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을 헤아려보니 지금쯤 이미 집에 도착하여(計程今已到家中·계정금이도가중)/ 일마다 똑같이 벌어지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으리라.(事事眞如眼覩同·사사진여안도동)/ 어린 아들은 문을 뛰쳐나와 반겨 웃고(稚子出門欣笑色·치자출문흔소색)/ 노친께선 문을 열고 기쁜 내색 반에 걱정이 반이네.(老親臨牖喜愁容·노친임유희수용)/ 멀리 있는 자식 염려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慰來慈念長思遠·위래자념장사원)/ 궁벽한 곳에서 잘 지낸다고 분명하게 말씀드리네.(道得剛腸善處窮·도득강장선처궁)/ 산수가 가로막혀 길이 멀어도 생각은 잘도 다녀오니(神去不知山水遠·신거부지산수원)/ 눈발이 날리는 밤하늘에 나 홀로 시를 읊네.(夕天飛雪獨吟風·석천비설독음풍)
위 시는 효전(孝田) 심노숭(沈魯崇·1762~1837)의 「노정을 따져보니(計程)」으로, 그의 문집인 『효전산고(孝田散稿)』에 수록돼 있다.
정조 순조 연간의 문신인 심노숭이 1801년 경상도 기장현(현 부산 기장군)에 유배되었다. 위 시는 적소인 기장에서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집을 그리며 지은 것이다. 1801년(순조 1) 노론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자 시파의 핵심인물이었던 부친 심낙수는 관직이 추삭(追削)되었고, 심노숭도 1801년 2월에 기장으로 유배됐던 것이다. 1806년 정순왕후의 승하를 시작으로 벽파정권이 무너지자 그도 해배되었다.
심노숭은 1783∼1784년을 전후로 성균관에 들어갔고 1790년(정조 14) 경술증광사마시에 진사 2등으로 합격하였다.
그는 유배지에서 『남천일록(南遷日錄)』과 38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문집인 『효전산고(孝田散稿)』를 지었다.
『남천일록』은 기장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매일의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 유배일기로, 총 20권 20책이다. 『효전산고』는 그가 기장에서 쓴 38책 분량의 시문집이다, 그는 지독한 글쟁이였다. 심노숭은 이 책들 외에도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러면 그가 유배지에서 쓴 『남천일록』에 대해 살펴보겠다.
심노숭은 약 6년간의 유배생활을 하며 매일의 일상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록으로 남긴 일기이다.
1책 174쪽, 2책 169쪽, 3책 176쪽, 4책 224쪽, 5책 206쪽, 6책 236쪽, 7책 238쪽, 8책 251쪽, 9책 218쪽, 10책 202쪽, 11책 261쪽, 12책 235쪽, 13책 219쪽, 14책 209쪽, 15책 192쪽, 16책 197쪽, 17책 125쪽, 18책 191쪽, 19책 233쪽, 20책 141쪽으로 총 20권 20책 4097쪽에 이르는 거대 분량의 저술이다.
1801년 2월 23일부터 시작하여 유배길을 왕복하는데 16일, 이후 유배지에서 생활한 1,949일간의 기록으로 유배생활 중 견문한 모든 것들을 담았다. 크게 경상남도 지방의 산천과 풍토, 각 지역에서 자생하는 벌레와 동식물, 당시 경상도 지방 주요 인물들의 활동상과 선행악행, 각 지방의 음식, 개인적인 생활내용, 각종 제례의식, 저자가 가진 문학론, 기장군 학동들의 교육과정 등 당시 서울과 남도지방을 잇는 지역에 존재하던 수많은 지식인과 일반인들, 기타 모든 것들에 대해 견문한 내용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남천일록』 원문을 한국사료총서 제55집 3권으로 발간하였다.
다음은 심노숭의 시문집인 『효전산고』에 대해 간략해보겠다.
이 책은 제1∼5책에 시 1,727수, 제6∼12책에 잡저 187편, 제13∼15책에 지사록(志事錄) 3편, 제16책에 문(文) 42편, 제17∼20책에 술선지(述先志) 4편, 제21책에 포빙여통집(抱氷餘痛集) 1편, 제22·23책에 자저기년(自著紀年) 2편, 제24∼26책에 잡저 105편, 제27∼29책에 주묵여간(朱墨餘間) 6편, 제30책에 이후록(貽後錄) 1편, 제31책에 문 50편, 제32책에 악몽록(噩夢錄) 1편, 제33·34책에 자저실기(自著實紀) 2편, 제35책에 문 50편, 제36·37책에 문시일록(問寺日錄) 2편, 제38책에 성교일록(城郊日錄)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 가운데 「서호가(西湖歌)」 12수는 당나라 장자용(張子容)의 「수조가(水調歌)」와 「양주가(凉州歌)」의 첩운을 모방한 작품으로, 서호의 아름다운 풍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추흥(秋興)」 19수는 두보(杜甫)의 추흥을 모방한 작품으로, 아름다우면서도 쓸쓸한 가을의 경치와 더불어 불우한 시인의 감회를 잘 표현하고 있다. 「제김생화(題金生畵)」는 신라의 명필 김생의 그림을 보고 읊은 것으로, 그림에도 탁월한 경지에 이르렀음을 찬미한 내용이다.
「지사록」은 아버지 심관수의 상소문을 모은 것으로, 당시의 정세를 엿볼 수 있다. 「술선지」는 조상들의 행의 중 중요한 것을 세보(世譜)와 언행기(言行記)로 나누어 기록한 것이다. 「포빙여통집」에서는 당시 노론과 소론 사이의 권력 다툼의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하였다. 특히, 자신이 아버지와 관련되어 피해를 입은 내역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삶과 격동기의 정치·사회·문화적 실상을 기록한 자서전 『자저실기(自著實紀)』도 지었다. 또한 30세에 동갑인 아내가 죽자 26제(題)의 시와 23편의 문을 지어 일부 글들을 『침상집(枕上集)』과 『미안기(眉眼記)』라는 소집(小集)으로 엮기도 하였다. 또 선대의 행적을 기록한 『적선세가(積善世家)』 8책, 방대한 패사소품류들을 모은 야사집인 『대동패림(大東稗林)』 56종을 저술하였다. 심노숭은 이 외에도 『단향연축(丹香聯軸)』·『지사록(志事錄)』·『은파산고(恩坡散稿)』를 편찬하였고, 『정변록(定辨錄)』을 산정(删定)하였다.
그는 여러 벼슬을 거치다 1825년(순조 25) 임천군수에서 파직된 후 경기도 파주에 우거하다 1837년(헌종 3) 1월 76세로 세상을 버렸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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