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53)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7장 천하장사, 순찬씨가 무너지다(7)

이득수 승인 2024.05.28 08:00 의견 0

누구도 대답하는 사람이 없이 싸늘하게 얼어붙은 분위기로 “형님 저희들 갑니더.”

“그래. 제수씨 조심해서 가소. 집안분위기가 말이 아니라서 미안함더.”

“아임더. 아주바님이 걱정이겠네요.”

“그러나? 정석이가 공부를 잘 하니까 공부를 잘 하는 아이를 놓겠지.”

“...”

“공부사 어데 정석이만 잘 하나. 저거 아부지 열찬이 대름도 잘 하고 또 큰 아부지 일찬이대름도 더 잘하지.”

일흔다섯 류길자 여사의 목소리가 골목까지 따라 나왔다.

제17장 천하장사, 순찬씨가 무너지다(7)

“누님, 잘 있었소?”

“고모!”

등말리누님집에 들어서며 인사를 하자

“아이고, 이기 누고? 우리 정석이하고 질부가 아이가? 오래 살다보이 우리 집에 서울사람들이 다 오네.”

가뜩이나 더 작아 보이는 누님이 반색을 하는데

“아무도 없나? 집이 와 이래 썰렁하노?”

“우리 집에 뭐 제사가 있나? 아침에 명절예배 드리고 떡국 한 그륵썩 갈라묵고 다들 저거 처가에 갔다.”

“자형, 산소는?”

“큰 아는 명절에 전라도 처가 간다고 미리 갔다 왔고 저거 새이 안 간다고 둘째 셋째도 바로 사촌하고 부산의 처가로 갔다.”

“그라면 이 너른 집에 누님 혼자가?”

“그라면 우짜겠노? 저녁에 청주에서 현주가 올랑가?”

하며 쟁반에 사과 두 알을 올려 들고 오며

“우짜노? 우리 집엔 제사가 없어서 동생 니 줄 밥도 없다. 커피나 한잔 쓱 하든지...”

말끝을 흐리는데

“밥이사 뭐 이적지 주전부리해서 배도 안 고프고 이따 김해에 가서 묵으면 되고.”

하던 열찬씨가

“우리사 그렇다 카고 이따 은주랑 위서방이랑 오면 뭐 해 믹일가 카능교?”

“몰라. 내가 아나? 살림 사는 현욱이애미가 안 해놓으면 우짤 재주가 있나?”

“예에?”

깜짝 놀란 영순씨가

“위서방 장개온 지 아직 5년도 안 된 새신랑 아잉교? 그런 새 손을 굶긴단 말잉교?”

“내가 살림 능가준지 벌써 10년이 넘는데 무슨 힘이나 골리가 있나? 저거 알아서 할 일이지.”

“형님, 암만 그래도...”

영순씨가 혀를 끌끌 차는데

“안 굶어죽을라 카면 현주 지라도 해묵겠지.”

자신과는 절대로 관계없는 일이라며 완강히 끊었다. 기가 찬 열찬씨가

“가자!”

일어서자 영순씨가 재빨리 정석에게 눈짓을 했다.

“고모!”

정석이가 품에서 봉투를 꺼내 건네주자

“우야꼬! 내가 서울 돈을 다 구경하네.”

재빨리 받아 넣고 열찬씨를 쳐다보며

“이래 가서 우짜노? 너거 자영이 있으면 술이라도 한 잔 할 낀데.”

하고 문을 열어주었다. 아들내외가 자동차시동을 걸러 한참 앞인 네 갈래 길에 가는 사이에

“보소!”

열찬씨의 팔을 잡아당긴 영순씨가

“정석이 보고 미리 봉투 안 만들어오라 캤으면 큰일 날 뻔했네.”

한숨을 쉬더니

“그나저나 저래 준비도 없이 사위는 우째 볼랑고?”

“그래 말이다. 옛날 명촌댁이도 묵을 거는 안 떠랐는데.”

“정말로 이건 말도 아이다. 내 며느리 상미 보기가 민망해서 죽을 뻔 했다.”

