다고 지 지은 제가 다 어데 가노?”
“야?”
“니는 작동댁에서 벌어진 희한한 이바구를 듣도 못했나?”
“아 모숭기 때 간혹 듣기는 들어도 남의 말을 우째 다 믿능교?”
“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까 하는 말도 못 들어봤나?”
“어린 청화가 무신 죄가 있겠노? 시건 없이 차마끈 풀어준 거야 촌 동네서 흔히 있는 일, 온말댁 주택이 하고 마동댁 기냄이 하고는 동네혼사 하고도 잘도 산다 아이가?”
"아, 그거사...“
“그러니까 청화가 뭐 크게 잘못 한 것이 아니라 우짜다가 만난 것이 겉만 멀쩡한 바람둥이 둔터댁 택신이를 만난 거지.”
“...”
“거기 다 지 부모가 죄가 커 그렇단 말이다. 평리부락 60가구 집집이 서넛이 키우는 딸이 수백 명이나 되지만 어데 청화처럼 부모 속 끓이는 딸이 있나? 그기 다 저거 아부지 엄마가 지은 죄란 말이다.”
“아, 빙빙 돌리지 말고 바로 이바구를 하고 소구리뱅기를 탄 것처럼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아잉교.”
“아, 알았어.”
하고 한참이나 가쁜 숨을 고른 기출씨가
“니, 작동댁 머슴 덕대 알제?”
“알지요. 덩치는 호랑이만 해도 사람이 순해 빠져 말 한마디도 똑 부러지게 못 하던 사람아잉교?”
“그래 그 덕대가 인공 때 내 하고 신불산 너머 빨갱이소굴에 쌀 지고 간 거를 내가 와 모리겠능교?”
“그래. 그날 나하고 모두 넷이 갔는데 덕대는 거기서 바로 김일성 장군 만세를 부르고 입산을 하고 나머지 두 사람은 돌아오다가 얼어서 죽고.”
“맞심더. 당신 하나만 천운으로 살았지요. 내가 시집올 때 우리아부지가 사주팔자를 보고 신랑 될 사람이 밍(命)하나는 길다 카디마는.”
“시방 니 무신 소리 하노? 내 밍이 문제가 아이고 난리가 끝나고 몇 년 후에 경기돈가 강원도서 덕대집안 형님이 찾아온 거 알제?”
“야, 그 때 그 덕대가 그렇게 죽은 것을 알고 그 동안 4년이나 머슴 살아 받은 새경은 어디 갔나고 물어본 거도 알제?”
“알지요. 사실은 자기가 보관한다고 받아놨다가 덕대가 죽고 나니 그걸 몽땅 팔아 보태 방깐을 산 것 말이지요.”
“그래 놓고 아, 그거사 덕대도 젊은 사낸데 언양 술집에 가서 기집 치마폭에 넣었는지 노름방에서 화닥띠기로 날맀는지 자기는 새경을 주기만 했지 쓰는 것은 듣도 보도 못 했다고 시치미를 땐 거 말이지.”
“그렇지요. 그 때 앞새매고 복걸이고 웃각단이고 빨래터에 사람들만 모이면 그 이약을 했지요. 자신도 자식 키우면서 그래 하는 것이 아이라고.”
“맞아. 공은 공대로 가고 죄는 죄대로 간다고 사람이 밍 놔놓고 죽는 법도 없지만 죄 짓고 발 뻗고 못 잔다고 말입니더.”
“그렇고말고. 그런데 어데 그것 뿐이가? 당신 작동댁이 시어마시 이바구 들었나?”
“뭐 들은 것 같기는 한데 하도 복잡해서.”
“그래. 해방이 되던 해 작동천손한테 갑자기 생모가 나타난 것 알제?”
“예. 들었지요. 작동댁이 시할매가 얼매나 사람이 독한지 아직 작동천손이 젖먹이 때 인자 열아홉인 아이애미를 내쫓았다고 말입니더.”
“그래. 그 쫓겨 간 며느리가 이리저리 천지강산을 떠돌다가 마지막엔 경주 어디선가 큰 농장을 하는 일본사람 식모로 들어갔다가 아이 못 놓은 일본여자 대신 딸 하나를 놓고 첩사이가 되었는데 중간에 일본여자가 죽어 졸지에 대농장 안주인이 되었는데 말이야.”
“그 참 여자팔자 조롱박팔자라 카디마는...”
“조롱박이 아이고 뒤웅박이다. 아무튼 그 왜놈이 눈치가 빠른 사람인지 대동아전쟁 말기에 사내들이 한참 조요를 가고 처녀들이 더러 대신따이에 잡혀 가고 놋그릇에 송진, 소뼉다구에 삼베까지 모조리 공출을 당하던 그 시절에 일본이 망할 것을 알고 미리 재산을 정리했다고 하네.”
“야! 진장에 조 부자보다 더 약발은 사람이네.”
“그래 모리면 잔주코 들어나 봐라.”
