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신불산」(791) 제7부 돌아가는 꿈 - 제20장 평리부락 망향비(6)

이득수 승인 2024.09.12 09:00 의견 0

20. 평리부락 망향비(6)

그날 저녁 옥편을 꺼내놓고 컴퓨터를 캔 열찬씨가

(보자아, 또 딸을 낳았으니까, 또 우(又)자에 가화의 화자, 그러니까 우화가 되는데 그건 너무 밋밋하고...)

아들을 낳으면 가화의 가자를 돌림자로 해서 가한(可漢)으로 그러니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는 강한 사내, 유목민들의 왕 칸으로 지으려던 꿈이 날아간 판이라 이젠 화자로 돌림자로 짓기로 하고 한글 사전을 뒤져

명화(名畵)-이름난 그림, 아름다운 그림, 단아한 여성
금화(金貨)-빛나는 자태, 불변의 가치, 최고의 가치
수화(手話)-소통, 봉사, 다가가는 자세.
우화(又花)-가화동생 우화, 또 딸, 평범한 여성...

한참이나 마땅해도 그럴듯한 이름이 나오지 않아 끙끙대다

“그렇지! 둘째 딸이니 우화는 너무나 당연한데 기왕이며 우화(羽化)로 하자. 마치 번데기로 매달리다 마침내 성충이 되어 탈피를 하고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화려한 변신으로.”

중얼거리며

<둘째아이 이름 짓기>

1. 우화(羽化): 화려한 변신. 알, 애벌레, 번데기, 성충(나비나 잠자리)로 이어지는 곤충의 4단계 탈바꿈 중 마지막 변신, 화려한 도약(飛上) 또는 나래 짓(飛翔). 둘째딸로서 기죽지 말고 맘껏 자기 꿈을 펼치는 당당한 여성이 되라는 뜻.

※又花, 또 딸 또는 가화동생이라는 의미 포함

2 .명화(名畵)-이름난 그림, 아름다운 그림, 단아한 여성

3. 금화(金貨)-빛나는 자태, 불변의 가치, 최고의 가치

4. 수화(手話)-소통, 봉사, 다가가는 자세.

해서 사무실 팩스로 보냈는데 이튿날

“아버지, 우화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멋진 단어들을 어떻게 찾아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래 너무 쉽게 결정했구나. 마음에 끌리던가?”

“예. 화려한 변신이란 뜻도 좋지만 어쩐지 아버지의 의지가 내비치는 것 같아서.”

“그 아이가 어떤 사람이 되든지 첫째는 자신의 의지고 다음은 부모의 지도와 배려겠지만 할아버지의 기대가 통한다면 말이다.”

“예. 동사무소에 출생신고를 하러갔는데 접수하는 직원이 어디서 이렇게 아름다운 이름들을 찾아내었느냐고 해서 애들 할아버지가 시인이라고 했더니 깜짝 놀라면서 만약 아이가 하나쯤 더 태어나 그 이름도 화자가 붙은 또 다른 이미 있는 단어를 찾아 지으면 <예쁜 이름 콘테스트>에 나가도 되겠다고 했어요.”

“그래...”

“...”

갑자기 묘한 침묵이 흘렀다. 무심코 나온 세 번째 아이가 묘한 압박으로 다가오는 것만 같았다.

다음 토요일 11시에 언양 63뷔페에서 셋째 금찬씨의 7순 잔치가 있다는 연락을 하면서 덕찬씨가

“명촌에 할마시는 별 것도 다 할라카제?”

영순씨에게 묻자

“글쎄 말입니다. 자식이 넷이나 되고 교회에서도 하라고 하니 그렇겠지요.”

조심스레 말하며 열찬씨의 눈치를 보는데

“자식만 많았지. 뭐 살림이 넉넉하나? 평소에 남의 행사에 잘 다니기나 하나? 그러면서 자기행사는 꼬박꼬박 챙기고.”

“...”

