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69)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18장 만두가게 개업(9)

이득수 승인 2024.07.07 17:14 의견 0

“슬비아빠가 살 깁니더. 화명동에 참게매운탕 잘 하는 집 있다고 자기가 살라캅디다.”

“그런가?‘

하면서 안내하는 사람에게 봉투하나를 얻어 돈을 넣는데

“아, 생각났다. 유길자씨가 몇 혼지 알아봐 주소.”

열찬씨가 마침내 족보작업을 할 때 본 이름을 기억해내는데

“안 나옵니다. 퇴원을 하셨는지.”

“아일 낀데. 옳지. 그럼 류길자로 찾아보이소.”

“예. 나옵니다. 917호.”

“감사합니다.”

18. 만두가게 개업(9)

엘리베이터를 타고 9층 병실을 찾아가니 환자는 보이지 않고 상찬씨만 침대에 멍하니 걸터앉아 있었다.

“형님!”

“오빠!”

“그래 동생 오나? 박서방네 하고 고서방네도 왔네.”

하면서도 시선은 영순씨를 향하여

“제수씨가 다 태워왔는가베. 욕받심더.”

하고 박카스를 한 병씩 건네는데

“오빠, 월께새이는 어데 갔노? 환자가 안 보이네.”

“아, 그래. 지금 치료중인데.”

“그라면 한참 기다리야 되나?”

하며 간병인용 의자와 침대에 기대앉는데

“별 치료도 아이고 우리 수미하고 옆방에서 보로꾸게임한다 아이가?”

“그래요?”

하며 입구에 커튼이 쳐진 옆방으로 들어가니

“엄마, 그것도 못 맞추나? 옳지, 그래 3각형, 맞아 3각형!”

둘째딸 수미가 얼굴이 핼쓱해진 제 어미를 어르는데

“가시나야, 내가 뭐 바본 줄 아나?”

하며 고개를 드는 4촌 형수 류길자여사의 얼굴에 살이 다 빠져 왼쪽 이마의 점과 기미가 뚜렷하고 전체적으로 창백하고 그 큰 덩치도 많이 줄어든 것 같았다.

“형수!”

“월깨새이야!”

“형님!”

저마다 인사를 하며 손을 잡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왔나?”

하고 입술을 달막달막하는 것이 누군가 생각이 잘 안 나거나 입이 잘 안 떨어지는 것 같더니

“우리 정석이는 안 왔네. 백찬이대름도.”

엉뚱한 한 마디를 던지고 도로 블록게임으로 눈을 돌렸다.

“우짜꼬? 안주 점심 안 묵었제?”

평소 자기가 할 일에 대해서 철두철미하고 특히 열찬씨와 정석이에 대해서는 과분할 정도로 정성을 다하는 그 친절함이 묻어나는데

“아임더. 김해누님이 요양병원에 입원했다 캐서 나선 김에 거게도 가야됨더. 밥은 거기서 먹지요.”

“뭐라? 김서방네가. 하긴 상철이애미도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그라고 보이 김 서방 죽은 지도 십년이 넘었네.”

하고 상념에 젖었다.

“의사는 뭐라카등교? 치료하면 좀 낫고?”

“아이다. 너무 늦어서 나아지기는 힘들고 더 안 나빠지면 다행이란다.”

“병원에는 얼마나 더 있을 건데요?”

“급한 불 끄면 나가야지. 웅촌인가 어데 가면 아이들 유치원처럼 저런 사람들을 낮에 데리고 노는 시설이 있단다. 낮에는 거게 보내고 저녁엔 내가 찾아오고.”

“오빠가 고생이 많겠네. 우짜든동 오빠라도 몸조심하소.”

하며 순찬씨와 영순씨가 봉투를 꺼내는데 금찬씨는 벌써 저만치 물러나 상찬씨에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또 한참을 달려 진례면의 큰길에서 논길을 한참이나 달려가니 나지막한 야산에 기댄 가다란 5층 건물이 하나 나왔는데 거기가 바로 요양병원인 모양이었다.

“어라? 불교재단인데?”

입구를 올라가며 언덕에 새워진 등에 점이 빼곡한 사슴조형물을 보며 열찬씨가 의아해하는데

“기도원 비슷하게 운영되는 기독교 요양병원은 좀 시끄럽기도 하고 해서 용철이가 일부러 조용한데로 모셨답니다.”

