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물만골의 으뜸 농부(4)
3월 개학을 한 뒤 날씨가 조금씩 풀리자 슬비씨의 얼굴도 조금씩 화색을 찾았다. 가게 앞을 지나가는 행인도 늘어나고 거의 마니아수준의 단골도 점점 늘어가는 데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원, 교회 등에서 봄 소풍을 가면서 간식용으로 적으면 2,30개 많으면 100개 가까이 주문이 늘어난 것이었다. 한번은 어떤 절에서 큰 행사를 하면서 무려 400개의 왕만두를 시켜 급히 만드느라 진땀을 빼기도 했다. 하나에 1,500원씩이니 한꺼번에 60만 원의 매상을 올린 것이었다.
“이러다가 하루 매상이 백만 원이 넘으면 금방 떼 부자가 되겠네.”
모처럼 쉬는 일요일 두 집 식구가 점심을 먹는 자리에서 이야기가 나오자
“떼 부자는 보통 목욕탕때밀이가 돈을 번 것을 말하고 알부자는 계란장수를 말한다잖아? 또 진짜 떼 부자는 벼락치기로 경복궁 지을 때 졸지에 귀하신 몸이 된 남한강의 뗏목 꾼을 말하고. 그러니까 너거가 돈을 벌면 빵 부자, 아니 만두부자가 되는 거지.”
열찬씨의 말에
“영감은 좀 가만히 있어보소. 내 방금 무슨 생각이 날라캤는데.”
하고 한참이나 끙끙거리더니
“우선 왕만두 하나가 한입거리로서 너무 크고 또 값이 군입거리로서 값이 비싸. 내 생각엔 일반만두가게에서 파는 보통 찐만두보다 좀 크게 어른은 한입에 아이들은 두 번 베어 먹는 정도의 크기로 하고 가격도 하나에 천원 안쪽, 아니 7,8백원 정도면 좋을 것 같은데.”
“엄마, 그 작은 것을 일일이 은박지로 포장하기가 힘들잖아?”
“그게 아니지 1회용 도시락에 한꺼번에 7,8개나 10개를 담으면 포장할 필요도 없이 일이 더 수월하지.”
“그래?”
“엔간한 장정도 한 도시락을 먹으면 어느 정도 배가 부를 정도가 되고 가격도 한 4,5천원으로 5천원을 넘지 말고.”
“그거 좋은 아이디언데.”
하고 끝이 났는데 며칠 뒤
“엄마, 대성공이야. 일도 편하고 인기도 좋아. 단체주문도 늘고.”
슬비씨의 희색이 만연했다. 도시락 하나에 따로 포장 안 한 만두 여덟 개를 넣어 한꺼번에 포장하니 일도 수월하고 가격도 5천원으로 하니 사는 사람, 파는 사람 모두 손쉬운 느낌이고 더욱이 한때 꺼리로 어른들은 조금 아쉬운 듯 아이들은 조금 남는 듯 딱 적정선이라는 것이었다.
그 후 꾸준히 매상이 늘어나고 단체주문이 이어지자
“엄마, 이 재미로 장사를 하는가 봐. 장사가 안 될 때는 지옥같이 느껴지던 가게가 장사가 잘 되니 에덴동산이 따로 없어. 이러다가 금방 우리 부자가 되는 거 아닌지 몰라.”
하면서 신명을 내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긴 것이 유일한 종업원인 이모 영신씨가 몸이 피로해 저도 모르게 짜증이 늘어간다는 점이었다. 원래 깔끔한 성격이라 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계속 씻고 닦는 바람에 가게가 늘 깨끗하고 위생적이라는 여론조성에는 일등공신이지만 그게 너무 지나치다보니 슬비씨 내외에게는 부담스럽다 못 해 스트레스가 되는 판에 주문이 많아 만두를 만들거나 쪄서 파는 일이 늘어 잠시 앉아 쉴 틈도 없으니 짜증이 늘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남편이 생활비를 넉넉히 벌어오는 상황에서 아이들을 위해 예비로 나선 돈벌이니 돈벌이 자체가 그리 절박한 것도 아니고 성당에서 감투까지 맡아 나름 풍족하고 교양 있는 사모님 축에 드는 형편으로서 심심풀이 아르바이트 정도로 생각하고 시작한 일이 눈코 뜰 새가 없으니 지칠 만하기도 했다. 눈치 빠른 슬비씨가
“이모, 오늘은 우리 돼지국밥이나 냉면이나 시켜 먹을까?”