하고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미 일흔이 넘어 그 이마가 홀랑 벗겨진 와다나베라는 그 쪽발이가 경주 시내의 큰 부자에게 미리 농장을 팔고 재산을 정리할 때 시내의 상가건물 하나를 남겨 2층 다다미방에 이제 환갑이 다된 젊은 아내를 거처하게 하고 그 점포와 안강읍의 상답 일곱 마지기를 주고 본토에 사정이 어떤지 알아보려 간다고 가면서 집안사람들에게 인사라도 시킨다고 딸까지 데리고 떠났는데 떠난 지 닷새 만에 해방이 되고 다시 돌아올 수가 없었는데 이미 그럴 줄 알고 집과 땅을 후처의 명의로 등기까지 하고 갔다고 했어.
그렇게 졸지에 돈 많은 마나님이 되자 아주 옛날 자기가 낳기만 하고 제대로 안아도 못본 아들이 생각나 이리저리 탐문을 했는데 이미 쉰이 다 되어가는 아들을 찾은 기라.”
“아, 그래서 작동댁 뒷방에 말 못하는 백새할매가 있다는 소문이 있었구나?”
“말을 못 하기는 왜 못해. 말을 안 붙이니까 못 하지. 작동댁 내외가 그 말을 듣고 당장 경주로 달려가 엄마, 엄마 소리치며 울고불고 하는 바람에 너무 오랜만에 봐서 도무지 정이 안 가는 아들과 며느리를 보고 우물쭈물하던 시어머니를 작동댁이 인자 자신이 모시겠다고 얼마나 울고불고 해서 재산을 정리해 버든으로 들어왔다고 했잖아?”
“아, 그랬구나. 그래서 그 돈으로 방앗깐집을 샀구나?”
“그렇지 그 너른 방앗간집과 기계를 그런 큰돈이 아니고서 버든바닥에서 누가 살 능력이 되겠노?”
하고 이어가기로 처음에는 안방에 같이 자자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시어머니가 조용히 혼자 있고 싶다고 하자 조그만 도장방을 내어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경주의 그 많은 재산이 다 정리되어 자신들의 수중으로 들어오자 작동댁이 달라졌다는 거였다. 우선 아이들더러 뒷방에 가지 못 하게 하고 할매라고 부르지도 못 하게 하고 그냥 <뒷방늘개이>한테 가면 죽인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이제 아홉 살의 창화가 할매라고 찾아가는 걸 머리채를 잡고 반쯤 죽여 놓고 나서는 아이들도 일절 발걸음을 끊고 하루 세끼 주는 밥도 주다 말다 한 사나흘 굶기기도 예사였다. 동네에 이상한 소문이 돌았지만 덩치가 태산만 한 천 서방이나 큰 아들 만철이, 그보다 더 큰 작은아들 억철이가 인상이라도 한 번 쓰면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웃각단 빨래터에 모인 평촌댁과 대동댁, 이밤댁, 마동댁, 반천댁이 아침에는
“엊저녁에도 소고기를 꿉었제? 냄새가 진동을 해서 이웃에서는 침만 꼴깍거리고.”
“소고기 꿉는 거는 두고라도 뒷방할매 밥을 안 준다는 소문은 뭐고?”
“얼매나 배가 고팠으면 아직 익도 안 한 애호박을 다 따묵더라 안 카나?”
“그라면서 읍내 백정집에 버든 방간집이 아이면 밥을 못 묵는다는 소문이 다 돈다 아이가? 한 장따나 소 한 마리를 잡으면 꿉기 좋은 고기에 간과 천렵을 절반이나 방깐집에서 가져온다 안 카나?”
“원래 돈을 가져온 할매는 고기는커녕 밥도 잘 안 주고.”
“맞아. 얼마 전에 갓 시집온 만철이각씨가 몰래 할매한테 고기하고 밥을 차려 갖다주다 들켜 작동댁에게 머리채를 잡혔다 안 카나?”
“뭐, 그라고 나서는 며느리도 고기를 안 주고 맨밥만 줬다면서 마침 아아가 섰는데도 눈치 없는 지집이라고 기름기라고는 제랄 하나도 못 묵게 해서 아아를 놓으니 꼭 깨구리 벗겨 논 것처럼 살이라고는 한 점도 없고...”
“아이구. 숭악해라. 그러니까 죄를 받지.”
“맞아. 엄마라고 모셔 와서 말 한마디도 잘 안 하고 뒷방에 처박고 처자식만 호의호식시키던 천 서방이 두 해도 더 못 살고 칙간에서 주당에 걸려서 죽었지.”
“주당이 아이고 천벌을 받은 기라.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뒷방 할매가 죽었는데 얼마나 굶었는지 시체가 댓 살 먹은 아이만 했는데 세상에 손자 3형제가 널도 없이 거적에 사서 애장터에 묻었단다.”
하는 이웃들의 말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자
“아이고 숭악해라. 그러니까 죄를 받지. 그렇지만 와 죄 많은 작동댁은 멀쩡하고 죄 없는 청화만 벌을 받는지 참말로 하느님 아부지가 다 무심한 기라...”
사람 좋은 명촌댁이 커다랗게 한숨을 쉬었다.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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