전에 1년 동안 데리고 있었던 막내딸 미옥이와 전화통화로 사정을 들은 영순씨가

“세상에, 교회권사님을 우째 절에서 하는 요양원에?”

탄식하는 금찬씨에게

“형님이 다행히 말을 안 하는 조용한 치매에 걸려서 여기다 모셨답니다. 요새는 기도나 찬송은 물론 할렐루야나 주여도 잘 안한답니다. 아이들 말로 그게 바로 평생 하느님만 믿고 한 명이라도 더 전도하려고 노력한 늙은 권사에 대한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합디다. 만약 성할 때처럼 아무나 잡고 하느님 믿으라고 하고 찬송을 하고 기도를 하고 주여와 할렐루야를 외치면 어느 요양병원에서 받아 주겠나고 말입니다.”

영순씨의 말에

“할렐루야!”

믿지 않은 덕찬씨가 활짝 웃는데 금찬씨는

“용철이는 와 있는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라

“지금 일이 바빠서 면회하고 있으면 천천히 오겠답니다.”

영순씨가 말해도 뭐가 불만인지 얼굴이 펴지지 않는데

“이순찬할머니가 몇 호지요?”

안내에게 열찬씨가 묻자

“아, 그 천사할머니 말인가요. 3층에 8호실. 그라고 보니 많이 닮았네? 큰아들인가요?”

“아니요. 동생.”

“맞다. 머리도 꼭 같은 색으로 셌네.”

하며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3층 8호실로 올라가

“누님!”

“형님!”

“세이야!”

넷이 동시에 부르자 둘레둘레 살피던 순찬씨가

“니가 내 동생 열찬이제? 부산동생 열찬이!”

손을 잡으며 눈을 빛내는데

“새야, 나는 누고?”

같은 교인에 바로 맡의 아시동생이라고 자신을 틀림없이 기억할 것으로 믿는 금찬씨가 손을 흔들며 눈을 들여다봐도

“그래, 니는 누고? 안면은 있는데.”

“새야, 내가 금찬이 아이가? 일식이애미 박서방네!”

하고 손을 흔들자

“박서방은 벌써 황천에 갔다 아이가 술고래 박서방!”

하고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그래. 니가 금찬이가? 내 동생 박집사.”

하더니

“이 새댁이는 누고?”

이번엔 덕찬씨를 바라보는데

“세이야 내다 장촌에 고서방네 덕찬이!”

“그래. 참 덕찬이도 있었는데 덕찬이가 누더라?”

한참을 생각하다

“이 아가씨는 누고?”

영순씨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형님, 연산동에 정석이애미.”

“그래. 정석이는 장개 갔는가?”

하더니

“아이고 대라!”

피로한 지 눈을 감아버렸다.

“참 많이 닮았네요. 누님하고. 우리 천사할매가 날만 새면 부산에 우리 동생 열찬이, 열찬이 하더니 아저씨가 열찬씨 맞는가베?”

“예.”

“맨날 오는 둘째 아들 보고도 니가 열찬이제, 열찬이제 해 서 어떤 때는 ‘엄마 내가 누고?’ 하고 물어도 ‘열찬이 아이가 내 동생!. 해서 엄마는 자식도 필요 없고 외삼촌만 안다고 짜증을 내던 그 동생.”

“예. 누님이 날 업어 키워서...”

하는 순간 울컥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용철이는 안 오는가?”

또 금찬씨가 채근을 하는데

“용철이는 와? 바쁘면 늦거나 못 올 수도 있지.”

덕찬씨가 나서는데

“가시나 니는 마 가만 있어라.”

“와? 내가 언니 니가 와 용철이 찾는 줄 모리는 줄 알고?”

두 자매의 눈길이 험악해지는데

“형님들, 와 이라능교? 점심은 정석이아부지가 화명동에 꽃게매운탕 산다고 합디다.”

하고 중재에 나서는데

“외삼촌!”

언제 봐도 늘 싱글거리는 얼굴의 용철씨가 나타나

“이모도 오고 외숙모도 오셨네.”

하더니

“엄마, 내가 누고?”

“내 동생 열찬이 아이가? 부산 동생.”

“아이다. 엄마 나는 엄마아들 용철이 아이가?”

“뭐, 니가 내 아들 용철이라고? 나는 내 동생 열찬인 줄 알았다.”

열찬씨가 듣기 민망한 대화를 나누더니

“외삼촌 보소. 엄마가 입만 열면 그저 열찬이, 열찬이뿐이고 아들도 몰라보니 병원비고 간병이고 외삼촌이 다 하소.”