“우짜겠노? 못 사는 누님, 못 배운 누님이 있는 것도 다 내 팔자거니 하는 거지.”

열찬씨가 네 명이나 되는 누님들 사이에서 명절을 보내는 하나의 원칙을 세워 한자리에서 밝힌 일이 있는데 그건 큰누님이 살았을 때는 신평 큰누님을 찾아가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큰누님이 돌아가시면 김해 작은 누님을 찾아가고 그 다음엔 명촌, 장촌 순으로 한다는 것이었다. 당시는 아직도 형편이 넉넉잖아 봉투도 명절 때 찾아가는 누님만 준다고. 그러자 평소 말이 없는 큰누님은 얼굴이 발개지면서 합죽 웃는 것이 매우 만족한 표정이었는데

“나는 좀 많이 억울타. 동생 니를 내가 제일 많이 업어 키우고 또 내가 제일 멀리 외로 떨어져 사는데 말이다. 그렇지만 세 살이 많아도 언니는 언닌데 큰언니 챙겨 준다카이 나도 찬성이다. 그렇지만 언니가 오래 살고 내가 일찍 죽으면 맛도 못 보겠네. 할렐루야!”

하고 흔쾌히 넘어가

“예. 김해는 휴가라든지 명절 아일 때 한 번씩 갈 게요.”

하는데

“아이구, 우리는 목 빠지겠네. 안 그래도 우리 세 째 준식이는 친가, 외가, 처가 삼족을 다 쳐서 집안에 내세울 사람은 부산외삼촌 하나밖에 없는데 생전에 한번 보기도 힘들다고 난린데...”

못내 아쉬워하는데

“마, 됐다. 지보다 네 살 밖에 안 많은 나도 있는데 뭐로 그래 바래쌓노?”

“가시나 가만있어라. 니는 부잣집에 서방 있는데 뭐가 아쉽노? 부산동생 클 때 내가 많이 업어주고 데꼬 댕기며 놀았지. 내가 암죽을 먹여 키운 백찬이를 업고 열찬이 손을 잡고 웃각단 대동아재 대밭 뒤에서 장사나간 엄마를 기다린다고 깜깜한 마구뜰 논에다 대고 ‘엄마 오나? 엄마 오나?’를 외칠 때 세상에 답답한 일이라고 없는 니는 잠이나 자면서 말이야.”

금방 눈물이라도 터뜨릴 눈치라

“그래 언양 사는 누님들이야 장날에 미리 약속하고 큰누님 난전에서 만나면 되지. 같이 소피국물도 먹고.”

해서 몇 번인가 언양장에 찾아가 소피국물도 먹은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질부가 방긋방긋 웃으며 인사는 참 잘 하는데 말이야...”

차에 오르면서 열찬씨가 못 내 아쉬워하자

“그 예기는 그만 하고 인자 김해고모 이야기나 합시다.”

며느리 보기가 민망한지 영순씨가 화제를 돌렸다.

“김해누님이사 기도가 좀 긴 것 말고 별 문제가 있나?”

열찬씨의 말에

“길어도 어지간히 길어야지. 거기다 시도 때도 없는 ‘할렐루야!’에 ‘주여!’에.”

“아, 그거사 개인적 신앙문젠데 우리가 우짜겠노?”

“개인적 신앙문제에 그치면 다행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불편해서 그렇지.”

“그거야 우짜겠노? 형제간에.”

어쩌다 형제들이 모인 자리에서 ‘자, 다 같이 기도합시다.’하면서 예배가 시작될 때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해 도망가는 장촌의 고서방을 필두로 억지로 마지 못 해 눈을 감고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백찬씨내외와 덕찬씨가 졸갑증을 못 이겨 눈을 떴다 감았다를 반복하다 한 단락이 끝난다 싶으면 미리 “아아멘!”

백찬씨가 일부러 크게 선창해도 순찬씨는 끄덕도 않고 다시 기도를 이어나갔다.

“좀 길기는 하지만 누가 형제들과 조카들, 그 많은 대가족을 일일이 하느님 앞에 빌어줄 사람이 있는가? 그렇다고 자기 일 하나 미결 없이 아들딸 5남매를 잘도 건사해 출가를 다 시킨 마당에.”

