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51)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7장 천하장사, 순찬씨가 무너지다(5)

이득수 승인 2024.05.24 15:21 의견 0

“대신 우리 시가처럼 명절 쐬기 좋은 시집이 어디 있어. 그저 먹기지 뭐.”

하며 슬비씨가 웃었다. 명절이라 특별히 성대한 제사상을 차리는 것도 아니고 오래 잔뼈가 굵은 신평시장의 단골들에게 꼭 필요한 제수(祭需)만 사다 간단히 차리면 되니 미리 며느리를 불러 지지고 볶고 할 일도 없어 명절안날이 오히려 푸근하게 쉬는 날이라는 말이었다. 거기에다 시누남편인 손서방마저도 가게가 바쁘다며 명절에도 거의 처갓집에 오지 않거나 오더라도 달랑 밥 한 끼 먹고 돌아가기가 바쁘니 아예 시집살이가 없는 편이기도 했다.

17. 천하장사, 순찬씨가 무너지다(5)

“영서네는 인자 신평에 갔을까?”

설날 아침 여덟시 경에 아들내외와 식탁에 둘러앉은 열찬씨가 혼잣말처럼 뇌까리자

“아까 간다고 전화가 왔어요. 김서방은 고추친구들 만나서 한잔 한다고 어제 저녁에 택시타고 가고 아침엔 슬비가 차를 가지고 간다고요.”

“그래. 수원에도 제사를 잘 지내는지 모르겠네.”

“어제 울산대름이 올라간다고 전화가 왔고 며칠 전에 현우각시한테 제사비 부쳤다고 전화도 했고 영주형님하고도 통화를 했지요.”

“그래. 백찬이가 먼 길에 고생이 많겠네.”

“그래도 직접 부모님 사진 앞에서 절을 하는 대름이 낫지 당신처럼 산소에나 가는 것이 나을까?”

“그래 나도 그 때 억지로라도 제사를 하나 얻어올 걸 포기한 것이 후회되네. 설, 추석 명절이라는 것이 집에서 제사를 모시느라 여자들은 지짐을 부치고 사내들은 밤을 까고 오징어와 달걀을 쳐서 홍동백서(紅東白西) 들먹이며 제사상을 차려야 명절기분이 나는 거지.”

“그러게 말이요. 기왕 하는 음식을 제사라고 조금 넉넉하게 구색을 갖추면 사위나 손님들이 와도 상차리기도 좋고.”

영순씨도 금방 동의했다. 벌써 20년도 더 전에 막내 백찬씨가 장가를 가자 영주와 언양으로 떨어져 살던 큰어머니와 어머니 두 동서가 만난 자리에서 집안의 제사를 다시 가르자는 말이 나왔다.

동생 백찬이의 사주에 누군가 선대제사를 모시면 좋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할아버지이상 선대제사는 언양의 상찬씨가, 큰아버지의 제사는 버든의 정찬씨가 그리고 아버지의 제사는 영주의 일찬씨가 지내오던 것 외에 언양의 상찬씨가 밥만 한 그릇씩 더 떠놓은 아주 젊은 나이에 총각으로 죽은 두 삼촌들의 제사를 백찬씨가 지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평소 어른들이나 형들의 말이면 절대 거부하는 법이 없이 고분고분 잘 듣던 백찬씨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그러자 엉뚱하게도 영순씨가

“보소. 그 제사 차라리 우리가 지내면 안 되겠능교? 제사를 지내면 명절기분도 나고 먹을 것도 넉넉하고 또 멀리 영주까지 안 가도 되고.”

하자 열찬씨도 귀가 솔깃해

“그거 참 좋은 생각이야.”

하며 동의하고 당장 어머니에게 이야기했지만

“열찬이 니는 팔자에 제사를 모시면 안 되는 팔자란다. 마 잔주코 있어라.”

입을 한번 씰룩거리며 완강하게 거부했다. 그렇게 입을 한 번 씰룩거리면 다시는 마음이 변하지 않은 것을 잘 아는 영순씨와 열찬씨는 못내 섭섭한데 비해 막내 백찬씨와 제수씨는 끝끝내 묵묵부답이었다. 아마도 딸 부잣집 넷째 딸로 태어난 동서가 제사를 지내면 골치 아픈 걸 알고 절대로 받지 말라고 한 것 같다며 영순씨가 웃었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누구는 없어서 탈인데 누구는 복도 차버린다면서.

“우리끼리 먹는 데 간단히 차리지, 뭐 할라꼬 이래 진수성찬이고?”

마치 제사라도 지내듯 오색 나물을 무치고 탕국처럼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을 끓이고 커다란 생선을 찐 것은 아니지만 먹을 만한 침조기와 가자미를 굽고 또 일부러 산적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몇 가지 지짐까지 붙여 상을 차리는 영순씨를 보고 말하자

“설날에 제대로 못 먹으면 일 년 내내 굶주린다는 말이 있어요. 또 명절에 김치하고 밥을 먹으면 뭐 김장농사가 잘 안 된다든가 좌우간 내가 시집올 때 어른들이 뭐라 하던데.”

하면서 상을 차리고

“아가, 많이 먹어라.”

“네. 어머니.”

뭘 할 줄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함부로 나서기가 그래서 그런지 며느리 상미씨는 벌써 시집온 지 3년인데도 단 한번 밥을 하거나 무얼 끓이거나 선뜻 나서는 법이 없이 엉거주춤 옆에 서서 심부름이나 하려하지만 영순씨는 저도 나이 들어 제 책임이 되면 안 시켜도 다 알아서 할 것이라며 억지로 가르치거나 시키려 않았다.]

