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103) 제2부 농사꾼 기출씨 - 제12장 버든 사람 이야기(방앗간집 청화)①

이득수 승인 2022.04.17 19:51 | 최종 수정 2022.04.19 09:31 의견 0

12. 버든 사람 이야기(방앗간집 청화)①

추석을 쇤 며칠 뒤였다. 아침저녁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다시 기침이 잦고 숨이 가쁜 아버지의 팔다리와 어깨를 한참이나 주물러 잠이 드는 것을 보고 열찬이도 자리에 누웠는데

“보소, 갑찬이아부지! 이 핀도 그 소리 들었능교?”

아직 방안은 깜깜한데 어머니 명촌댁이 묻자 

“듣기는 마실도 몬 가는 내가 듣기는 뭐로 듣노?”
“버든마실 아이라 언양장바닥이 발칵 뒤집힌 그 일을 모린단 말잉교?”
“뭔 말이고? 또 방깐집 하고 둔터떡 하고 또 시비라도 붙었나? 아니면 자다가 웬 봉창 뚜드리는 소리고?”
“이 핀은 안주 몬 들었는가베. 세상에 청화가 죽었다 안 카능교? 청화가...”
“뭐라꼬? 삼동에 시집가서 잘 살고 얼라까지 낳다면서.”

둘이서 한참이나 주고받다 

“우예 죽었다카더노?”
“윤동골 못에 빠져죽었다 캅디더”
“윤동골이 아이고 인동골 못이다.”
“...”
“좌우지간 와 죽었는지 이바구나 해 봐라.”
“야.”

한참이나 남편의 잔기침이 끝나기를 기다려

“세상에 얼매나 숭악하고 낯간지러운 이바군지, 세상에 옆방에 가시나들 들을까 겁이 나요.”

명촌댁이 운을 떼는데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열찬이가 이불 속에서 꿀꺽 침을 삼켰다. 안 그래도 벌써 1년 이상 마을에 떠돌던 이상한 소문, 방앗간 집 청화누나가 빵구가 나고, 억지로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고 하던 이야기, 대충 그런가 하면서 늘 궁금하던 그 고약한 이야기의 전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평리부락 2, 3, 4반이 있는 사십여 호의 버든 본 마을은 태화강상류인 남천내를 끼고 위에서 아래로 비스듬히 벋은 윤곽이 몇 군데의 들고남을 보이다 맨 끝에 조금 떨어진 동사(洞舍)가 동그란 점으로 보였다. 그래서 아이들이 소를 먹이는 진장만디(山頂)에서 보면 영판 우리나라지도와 같았고 웃각단 10여호와 아랫각단의 근 서른 집이 마주보고 있는 허리부분은 마치 3·8선, 아니 휴전선처럼 비스듬히 잘록했다. 

겨울철이면 석남사가 웅크린 가지산과 문복산사이 운문재를 넘어 태화강을 타고 불어오는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해 집집마다 대를 심어 마을의 등뼈를 이룬 대밭들은 각각 낭림산맥, 함경산맥, 태백산맥등 백두대간을 연상시켰다.
 

동서남북 어느 한쪽도 산에 접하지 않고 이런 마을, 들가운데 평평하게 자리 잡은 이런 마을을 사람들은 버든(平里, 울산이나 밀양 등 반도동남부에 이런 지명이 더러 있음)이라 불렀다. 농경시대의 우리네 마을이란 대체로 양지바른 산비탈이나 맑은 샘이 솟아나는 오목한 골짜기에 자리 잡아 반드시 산을 의지하고 물을 끼고 있는데 비해 이 마을은 허허벌판에 버려진 듯 허전할 뿐이었다. 