맏이 갑찬씨의 환갑이 되던 해

“우리 아부지어무이 때는 하도 묵고살기가 힘들어 환갑잔치 엄두도 못 내고 달구새끼 몇 마리 잡아서 탕탕 쪼개서 국물만 한강같이 잡아 그 많은 식구들 생일만 근근이 해 먹었는데 인자 세월도 좋아지고 언니는 먹고 살 양도도 넉넉하니 환갑잔치 한 번 하소.”

하고 순찬씨가 권하자

“그래 내 3년 전에 김해 김서방 환갑잔치 하는 것 보니 보기도 참 좋던데 우리 간훈이아부지 환갑을 못 한 판에 내 환갑을 우째 하겠노? 김서방네 니나 나중에 환갑해서 갈라묵자.”

해서 명촌댁이 자손으로는 처음으로 순찬씨의 환갑을 했는데 그냥 집에서 닭 몇 마리를 잡아 시가를 뺀 친정형제들과 자기자식들만 불러서 간단히 축하예배를 드리고 말았다. 그 후 신평과 명촌, 김해의 세 사위가 죽고 맏이 갑찬씨가 7순이 되었지만 자신이 영감도 못 하고 죽은 칠순잔치를 안한다고 사양하기도 했지만 아들딸 넷 중에 누구하나 선뜻 나서서 하겠다는 사람도 없어 그냥 넘어갔다. 그러고 나서 순찬씨의 칠순이 다가오자

“우리 아부지어무이가 날 낳아 기른다고 고생을 했지만 다 돌아가시고 없으니 대신 친정동생들하고라도 밥 한 그릇 갈라묵고 고마운 뜻을 표해야지.”

하고 진영의 백숙집으로 초청해 간단한 축하예배를 드리고 열찬씨더러 축하기도를 해 달라고 했는데 그 때부터 기도하나는 목사님보다 낫다는 짝퉁목사가 되어 행사 때마다 기도담당이 되고만 것이었다.

“참, 희한하제. 내사마 그 노무 성질은 알다가도 모르겠네. 현주가시나 일만해도 그렇지 가시나가 시집을 두 번 째 가는 걸 넘이 알면 창피해서 말도 못할 판에 외고 펴고 사람을 불러 버스까지 대절해서 식장으로 가자카고.”

“형님, 그건 저쪽이 총각이니까 그렇지요.”

“그러면 칠순은 또 뭐고 그렇게 자식 많다고 자랑이면 자기자식들이랑 조용히 하지.”

“아이구, 순해빠진 막내형님이 오늘은 와 이라노? 와 시매시하고 싸웠능교?”

“싸우기는? 경우가 아니라는 말이지.”

원래부터 순한 사람이 성이 나면 소똥에 불붙듯이 꺼지지도 않는다는 말이 꼭 맞았다.

“고 서방하고 고서방네 하고 맨날 돈만 오다싸고 형제들한테 밥 한그륵 안사고 살아봐도 말짱 헛 거다. 사위 놈 재산 물려줘 봤자 죽고 나면 땡이다. 지가 잘나 부자 된 줄 알지 장인장모 제사나 장히 지내 주겠나? 나처럼 아들이 서이나 되는 것도 아니고?”

형제간이 모일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긁어댄 것이 생각할수록 분한 것 같았다. 영순씨로 부터 전화기를 받아든 열찬씨가

“할마씨 와 그라노? 마 잔주코 봉투하나 들고 갑시다. 좋은 기 좋다고 형제간에 <콩팥이 새삼육>이라고 뭐 그래 따져쌓소?”

“싫다. 동생 니나 가라. 내사 마 모리겠다!”

마침내 칠순잔칫날이 되어 일찌감치 출발해서 근 30분 전에 63뷔페예식장 앞에 도착하자

“동생 오나? 너거 자영도 벌써 왔다.”

하며 식당앞쪽을 가리켰다.

“안 온다카디마는 일찍도 왔네.”

열찬씨가 씩 웃자

“말이 그렇지. 형제간이 어데 가는 것도 아니고.”

하고 씩 웃는데

“형님잉교?”

백찬씨가 씩 웃자 옆에 선 제수씨는 말도 없이 그냥 씩 웃었다. 그게 인사인 모양이었다. 이어 김해 순찬씨가족이 도착해

“외삼촌!”

