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시인의 지리산 산책(143) 지리산 목압마을, 2023년 대동회 열고 한해 마무리

12월 28일 오전 10시 마을회관서 결산회
이장 "재가설 중인 목압교 오는 6월 예정"
마을 물 관리 위험해 담당자 정하지 못해

인저리타임 승인 2024.01.01 05:06 의견 0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목압마을의 대동회가 지난 28일 오전 10시에 열렸다. 대동회는 한 해 동안의 마을 살림살이를 결산하고 향후 사업 등에 대해 주민들과 의논하는 자리이다. 그러면서 주민들 간 친목을 도모하고 지난 1년간 무탈하게 잘 살았는지 등 서로 안부를 묻는다. 마을마다 대동회를 개최함으로써 1년을 마무리한다.

필자는 대동회가 열리기 전인 오전 8시쯤에 마을 주민들이 먹는 물의 취수원에 갔다 왔다. 마을의 물 관리자는 1년 동안 활동한다. 목압마을은 산물을 먹는다. 2023년 1년 동안 필자가 마을의 물을 관리하였으므로, 2024년에는 다른 사람이 맡아서 해야 한다.

마을 남자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대동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조해훈


산에서 내려오면서 마을회관에 들렀다. 마을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주방에서 전을 굽는 등 음식준비를 하고 계셨다. 남자들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있었다. 마을회관 앞에 어머니(98)와 함께 사는 고법석(58) 씨가 길쭉한 상(床)을 두 개 붙여 폈다. 필자는 상을 닦고 나무젓가락을 쭉 놓았다. 최동환(62) 이장이 결산보고를 하고 나면 참석한 주민들이 함께 상에서 식사를 한다. 또한 결산보고를 할 때 다들 상에 앉아서 이장이 나눠준 유인물을 보기 때문에 미리 펴 준비를 해놓아야 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이장이 “지금부터 대동회를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중간에 서서 말을 했다. 그러면서 “목압다리 재가설 공사를 내년 6월 말까지 마무리한다고 합니다. 그때까지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그리 알고 계십시오. 자, 그럼 모두 유인물을 보세요. 유인물을 보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장은 한 해 동안 마을의 수입과 지출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마을회관 주방에서 아주머니들이 대동회 결산 후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조해훈


지난달인 11월 21일에 경남 통영으로 마을 야유회 다녀온 것에 대해서도 결산을 했다. 필자도 찬조금을 조금 냈지만 다른 주민들도 찬조금을 냈다고 했다. 목압다리 공사 시 다리에 일주문을 다시 세울 비용도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결산이 끝난 후 일꾼 선출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장은 지난해 다시 추대되었으니 아직 임기가 1년 남았다. 부녀회장은 지난해 하시던 분이 다시 하는 걸로 결정됐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가 물 관리자를 뽑는 일이었다. 물 관리자는 관행상 마을 주민들이 돌아가면서 1년씩 하는 걸로 돼 있다. 지난 해 대동회에서도 할 사람이 없어 필자가 봉사차원에서 자원을 해 올해 1년간 했다. 3년 전에도 필자가 1년을 했다. 주민 중 세 사람이 한 번도 하지 않은 걸로 이장이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다들 사정이 있어 안 된다고 해 결국 뽑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마을 할머니들이 돼지수육을 썰고 있다. 사진= 조해훈


물 관리자가 하는 일이 위험하고 힘들다. 국사암에서 지리산 주 봉우리 중의 하나인 삼신봉을 향해 한참을 올라가야 한다. 물 관리자만 다녀 길이 제대로 없다. 필자는 늘 낫을 들고 다니며 대나무를 베고 잔 나무들을 부러뜨려 치우는 등 길을 만든다. 대밭 속을 지나 계곡 옆을 따라 가는 데 쉽지 않다. 3년 전 여름에 비가 많이 올 때 올라가다 미끄러져 계곡으로 떨어지는 바람에 온 몸에 타박상을 입기도 했다. 위험한 건 그것뿐만 아니다. 취수원 인근에는 멧돼지가 많다. 그래서 혼자서 가기에는 상당히 위험하다. 요즘에는 곰까지 마구잡이로 돌아다닌다고 하여 주민들이 물 관리자 역할을 하길 더욱 꺼린다.

2023년 11월 목압마을 주민들이 경남 통영으로 야유회를 갔을 때 유람선을 타고 있는 모습. 사진= 조해훈 제공


그 뿐이 아니다. 자그마한 폭포의 물을 취수하는데 시설이 아주 낙후돼 있어 나뭇잎 등에 의해 물이 막혀 내려가지 않을 경우 해야 할 일이 많다. 그러다보니 작업 시간이 기본적으로 30분에서 많게는 2시간까지 소요된다. 작업하다 손이 돌에 찍히거나 긁혀 피가 나는 건 예사다. 그러니 아무도 물 관리자를 하겠다고 나서지 않는 것이다.

마을회관에서 최동환 이장이 2023년도 목압마을의 살림살이 결산보고를 하고 있다. 사진=조해훈


여하튼 물 관리자 뽑는 건 미완으로 끝났다. 물 관리자를 정하는 건 이장이 알아서 할 일이다. 한 어르신이 필자에게 “하는 김에 삼 세 번 하시오.”라고 말씀 하셨지만, 더 한다는 게 사실상 쉽지 않다. 남동생 조병훈이 화개버스터미널 인근에서 운영하는 ‘쉼표하나’ 카페의 일도 도와주어야 하지만, 필자가 적어야 할 글들이 너무 많다. 늘 글 빚에 허덕인다. 게다가 자동차가 없어 혼자 취수원까지 오르내린다는 건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마을회관에서 결산회를 마친 후 주민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해훈


“자, 그러면 이것으로 목압마을 대동회를 마치고 식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이장이 말하자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하던 아주머니들이 음식을 들고 와 상에 차렸다. 팥 시루떡과 돼지수육, 전, 그리고 회까지 푸짐했다. 하동읍내 장에서 광어와 밀치회를 사왔다고 했다. 술 마실 사람은 술을 마셨다. 그렇게 먹다보니 떡국이 나왔다. 사람들은 떡국까지 다 먹고는 한 사람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용운민박의 김태곤(84) 어르신은 최근에 틀니를 하려고 이를 다 뽑아 오물오물 거리며 늦게까지 드셨다. 필자는 거의 마지막에 회관에서 나왔다. 글 써 보낼 게 있어 쉼표하나 카페로 내려왔다. 해마다 마을 대동회를 마치고 나면 1년이 진짜 다 간 느낌이 든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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