이 버든이란 마을이름은 원래는 <버드내>라는, 갯버들이 많은 개울가에 자리 잡아 고리짝을 짜던 고려시대의 고리백정, 즉 양수척(楊水尺)에서 유래했다는 일설도 있고 또 역사적으로도 고려시대에는 전왕조의 도읍인 경주에서 가까워 늘 반역을 의심받고 귀양지로나 쓰이던 곳이라 고리백정이 살았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엎어지면 코 닿을 듯 가까운 강 건너 읍내의 5일 장날이면 쇠전이냐 싸전에서 장사를 하여 늘 팍팍한 살림을 보태어야만 하는 가난한 사람들이 저절로 모여들어 생겨난 것인지도 모르는 40여 호 중에는 농사를 전혀 안 짓는 집이나 반농반상의 집도 여럿이 있었다. 여느 마을처럼 큰 부잣집도 없고 넓은 집안을 가진 집성촌도 아니어서 기와집도 한 채밖에 없는데다 웃각단에 자리 잡은 방앗간도 겨울 한철 외에는 별로 일거리가 없어 방앗간집이 가난한 마을은 근동에서 그 마을밖에 없다고도 했다.

 

음력 2월 초하루 영등할머니가 지나간 양력 3월초. 춥고 긴 겨울 동안 가마니를 짜거나 언 개똥을 줍던 농부들은 이제 논밭갈이에 나설 소를 쌀 찌우기 위해 쑥 뿌리를 캐 쇠죽을  쑤고 쟁기를 손보고 부지런한 집에서는 경자리(草肥)까지 뜯기 시작할 때쯤 마을에서는 경사가 났다. 

둔터댁 큰아들 택신이가 서울의 대학교에 합격을 한 것이었다. 워낙 협소하고 가난한 마을이라 소나 논을 팔거나 그도 아니면 미꾸라지를 잡아 팔아서 어렵게 공부해서 국민학교나 중학교선생이 된 사람이 한 두 명 있기는 하지만 아직 대학교공부를 꿈도 못 꿀 이 빈촌에 최초의 대학생이 나온 것이었다.

학교 다닐 때에 성적이 별로 시원찮은 편이라 아마도 둔터어른이 뒷문으로 입학시켰을 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마을에서 제일 집안이 넓고 밥술깨나 뜨는 집이라 상놈자식은 잘 생겨도 커 갈수록 성정이 좀되고 양반자식은 태어날 때는 솜털만 보송보송 못 났어도 자랄수록 신수가 훤해지고 세상이치에 밝은 법이라는 말이 새삼 돌기 시작했다. 아무렴,  양반 핏줄이 어디 가느냐고, 어련히 정식입학을 했지 않았겠냐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러워했다.

그 택신이가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나서 여고생처럼 깃이 넓은 검정 대학생교복에 노랗게 빛나는 금단추를 반짝이며 처음 마을에 돌아왔을 때 아이들과 마을처녀들은 모두 입을 딱 벌리고 감탄을 했다. 그가 다시 서울로 떠나고 나서 미처 그 모습을 보지 못 한 노인네들은 몹시도 아쉬워하며 둔터댁 대청기둥에 걸린 서울의 대학교정문에서 둔터어른과 택신이가 함께 찍은 입학사진을 보며 울 마을에도 이제 큰 인물이 났다고 대견해했다.
 

어릴 적에 서당에서 한학도 좀 배우고 일제 때 면서기도 몇 년 지내고 지난 해 지방선거에 면장으로 출마하여 3등으로 떨어져 어깨가 축 쳐졌던 둔터어른도 어깨가 쫙 펴졌다. 십 년 전부터 작은집으로 얻어놓은 장터의 <착한네, 하도 성격이 착해 기둥서방 둔터어른이나 장꾼들에게 눈 한 번 흘기지 않아 착하네로 불림>술집에서 매일 밤 자고 이튿날 아침에는 삿가래를 들고 물꼬라도 보러나오 듯이 술집에서 나오는 그의 모습이 그전처럼 쑥스럽지가 않고 에헴, 에헴, 헛기침까지 하면서 아주 당당해지기도 했다. 

 

여름방학이 되자 택신이가 친구 셋을 데리고 귀향했다. 하나같이 허여멀쑥하게 잘 생긴 얼굴에 하이칼라로 깍은 머리 밑이 새파랗게 멋진 대학생들이었다. 그 중 하나는 부산에서 같이 고등학교에 다니던 동창생이고 둘은 대학교에 가서 새로 사귄 친구라고 했다. 