하여 분위기를 바꾸거나 퇴근할 때 택시비로 한 2만 원을 지여주기도 하며 그럭저럭 넘어가는데 정작 강적은 내부에 있었다.
일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도연씨의 표정에 피로가 역력했다. 어려서부터 엄마가 직장에 나가 고루 먹고 튼튼하게 자란 체질도 아닌 데다 군대에 갔다 오고 세원산업 자재과에서 물건을 내리고 싣고 하면서 언제부턴가 허리가 좋지 않아 더러 병원에도 가고 매일이다시피 목욕을 다녀 근근이 지탱해 왔는데 장사가 잘 되어 계속 피로가 누적되자 오후가 되면 피로가 역력한 얼굴로
“색시야, 오늘은 만두소를 몇 킬로 주문하지?”
“넉넉하게 한 40킬로로 하지?”
“힘 드는데 30킬로만 하면 안 될까?”
“무슨 소리? 메뚜기도 오뉴월 한 때라고 장사 잘 될 때 왕창 벌어야지. 세상에 물건이 모자라서 못 파는 이 절호의 찬스를 수요에도 못 당하게 재료를 주문한단 말이요?”
“너무 힘들잖아? 하루만 사는 것도 아니고.”
“보소. 도연씨, 개업만 해주고 바로 직장에 나가려던 사람을 억지로 붙잡아 기어이 빵집여자로 평생을 살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가게 전체를 맡기고 게으른 월급쟁이 종업원행세를 한단 말이요? 당신 정 그러면 나 내일부터 직장에 나갈 거요. 나 아직 오라는 데 많아요.”
닦달해도 너무나 힘에 부치는지 계속 입술이 튀어나와 누가 사장이고 누가 종업원인지 모를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슬비씨가 대책을 세운 것이 만두와 찐빵제조가 거의 끝나는 오후 두 시 부터 한 시간 정도를 가게 안에 커튼을 치고 간이침대를 깔고 눈을 부치게 하는 것이었다. 세 시경에 일어나 다섯 시까지 이튿날 오전에 팔 장사준비를 하고 다시 목욕도구를 챙겨나가 여섯 시에 돌아오면 비로소 영신씨가 퇴근할 수 있는 것이었다.
“아이구, 이게 도대체 누가 사장인지, 누가 종업원인데 모르겠네. 그렇다고 파업을 하거나 노동청에 신고를 할 수도 없고...”
농담처럼 탄식하는 영신씨보다 더 곤경에 몰린 사람은 영순씨였다. 평소에 아이를 보고 시장을 봐다 딸네집의 저녁과 아침준비를 하고 점심에 가게식구 셋이 먹을 반찬을 마련해 보내고 48평 넓은 아파트를 청소하고 빨래를 하는데다 초등학생 영서까지 돌보고 파김치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다시 열찬씨가 먹을 밥과 기본 찬거리를 마련해야 되는 눈코 뜰 새 없는 처지에 또 새로운 일거리가 생긴 것이었다.