“하긴 우리 형님만큼 당차고 짭찔받은 사람도 없지. 그렇지만 조용하게 기도하고 묵상하는 우리 천주교와 달리 개신교는 너무 요란하게 찬양하고 집요하게 전도를 해 사람들이 힘들어하지. 또 너무 많은 행사를 만들어 사람을 붙잡아 놓고 각종 헌금을 하게 만드는 거나...”

“그래. 내 다른 것은 몰라도 전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것은 인정하지. 우리누님이야 육교 밑에서 딸기나 단감을 팔다 손님들에게 예수를 믿으라며 덤을 하나씩 더 주고 전도하는 사람이니 가족이니 지인 중에 아직도 안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게 용서가 되겠어?”

“당신 아플 때 병원에 와서 다른 환자나 보호자 심지어 간호사한테까지 대놓고 전도를 하는 것은 둘째로 치고라도 당신의 출판기념회나 퇴임식장에서도 남들이 ‘아이구, 누님 되 가 봐요. 참 좋겠네요.’ 하면 ‘예. 하느님 믿어서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예수를 믿으세요.’ 하는 정도는 약과고 가만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내가 가열찬시인 누님인데요. 예수를 믿으세요.’ 하고 들이대니 사람들이 얼마나 황당하겠어요?”

“좀 그렇긴 하지만 나보다 나이가 열다섯 살이나 많은 팔십이 다 된 누님인데 내가 우짜겠노?”

하며 둘이 약속이나 한 듯 며느리의 눈치를 살피는데 따르르 휴대폰이 울리면서

“외삼촌!”

둘째 용철씨의 목소리였다.

“설은 잘 쐬었능교?”

“그래. 우리 지금 너거 엄마 보러 가고 있다.”

“아, 예. 그 보다 미리 드릴 말씀이 있어서...”

“그래. 말 해봐라.”

“예. 요새 엄마가 좀 이상합니더.”

“이상하다니?”

“전부터 사람이 기가 없이 늘 꾸벅꾸벅 졸고 기도나 찬송도 잘 안 하고 일요일 교회 가는 것도 잊어버려 이제 우리 어머니도 많이 늙으셨구나 생각들 했는데 얼마 전에...”

“그래. 얼마 전에?”

“엄마 혼자 집에 두고 형님, 형수가 가족이 모두 출근한 사이에 집에 불을 냈다 아잉교?”

“불을 내다니?”

“예. 일부러 불을 낸 건 아이고 물 덮여서 점심 묵을라고 그랬는지 커피를 끓이려고 그랬는지 좌우간 가스랜지에 불을 켜놓고 그만 잊어버리고 잠이 든 바람에 불이 나서 말입니다.”

“저런! 사람은 안 다치고.”

“다행히 옆집에서 연기가 나는 것을 보고 일찍 가스밸브를 잠가서 냄비만 태우고 큰 피해는 없는데 소방차까지 오는 걸 보고 엄마가 많이 놀란 모양입니더.”

“그래서?”

“예. 요새는 말도 통 없고 식사도 잘 안 하고 혼자 멍하니 앉았거나 알아듣지도 못 하는 말을 중얼중얼 하거나 꾸뻑꾸뻑 졸거나...”

“저런! 기도나 찬송은 안 하시고?”

“예. 할렐루야나 주여 소리도 통 안 하십니다.”

“그래. 다 가 간다. 있다 보자.”

하고 열찬씨가 왜 그럴까 골똘히 생각에 빠지는데

“우리 형님이 그만 일로 그럴 분이 아닌데 무슨 일이 있었을까?”

영순씨가 아무래도 수상하다는 표정이라

“무슨 일이 있기는? 나이 들어서 그렇지. 우리 누님이 젊어서 여북 고생을 많이 했나?”

하다 앗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하마터면 스무 살 남짓해서 정신분열증을 겪은 백찬씨와 일찬씨, 7남매 중에서 제일 머리가 똑똑하다는 두 사람이 겪은 그 어두운 터널, 나머지 5남매까지 너무나 당황하고 무섭고 음울하던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