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89)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4)

이득수 승인 2024.09.06 17:11 의견 0

“안 되겠다. 여러분, 우리 잠깐씩 울고 다시 시작합시다.”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훔치고 시선을 한 바퀴 돌리며

“예. 오늘 같은 날은 이렇게 좀 울어도 됩니다. 이제 속이 좀 후련하신가요? 다시 시작합니다.”

하고

우리 평리사람과 그 후손이 어느 땅에 가더라도 늘 번성하며 이 땅을 그리워하며 되돌아볼 애틋한 기원을 담아 여기 망향비를 세운다.

2013. 11. 30

평리부락 출향민(出鄕民) 일동

20. 평리부락 망향비(4)

하고 단상을 내려오니

“대단합니다!”

혀령 의원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자

“욕 봤다, 친구야!”

엄영관 위원장에 이어 노야선생, 전주호조합장, 용해씨도 악수를 청했다. 이어 허령 시의원의 내빈축사가 있는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허령입니다. 여러분 아시겠지만 저는 집이 저 장심배기 너머 회나무진 사람으로 가열찬 시인하고 43년 전에 삼남면사무소에 같이 근무하기도 했고 또 중고등학교 6년간 봉당골을 지나 사외이갓을 넘어 평리사람들 앞새메를 지나 우리 가열찬 시인이 살던 골목을 지나 남천내 뚝다리를 넘어 학교에 다니면서 버든마을은 물론 평리전체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망향제에 와서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조그만 마을 하나가 떠난 망향제에 이렇게 성대한 행사가 짜임새 있게 많은 참석자의 심금을 울리며 진행되는 걸 보면서 역시 한 마을엔 시인도 나오고 향토사학자도 있어야 되겠구나, 비록 이젠 사라졌지만 평리부락이 참으로 대단한 저력을 가진 마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러분 모두 늘 건강한 가운데 고향을 잊지 않고 찾아주며 또 이 허령도 잊지 않고 도와주시면서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간결하면서도 멋진 인사말을 했다. 다음은 <고향의 봄>노래순서였다. 용해씨의 지휘로 노래가 시작되었는데 아까 애국가보다는 훨씬 호응이 높아 마지막 <그 속에서 살던 때가 그립습니다>에서는 우렁찬 코러스로 끝을 맺었다.

“이로서 공식행사를 모두 마치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식사를 ...”

하고 마무리를 하려는 순간

“어, 전 사장님!”

엄영관 위원장이 행사장 앞에 차를 세우고 황급히 내리는 신사 한 사람을 보고 깜짝 놀라자

“여러분, 진장에서 축산업을 하시는 전상철 사장님, 비록 본동 원주민은 아니지만 늘 마을일에 앞장서주신 전상철 사장님이 오늘 참석해주셨습니다!”

유락씨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인양 단상으로 모셔 소개를 하자

“안녕하십니까! 전상철입니다. 망향제를 축하합니다.”

호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돼지머리에 얹고

“안녕하십니까?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열찬씨에게 다가와 손을 내밀자

“전 사장님은 객지사람이지만 마을일에도 앞장서고 삼남면 전체에서도 알아주는 유지시지요.”

영관씨가 가운데서 소개했다.

“전 사장도 이 친구 잘 알지요?”

“예. 돌아가신 강숙이 아부지 종수형님한테 많이 들었지요.”

하며 다시 손을 잡는데

“봐라, 이열찬 시인!”

노야선생이 부르더니

“고속도로박스위에 소고기집을 하는 분인데 동생 니를 만나러 일부러 오신 분이다.”

아까부터 식장에 섰던 키가 자그마한, 아무리 봐도 일면식이 없어 평리사람이 아닌 것 같았던 60대를 소개하는데

“예. 교동갈비 아무갭니다.”

악수를 하면서도 목소리가 작아 이름을 알 수가 없는데

“이 어른은 언양사람이 아니고 합천사람인데 아침에 운동 다니다가 우리 망향비 비문을 보고 자네를 꼭 만나보겠다고 신청을 해서 오늘 오시라고 했다.”

노야선생의 소개에

“아, 그러십니까? 고맙습니다.”

손을 내밀자

“예. 제가 여기 지나치다가 우연히 비문을 읽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도 합천댐 수몰민인데 어찌나 남의 심정을 그리도 잘 알고 눈물을 빼내는지. 올해 추석엔 꼭 고향에 가서 댐 주위를 한 바퀴 빙 돌고 올 겁니다.”