미숙씨의 커다란 목소리와 함께 필두로 미경이, 미옥이 세 자매가 제 어미 순찬씨를 부축하고 들어오고 있었다.

“아이고, 누님!”

열찬씨, 백찬씨 형제가 달려가 손을 잡아도

“누고?”

백발에 얼굴까지 핼쓱한 순찬씨가 한참이나 두 사람를 바라보더니

“니가 열찬이제? 내 동생 열찬이!”

하는 순간 와아, 웃음이 터졌다.

“할마시 아침에 아들 얼굴도 몰라보디마는 역시 열찬이외삼촌은 달라.”

상철이, 용철이형제가 멋쩍게 웃고

“외삼촌 오셨어요?”

둘째 며느리가 인사하는 옆에 또 하나 과묵하기로 유명한 상철이댁이 발그레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외삼촌, 안녕하세요?”

수산회사에 다니다 해양수산부공무원이 되었다는 미옥이신랑이 인사를 해

“그래. 미옥이신랑이제? 임서방이든가?”

하는데

“안녕하세요?”

이번엔 키가 크고 얼굴이 붉어 삼국지 관운장을 연상시키는 미경이신랑이 인사를 하자

“...”

과묵함의 종결자 미숙이신랑 박 서방이 말끄러미 쳐다보다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자, 다들 자리에 앉아라. 형님은 우리 테이블로 모시고.”

영순씨가 말하며 자신과 덕찬씨사이로 순찬씨를 앉히고

“바쁜 농사철에 꼭 이런 행사를 해야 되나?”

당장 콤바인을 몰고 타작이라도 하러 갈 태세의 고차대씨와 백찬씨내외의 1세대 7명이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자 아이들까지 열 명이 넘는 대군이 몰려온 김해식구들이 두 개의 테이블에 나누어 앉았다.

단정하게 머리를 올리고 예쁜 한복을 입은 금찬씨가 큰며느리 천집사의 손을 잡고 들어오자

“축하합니다. 누님!”

열찬씨, 백찬씨 두 남동생이 인사를 하고

“외삼촌, 오셨어요.”

며느리 셋과 아들들이 줄줄이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외삼촌!”

몇 해 전에 청주에서 결혼씩을 올린 현주씨가 날아갈 듯 한 한복차림으로 나타나며

“우리 신랑 아진이 아빠!”

역시 한복을 입은 건장한 사내를 인사시키는데 벌써 아이까지 났는지 대여섯 되는 딸아이 역시 고운 한복차림이었다.

“그래 오랜만이네. 유 서방이던가?”

“외삼촌, 유 서방이 아니고 위 서방!”

“아, 그렇구나. 잘 지내제?”

하고 식장을 휘 둘러보니 정면에

<울주교회 가금찬집사 고희연>이라 쓴 커다란 현수막 앞에 양복을 잘 차려입은 40대 하나가 마이크를 잡고 누군가를 부르고 손짓하며 좌중을 정리하고 있는데 3남1녀의 가족과 형제들의 핏줄보다 교인들의 숫자가 몇 배나 되는 것 같았다.

“영주에 현우엄마하고 수원에 현우네, 음성에 현숙이네는 코빼기도 안 비치네?”

“아이고, 길도 멀고 살기도 힘든데 우째 오겠능교”

“와? 저거 집에 일 있으면 출석 부르듯이 오나 안 오나 다 챙기고 다른 형제 일 있으면 소 닭 보듯이 하는 기 맏며느리가 할 짓이가? 팔아 묵을 땅이 나오거나 보상금이 나왔다 캐 봐라. 한 가랭이에 두 다리 넣고 올 사람이가 아이가?”

시어머니심술을 하늘이 낸다고 하더니 시누이심술 역시 하늘이 내는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렇기로 평소에 그저 순하고 착해 남의 험담 같은 걸 모르는 덕찬씨가 저렇게 지청구를 해 대는 것이 큰말이 없으면 작은 말이 대신한다는 말이 과연 틀린 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 이 글은 고 平里 이득수 선생의 유작임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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