지금껏 가게에서 만두와 찐빵을 빚고 나서 쉬엄쉬엄 만들던 만두를 찍어먹는 간장과 목이 메지 말라고 먹는 단무지를 비닐봉지에 담는 일이 이제 가게가 바빠 도저히 해낼 수가 없어 하는 수 없이 단무지와 간장과 비닐봉지가 집으로 납품 되은 것이었다. 말은 저녁에 집에 돌아온 슬비씨가 넣는다고 했지만 종일 가게 일에 지쳐 저녁숟가락을 놓기 바쁘게 아이 한 번 들여다 볼 염도 못 내고 쓰러져 자는 슬비씨가 하는 게 힘도 들겠지만 그 안쓰러운 꼴을 보지 못 하는 성격의 영순씨가 현서가 잠이 들거나 열찬씨에게 유모차에 태워 나가게 하고 직접 하루에 몇 상자씩의 단무지를 썰고 서너 개씩 봉투에 담고 맵시 있게 포장하는 일을 직접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에 비해 일이 간단한 간장을 담는 일까지 하려니 도무지 힘에 부치는지
“보소. 노느니 염불이라고 당신도 한 번 해보소.”
해서 열찬씨도 덤벼들었는데 워낙 손재주가 없어 비닐봉지 끝을 묶어 맵시를 내는 일이 도무지 잘 되지 않자
“아이구, 참으로 재주가 매주로다. 만약 글로 먹고사는 공무원이 아니고 손재주로 먹고살았다면 우린 벌써 굶어죽었겠다!”
영순씨의 탄식이 늘어지는데
“할매 내가 해볼까?”
이제 열 살이 된 3학년짜리 영서가 조막손으로 고물고물 마무리하는 맵시가 훨씬 좋아 어떤 때는 민서, 가연이 같은 동무들이 와아 둘러앉아 작업을 하고 열찬씨는 뒷전에서 현서를 보면서 박스운반이나 잔심부름을 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그러다가
“장사 밥이 참 무섭기는 무섭구나? 당사자는 물론 온 식구가 다 붙고도 모자라 아이친구들까지 붙어야 하다니...”
하던 열찬씨가
“우리 김 서방은 마음이 약해. 만약에 나라면 밤을 새는 한이 있더라도 일감만 들어오면 신이 나서 잠이 안 올 텐데.”
“직장이고 장사고 승진을 하거나 돈을 벌 기회가 어데 지주 오나? 일생에 한두 번 오는 기회를 안 놓쳐야 성공을 하지. 우리 사위는 당최 강단이 없어.”
하는 푸념이 어찌어찌 도연씨의 귀에 들어갔는지 열찬씨를 마주하는 눈빛에 자신감이 없어 보여
“요새 우리 사위 고생이 많지.”
다정스레 말을 붙여도
“아버님, 제가 많이 부족한 사위가 되서...”
“무슨 말을 그렇게 하나? 자네 곧 큰 사장 되면 장인을 넘어설 텐데.”
“아, 아닙니다.”
하는 옹서 간을 보는 모녀간의 눈빛이 모두 걱정이 가득했다.
그렇게 일이 점점 고되자 영순씨가 꾀를 낸 것이 주공아파트 14층의 친구 호영이할머니와 진철이엄마를 선경아파트로 초청한 것이었다. 커피와 과일을 대접하고 만두선물 두 도시락씩을 안긴 후에 단무지와 간장 넣는 작업을 이야기하자 셋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두어 시간에 간장 한 박스, 단무지 다섯 박스를 넣으니 한 사나흘 장사걱정이 해소된 것이었다.
영순씨가 별 하는 일 없이 영서나 돌보면서 소일할 때 영서와 동갑짜리 친손자 호영이를 돌보다 알게 된 호영이 할머니는 키가 크고 훤칠하며 맵시가 나고 시원시원한 성격이 영순씨와 잘 맞아 나이가 여섯 살이나 차이가 나도 꼭 친자매나 되는 듯이 잘 지내며 오전에 같이 만나 커피를 마시며 온갖 수다를 떠는 것으로 소일할 때 옆집의 젊은 아낙하나가 가세했는데 바로 지적직공무원으로 구청의 지적계장을 지내는 공무원가족이라 또 금방 친해져서 셋이 3총사가 되어 시장과 백화점은 물론 남창의 야산으로 고사리를 캐러 가거나 온정리 바닷가에 성게나 고동을 잡으러가는 일까지 함께 다니는 3총사가 되었는데 이제 단무지작업의 특공대가 된 것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