하고 웃는데

“그래 조카가 욕보제? 간병이랑 병원비랑.”

여자답게 현실적 질문을 하는데

“여게 저게 알아보니 다들 시설도 형편없고 시끄러워 없는 치매도 도로 생길 것 같아 아는 사람을 통해 여기 모시고 왔는데 안다고 좀 깎아서 월 80만원씩 주기로 했심더.”

“그래도 다달이 적은 돈이 아닐 낀데?”

“엄마가 받는 노령수당에 옛날 회사를 좀 댕겨 국민연금도 나오고 또 평소에 엄마가 받아쓰던 큰 집 아랫방의 월세하고 해서 한 달에 70만원이 나오니까 딱 10만원이 모자라는데 그건 맞벌이하는 미옥이 지가 자발적으로 낼라카고 병원에 간간이 들여다보고 손님 치는 것은 개작은 데 사는 네가 맡기로 하고 살기 바쁜 미숙이, 미경이는 지 보고 싶을 때 왔다가는 것으로...”

“그래. 잘 됐네. 큰 조카 상철이는 뭐라 카고?”

“형님이고 형수고 당최 무슨 말이 있어야지요. 만약 돈이 모자란다고 내라카면 안 낼 사람도 아니지만 뭐 돈이 모자라는 것도 아이고.”

“그래 형제가 많으니 수월하네.”

하고 영순씨와 덕찬씨가 가방에서 봉투를 꺼내니

“외숙모, 우리는 일체 봉투 같은 거 안 받기로 했심더. 병원에서 다 해주니 간식이니 뭐니 달리 돈들 일도 없고.”

“그래도 형제간에 우째 그냥 오노?”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아임더. 굳이 할라카며 두유 한 통 사오면 가까운 사람들이랑 나눠먹으면 되는데 그것도 우리 뿐 아니고 여러 사람들이 가져와서 우유가 밀리는 판이라.”

하며 굳이 사양했다. 용철씨가 사무실에 외출을 신청해서 환자복채로인 순찬씨를 자신의 트럭에 태우고 영순씨의 안내를 받아 낙동강을 건너 호포동의 매운탕집 <호포할매집>에 들어가 비린 맛이 안 나도록 참게를 넣은 매운탕을 주문할 때 엄마가 매운 것을 통 못 먹는다는 용철이의 말에 아주 싱거운 매운탕까지 따로 시켰다.

음식이 나와 영순씨가 국물을 한 술 떠먹이자

“아이구 맵아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착한 아이처럼 잘도 받아먹더니

“인 도!”

숟가락을 받아들고 스스로 먹기 시작했다.

“여게 이래 맛있는 집이 있었나? 외삼촌, 엄마가 아파도 매운탕은 기가 차네요.”

“그래 많이 먹어라. 오늘은 외삼촌이 밥 한 번 사께.”

“아임니더. 제가 사야지요. 명색이 사업가 용철이 아입니까?”

“택도 없는 소리!”

하면서

“사실 나도 기분이 이상하다. 내만 아는 누님이 저래 아파도 매운탕에 소주 맛이 이래 좋은 기 말이다.”

체질적으로 술을 못 먹는 용철이가 부어주는 족족 혼자 소주잔을 비우는데

“동생, 니는 엔간히 마셔라. 꼭 너거 자형 꼬라지 같다. 그래 마시면 얼매 못 간다.”

금찬씨가 나서자

“새야, 니는 말을 해도 와 꼭 그 모양이고? 오빠도 죽고 지가 집안중심역할을 다 하는데 쟈가 무슨 일 있으면 좋겠나?”

“그러니 술 좀 덜 마시라는 말이지.”

“누님들, 마 됐심더. 이래 맛있는 술을 와 안 묵노? 옛날에 아부지 살았을 때 유언을 하시기로 자기가 술을 워낙 좋아해서 논매고 참 묵다가 술 바가지 늦게 돌리는 사람을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여서 아들 셋이 술을 먹는 것은 말리지 않겠는데 다만 자기만큼 많이 마시고 늙어 술골병, 이열이나 들지 말라고 하셨지요.”

“그래, 그런 사람이 그래 술을 주야장창 마신단 말잉교? 아부지 보기 안 부끄럽능교?”