“그렇군요. 전에 붙이던 자투리땅이나 산소는 좀 남았나요?”

“아닙니다. 모두 정리했지요.”

하고 주최 측에서 불러온 이동식 뷔페에 주욱 둘러앉았는데 김이 술술 나는 쇠고기국밥이 먹음직했다. 떡과 과일 돼지수육을 주최 측에서 따로 준비해 상차림이 푸짐했다.

위원장을 중심으로 허의원, 노야선생, 열찬씨, 전상철씨와 조합장이 둘러앉고 용해씨는 인도씨, 시준씨 등 백찬씨 친구들과 어울리고 부녀자들은 부녀자들대로 또 덕래씨는 저들 친구끼리 자리 잡았다. 건배를 하고 소주가 한 순배 돌자

“내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후배 가열찬 시인이 신기해. 수구초심도 그렇지만 제 태어난 땅의 꽃향기와 동사마당의 풍물소리를 어떻게 다 떠올렸을까?”

허령 의원의 말에

“저도 거기에 이끌려서 오늘 가선생님 만나 뵈러 왔다 아입니까? 처음 이게 뭔가 하고 읽어보다 그만 가슴이 울렁울렁 하더니 사정없이 눈물이 쏟아지는데 말입니다.”

“아이구, 별말씀을...”

열찬씨가 손사래를 치는데

“그 기 아이고, 내 말 좀 들어보소. 사실 나도 이 동생이 얼마나 잘 썼는가 하고 한번 둘러보았는데 이 동생이 글 잘 쓰는 거야 이미 아는 거고 내가 여러 행사나 편집에 참여해서 비문에 무얼, 어떤 식으로 써야하는지를 대강 아는데 이 사람이 공무원을 해서 그런지 비문의 기승전결의 흐름이 기가 막히더군. 가장 중요한 시간과 장소와 행사의 의미를 설명하고 앞으로의 희망을 전개하는 연결도 빈틈이 없었지만 그 중에서 <청동기의 선대인>을 인용한 것이 압권이지. 사실 나도 명색 시인으로 책을 냈지만 이 동생한테는 앞발 뒷발 다 들었지.”

“아입니더. 형님.”

하다 문득 전상철 사장과 눈이 마주치자

“참 전 사장님, 우리 종찬이 형님과는 잘 지내셨는지요? 형님이 술이 좀 과해서 말입니다.”

“예. 최종석 사장이랑 순우아버지랑 버든사람들이 다 사람이 좋지요. 그런데 다만 순우아버지가 말입니다.”

“예에.”

“술만 한잔 자시면 ‘야 전상철이 니 돈 좀 벌고 면사무소 출입 좀 한다고 설치지만 부산에 내 동생, 동장 하는 내 동생 열찬이가 오면 니는 한 방에 간다, 해장거리도 안 된다.’하고 어띠 동생자랑을 해서 말입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용서 하이소.”

“하고 끌끌 웃는데

“선생님, 저는 인자 갈랍니다. 나중에 노야선생님하고 우리 집에 한번 오시면 제가 한잔 대접할 게요.”

하고 합천수몰민 식당사장이 돌아가자

“참, 나도 다른 행사가 있지.”

허령 의원이 일어나 악수를 청하고 노야선생도 축문을 거두고 향과 촛불을 끄는데

“친구야, 오늘 기분도 그렇잖고 고향친구들 불러 한 잘 할까? 오랜만에 노래방도 한번 땡기고.”

전주호 조합장이 눈을 끔뻑이자 집중공세로 술이 알딸딸해진 열찬씨가

“그러든지.”

하다 문득 영순씨의 이야기가 떠올라

“아, 참 오늘 장인어른 제삿날이네. 친구야 다음에 하자.”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용해씨가 있는 자리와 유락씨가 있는 자리를 돌며 한잔씩 주고받고 한 바퀴를 돌고 노야선생과 친구영관씨에게 인사를 하고 혼자 고속도로 박스 밑 앞새메를 향해 걸었다. 생가자리쯤의 땅바닥에 노랗게 꽃이 핀 민들레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하마터면 대형사고가 날 번했다, 이 먹먹한 기분에 술을 한잔 더 마시고 노래방에 갔다가 내일 아침 눈을 뜨면 틀림없이 술이 엉망진창이 되어 택시를 타고 장촌누님집으로 기어갔거나 여관방에 뻗었을 거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쉬었지만 이제 술자리마저 피하며 늙어가는 자신이 서글펐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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