슬비씨가 하는 말이 이집에 들어온 사위나 며느리가 딱 한 가지씩 주눅이 드는 것이 있는데 사위 도연씨는 장인 열찬씨의 경륜이나 집안의 리드, 특히 자신들이 살아가는데 생기는 이런저런 애로사항을 슬쩍슬쩍 지나가는 말로 해결책을 제시하고 좀 뭣 한 일은 슬그머니 해결해주는데 놀라고 며느리 상미씨는 시어머니의 깔끔한 살림살이와 맛있는 식사와 넉넉한 인심과 자상함에 감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도연씨는 장모 영순씨의 맛있는 음식이 너무나 흔감해 친구들과 술만 마시면 자랑이 늘어진다고 했고 며느리 상미씨는 부산에만 오면 슬비네까지 일곱 식구가 다 모여 가족회식을 하며 가장인 열찬씨가 한 턱 쏘는 꽤 비산 정찬(正餐)인 구덕포 한성횟집의 자연산 회나, 언양 가천린포크의 한우등심구이에 완전히 감동을 먹었다고 했다.

또 그 밖에도 부산 고유의 음식이라며 올 때마다 새로운 메뉴를 접하는 낙지볶음, 복국, 밀면, 곰장어, 복국, 아구찜에 고등어갈비까지 첫 대면을 해도 본래 식성이 좋아서 그런지 단 한 가지도 거북함이 없이 입에 살살 녹는지라 부산에 시집오기를 참으로 잘했다는 생각이 다 든다고 했다.

“우짤래? 당신하고 며느리도 따라 갈래? 나중에 아이 생기면 따라다니기 힘들 텐데.”

“뭐, 그라지요. 날씨도 따뜻하고.”

두 여인도 순순히 따라나섰고 운전도 영순씨가 직접 했다.

“역시 부산사람이 고향이 언양이라는 것은 큰 행운이지. 남들은 추석 며칠 전부터 열네 시간이 걸리니 열일곱 시간이 걸리니 하는 귀성을 우리는 명절당일 단 한 시간이면 해결되니 말이야. 나는 이럴 때마다 우리 아버지와 조상님께 고마움을 금할 수 없지. 고향 가까운 것이 자갈 논 서마지기 보다 낫다고 말이야.”

훤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면서 열찬씨가 신명을 내는데 아들이

“아버지, 그 자갈논 서 마지기란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아, 그건 강가의 논이 자갈이 많아 쟁기질만 힘들고 소출도 적은데다 큰물이 나면 아예 바닥까지 휩쓸려 떠내려가 씨도 못 건지니 거의 쓸모가 없단 말이지.”

하는 사이에 자동차는 양산을 지나고 통도사를 지나 금방 진장만디가 나타나더니 톨게이틀 한 바퀴 빙 돌아 곧장 진장 종찬씨댁에 도착하니 10기가 조금 못 되었는데 벌써 형수와 조카들이 마당에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삼촌 왔는가베.”

“예. 형수는 몸이 아프다더니 좀 어떵교?”

“뭐 장 그렇지.”

“예. 아아들 하고 산소 둘러보고 올 게요.”

하고 다시 차를 타고 큰 공동묘지 할머니 산소 앞에 산적과 지짐, 과일의 세 종류 안주를 진설하고 술을 부으며 절을 하기 위해 주욱 줄을 서는데

“당신 기분 좋겠네. 제(祭)군도 많고 청(靑)치마 며느리도 있고.”

영순씨가 웃는데

“작년부턴가 언양형님이 안 오시니 내가 맨 위에 서는데 많이 섭섭하고도 부담스럽네. 또 끝이 되어 자리도 초시기 위가 아닌 순 까시밭이고.”

하니

“삼촌 자리 따로 하나 준비할까요?”

언양의 홍근씨가 말했지만

“그럴 것 없다. 누구나 겪는 일이다. 돌아가신 위에 형님들이나 선대어른들도 다 이런 감정을 느끼며 사시다 갔겠지.”

하고 큰어머니와 어머니의 성묘를 하고 다시 자동차로 작은 공동묘지 큰 아버지의 산소에 가서 참배를 하고 마지막으로 바로 종찬씨 집 울타리 밑의 아버지산소에 절을 한 뒤 제군들을 비잉 둘러앉게 하고 남은 술과 안주를 서열 순으로 한 잔씩 음복하고 2층집으로 올라가

“형님, 저 왔심더. 한잔 하구로 어서 내려오소.”

벽에 걸린 사진을 쳐다보는데 막내 해숙이가 술상을 차려왔다.

“형수가 얼른 나아야 될 건데. 배에 무얼 찼다고 하니 쉬운 일도 아니고 이 장장골이 아이 넷은 다 우짤꼬?”

열찬씨가 직설적으로 본론에 들어갔다. 듣기로 형수 쇠꼴댁이 대장암을 수술하고 향낭까지 찼으니 회복하기가 힘들 것인데 살아생전 하나라도 출가를 시켰으면 싶어서였다.

“잔 아부지 보소!”

순간 뜻밖에도 형수가 만면에 웃음을 띠우면서

“나도 인자 며늘 하나 본다. 설 씨고 우리 관우가 장가를 간다 아이가?”

하면서 합죽 웃었다.

“아아, 그 때 형님 돌아가셨을 때 왔던 그 처녀?”

영순씨가 눈이 반짝하더니

“처녀가 인물도 훤하고 행동거지가 참 삼동갖던데. 잘 됐네.”

하며 기뻐했다.

“그래 잘 됐네. 요즘 세상에 순서가 어데 있노? 먼저 지 짝 찾아오는 놈부터 보내는 거지.”

하는 순간 미처 영순씨가 옆구리를 지르기도 전에 장남 순우씨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순씨 얼굴이 또 찌푸려졌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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