영순씨가 고삐를 죄는데

“우짜겠노? 술이 좋아 못 끊는데사! 당신도 마 내가 술 끊는 날이 죽는 날인 줄 알아라.”

하고 또 한잔을 마시는데

“이 세상에 우리 올캐만큼 남자 술 수발하는 사람이 어딨노? 그만큼 냉장고에 해장국거리가 가득한 집이 어딨겠노?”

평소에 말이 별로 없는 덕찬씨가 점잖케 나서는데

“동생 니 그런 말 하지마라. 입살이 보살이라고 니 그라다가 진짜 술도 못 먹고 눈만 멀뚱멀뚱한 날이 오면 우짤라꼬 그라노?”

금찬씨도 비로소 걱정스런 눈으로 바라보는데

“인생살이 술도 사랑도 명도 다 정량(定量)이 있어 지 한도를 채우며 묵을라 캐도 못 묵고 더 살라 캐도 못 산다 아잉교? 저 누님 좀 보소. 찬송에 기도에 전도에 할렐루야에 주여를 너무 한꺼번에 많이 해서 정량이 끝나니 더는 말도 없다 아잉교? 내 술도 언젠가 저 모양으로...”

“고마 해라이. 시방 누님 세 앞에서 무슨 소리고?”

“점심을 먹고 용철씨가 제 어미를 모시고 요양병원으로 가고 넷은 남양산에서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 금방 통도사톨게이트로 내려 작천정을 지나 명촌을 향하는데

“촌에 누님이라고 둘이 있는 기 골치덩어리제? 세상에 부산에서 언양에 오라와서 김해까지 싣고 가서 문병하고 다시 언양에 실어다주는 올캐가 어딨겠노? 우리 영감이 안 갈라캐서 마 버스 타고 가자 캐도 언니가 너거 한테 뭐 해준 기 있다고 기어이 부르자고 해서...”

영순씨에게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데 등말리 앞에 차가 닿자

“동생댁이 욕 받데이.”

내리는 금찬씨의 얼굴에 심술이 덕지덕지해서

“형님은 와 저라능교? 종일 문병 잘 하고 점심 잘 묵고?”

장촌으로 향하면서 영순씨가 묻는데

“그 기 좀 복잡하다. 아까 용철이 자꾸 안 찾더나?”

“예.”

“김해 언니 아프기 전에 명촌언니가 가끔 찾아보러 가는데 자기 아들 셋이 차가 다 있어도 버스로 김해까지 가서 꼭 용철이를 마중 나오라고 부르는 기라. 그래서 하루 이틀 자고는 꼭 용철이를 보고 김해까지 태워다주라고 하는데 그 기 다 꿍심이 있지.”
“꿍심?”

“용철이가 사람만 실어다 주는 기 아이라 봉투를 하나씩 주는 기라.”

“그랬구나. 그래서 용철이를 그래 찾았구나.”

“그런데 오늘은 사람이 여럿이라 용철이가 봉투를 안 준 거 아이가?”

“설마!”

영순씨가 입을 딱 벌리는데

“마, 시끄럽다. 없이 살면 그럴 수도 있지!”

열찬씨가 역정을 내는데

“지가 와 없는데 대궐 같은 집이 없나? 말만 나오면 아들 없는 내 허패를 디비는 아들이 셋이나 되면서.”

“그래도 없이 살던 일, 부모고 형제고 남에게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자신이 단 한 번도 준다고 생각을 못 하고 수십 년을 살았느니 그렇지.”

“...”

“같은 형제 중에서도 자신이 젤 고생을 많이 하고 부모 사랑도 못 받고 남편도 잘못 만나고 또 뭐 그렇게 생각하다 보면.”

“어데 고생은 지만 했나? 망내이 백찬이도 외롭게 크고 부산동생 니만 해도 야간대학 댕긴다고 얼매나 고생했노?”

“그래도 안 그렇지요. 젊어서 자형을 보내고 성식이가 잘못 되서 먼저 보내고 또 현주가 아이 둘을 데리고 지 서방과 헤어지고.”

“그 기 뭐 자랑이가? 짜들 낳기만 했지 자식 단도리도 못 하는 기.”

후덕해서 덕찬이라는 사람이 그 동안 아시언니한테 맺힌 기 많은 모양이었다.

“마 됐심더. 누부는 자영도 야물고 살림도 이루고 미진이 밑에 머시마도 셋이나 나고.”

“그래. 고맙다. 잘 가거라.”

헤어지면서 셋 다 씁쓸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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