넷이서 반도를 들고 동사 앞 복걸에서 물고기를 잡는데 반도 질이 영 서툴러 고기잡이가 시원치 않자 마을의 같은 또래 친구들이 곡괭이와 쇠스랑을 들고 와서 도랑바닥의 돌을 뒤져 금방 미꾸라지, 피라미에 빠꾸마치(모래무지), 지름쟁이(동사리), 징게미(민물왕새우)등 민물고기 한 바께스를 잡았다. 당수나무밑에서 매운탕을 끓이고 소주를 마시면서 서울의 대학생들과 악수를 하던 청년들은 왠지 서먹해하고 황송해하며 원한다면 밤에 해바라기 불로 궁자(뱀장어)도 잡아주겠다고 했다.

둔터댁이 닭도 두 마리나 잡고 보깡구집에서 두부도 몇 모 사와서 푸짐하게 저녁을 차렸다. 구장집에서 달걀도 한 꾸러미 보내왔다. 저녁을 먹고 나서 마을 청년들은 마을 뒤 임포수의 큰 묏등에서 수박파티를 벌였다. 낮에 고기를 잡아주던 마을 청년들은 해바라기불로 뱀장어를 잡으러 가고 대학생들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기타 소리에 맞추어 둘이는 노래를 하고 택신이가 하모니카를 불어 한층 흥이 올랐을 때쯤 마을처녀들이 찐 옥수수를 한 한 바구니 이고 나타났다.

방앗간집 청화, 구장 댁 은실이와 미애, 춘자, 살짝곰보 옥자도 왔다. 학생들이 같이 놀자고 하자 쭈뼛쭈뼛 망설이던 처녀들이 택신이가 손을 잡아당기며 괜찮다고 하자 주춤주춤 앉아서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잠깐 기타소리가 멎으면 벼 포기 속에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우렁우렁 처녀들의 가슴에 쌍방망이질을 하다가 차츰 잦아질 때쯤 봇도랑에 물 흘러가는 소리가 처녀들의 가슴을 간질거리듯 재잘거렸다. 논둑에는 키 큰 개 망초 꽃이 하얗게 피고 무덤가에는 노란 색 하늘수박(하눌타리)꽃이 함초롬히 이슬에 젖어있었다. 

먹을 것도 없는 집 아낙네가 자꾸만 아이를 배면 슬그머니 따다가 낙태약으로 먹는다는 하늘수박도 여러 덩이 달려있었다. 은하수가 하늘 한가운데로 몰려 쏟아질 듯 가까워지자 여러 번 독촉 끝에 먼저 청화가 <앵두나무 우물가>를 한 곡 불렀다. 이어 미애가 <무너진 사랑탑>을 부를 때쯤 방앗간 집 작동댁이 와서 고함을 치며 딸을 나무라다 청화의 손목을 끌고 가면서 처녀들도 모두 돌아가고 놀이는 끝이 났다.

ⓒ서상균

엉뚱하게도 서울청년들은 아침 일찍 마을에서 쫓겨났다. 전날 밤 덕천고개 천수답에 늦게까지 물을 대고 돌아오던 구장이 웃 각단 대밭 속에서 고시랑대는 소리가 나서 들여다보니 기타 치던 대학생하나가 처녀 하나와 뭔가 쏙닥대고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기 딸 은실이었던 것이었다.

그날 밤 은실이를 혼쭐내 반쯤 죽여 놓고 심야회의를 소집한 구장은 이러다가 마을처녀들 다 버려놓겠다며 기어이 대학생들을 쫓아내기로 했다.
 

혼자 남은 택신이는 집에서 라디오를 들었다. 철사 줄로 거미줄처럼 얽어 감나무에 매달아 놓은 안테나를 보고 세상에 별 희한한 것도 다 있다고 생각하던 마을사람들이 어느 듯 유행가와 재치문답을 즐겨듣게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라디오 연속극 시간이면 마을 처녀들도 대청 끝에 앉아 동백아가씨를 들으면서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바다와 동백꽃을 나름대로 상상해보기도 했다. 오후에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진장만디에 올라간 택신이가 소나무 밑에서 하모니카를 불거나 낮잠을 잤다. 콩밭을 매러 가거나 열무를 솎으러 가는 처녀들은 소문이 날까 두려워 외면하는 척 하면서 지나갔지만 연신 소나무 밑을 기웃거렸다.
 

소먹이는 동네아이들은 푸렁바위에서 한참 물장구를 치고 나면 금방 배가 고팠다. 뭔가 구워먹을 걸 찾아 밭에 간 아이들이 아직 콩도 덜 익었고 고구마도 뿌리가 안 들었다고 하자 불을 피우던 아이들의 배는 점점 더 고프다 못 해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맨땅에 금을 긋고 사발꼰을 두거나 땅따먹기를 해도 재미가 없었다. 

조 부잣집 과수원에서 복숭아나 따다 먹자며 그중 날씬 놈 셋이 철조망 안으로 기어들어가고 마른버짐이 덕지덕지한 아이들이 조바심을 내며 망을 보기로 했다. 날마다 새벽 일찍 일어나 그 많은 복숭아 중에서도 나뭇가지에 매달린 잘 익은 놈이 아닌 벌레 먹어 땅에 떨어진 놈만 먹어 모르고 먹으면 약이 된다는 복숭아벌레까지 씹어 먹은 덕분에 80이 넘도록 눈이 밝다던 부잣집 할매는 지난겨울에 죽었지만 아이들보다도 덩치가 큰 셰퍼드 베루는 여전히 무서웠다. 

아니나 다를까, 금방 베루의 낮게 으르릉대는 소리가 들리더니 아이들이 도로 철조망 밖으로 나왔다. 한 놈은 이마가 긁혀 피까지 흘리며 기어 나왔다.

“야, 느그 그라지 말고 돈 주고 사 온나.”

언제 왔는지 택신이가 500환짜리 빨간 지폐 한 장을 내밀자 꼴깍 침을 삼키면서 아이 둘이 복숭아를 사러갔다. 들판 건너 새로 닦은 신작로에 지프차가 지나가며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시는 언양면민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저녁 여러분을 모시고 저희 화성영화사에서 상영의 막을 올릴 영화는 <낙랑공주와 호동왕자>,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
 이동영화 상영을 선전했다. 아이들은 방학 전에 단체관람 <원술랑>을 떠올리며 <낙랑공주와 호동황자>도 <원술랑>보다 더 재미있을까? 아니야. <두만강아 잘 있거라.> 보다도 더 재미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돈이 있어야지...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서른 개도 넘는 복숭아를 먹기 시합이라도 하듯 후딱 먹어치우니 딱 한 개가 남았다. 그거야 당연히 돈을 낸 택신이가 먹어야지 하고 외면하면서도 아이들은 여전히 침울 꼴깍거렸다. 

남부사람 공동묘지에 하나뿐인 소나무위에서 울던 뻐꾸기가 진장과수원 상수리나무위로 옮겨 앉아 울기 시작하자 마을에선 저녁 짓는 연기가 오르고 해가 설핏해졌다. 아이들은 꼭 뻐꾸기가 울 때마다 저녁밥을 떠올렸다.

 구꾸구꾸 구꾸꾸
 국 끼리고 밥했나
 구꾸구꾸 구꾸꾸
 인자 집에 갈 끼다...

농사를 모두 소작 준 택신이네는 소를 먹이지 않았다. 진장골짝을 지나 소떼가 쇠북도랑을 건널 때쯤 택신이가 맨 뒤에 쳐진 아이를 불렀다.

“와요? 행님.”
“니 방간집에 청화누부 보고 지녁 묵고 큰 미뜽에 좀 오라 캐라.”
“야.”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에게 하나 남은 복숭아를 쥐어주며

“혼자 살짝 오라 캐라.”

눈을 찡긋해보이자 

“야.”

아이는 신이 나서 복숭아를 먹기 시작했다.

 

천막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택신이의 심사가 곱지 못했다. 청화혼자 나오라고 했는데 은실이, 미애, 춘자, 옥자까지 다섯이나 무더기로 나온 것이었다. 

 

이득수 시인

◇이득수 시인은

▷1970년 동아문학상 소설 당선
▷1994년 『문예시대』 시 당선
▷시집 《끈질긴 사랑의 노래》 《꿈꾸는 율도국》 《비오는 날의 연가》 등
▷포토 에세이집 『달팽이와 부츠』 『꿈꾸는 시인은 죽지 않는다』 등
▷장편소설 「장보고의 바다」(2018년 해양문학상 대상 수상작)
▷2021년 4월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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