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농민혁명 130주년 맞아 해운대에서 울려퍼진 '새야 새야 파랑새야'

박종철합창단, 9일 해운대문화회관서 제4회 정기연주회
통일 염원, 동학농민혁명 130주기, 노동자 격려, 세월호 등 4가지 관련 주제의 노래

고 김민기의 철망, 문승현의 그날이 오면, 이 산하에, 사계

김해창 승인 2024.10.13 11:51 | 최종 수정 2024.10.15 09:14 의견 0
박종철합창단

“우리는 합창단이다. 박종철합창단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말자/ 보다 나은 세상 만들어보자. 정의로운 사회 아름다워라. 뿌리가 깊~은 나무처럼 흔들리지 말자~”

박종철합창단(지휘자 이민환, 단장 장길만, 반주 김현정)이 지난 9일 오후 해운대문화회관 해운홀에서 객석(458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제4회 정기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특히 이날 공연은 전곡 악보없이 진행돼 단원들의 높은 열정을 짐작케 했다. 그만큼 청중의 높은 몰입도를 이끌어냈다.

이날 정기연주회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 및 4·16 세월호 10주기를 맞아 ‘기억. 다짐. 희망.’을 메시지로 내놓고 네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지향하고,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기념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노동자를 격려하고, 4·16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을 위로하는 노래 순으로 공연됐다.

이날 박종철합창단의 신곡은 이민환 지휘자가 작곡한 특별한 세 곡이 포함됐다. 신동엽의 시에 곡을 붙인 ‘껍데기는 가라’, 부산 고무공장 노동자 권미경 열사를 기리는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그리고 강은교 시인의 세월호 참사 추모시에 곡을 붙인 ‘딸의 편지’이다.

장길만 박종철합창단 단장은 인사말에서 “박종철합창단 단가는 ‘흔들리지 말자’입니다. 저희의 노래가 보다 나은 세상과 하나뿐인 지구를 지내는 일, 평화와 통일을 노래하고 흔들리지 않는 촛불이 되어 우리 사회를 밝게 비추는 작은 등불이 되기를 바라며 노래하고 다짐합니다. 마음 내어 후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저희의 미진한 부분은 호응과 관심으로 완성해주시길 바랍니다.”라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사회는 지난 제3회 정기연주회에 이어 이성철 창원대 사회학과 교수가 맡아 맛깔나게 연주곡과 게스트 공연자들을 소개했다.

대기실에서 파트별 연습 중인 단원들

이날 프로그램은 크게 4부로 구성됐다. 제1부 우리는 하나다. 제2부 민주의 노래. 제3부 노동의 그림자. 제4부 잊지 않을게이다. 제1부 첫 무대 첫 곡은 민중가수로 최근에 별세한 ‘뒷것’ 김민기 글·곡의 ‘철망 앞에서’였다. “내 맘에 흐르는 시냇물 미움의 골짜기로/ 물살을 가르는 물고기떼 물위로 차오르네 (중략)/ 자, 총을 버리고 두~손 마주잡고/ 힘없이 서있는 녹슨 철조망을 걷어버려요.” 1992년 남북예술단 교류사업 추진과정에서 작곡되었으나 계획이 무산되는 바람에 곡만 남았다. 평화통일을 바라는 만든이의 염원이 서정성 깊게 담겨 있는 곡이다.

두 번째 곡인 ‘껍데기는 가라’는 시인 신동엽의 시에 이민환 지휘자가 곡을 붙인 것으로 ‘껍데기’로 상징되는 허위와 겉치레는 없애고 순수하고 순결함, 즉 ‘알맹이’만 남아있기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시로 운동정신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고 변신과 배신을 일삼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4월도 알맹이만 남고,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세 번째 곡은 문승현 글·곡의 ‘그날이 오면’이다. 전태일 열사 추모곡으로 노래모임 ‘새벽’이 전태일의 일생을 그린 노래극 <불꽃>의 주제가이기도 했다.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을 연상시키는 곡이다. “한밤의 꿈~은 아니리 오랜 고통 다한 후에/ 내 형제 빛~나는~ 두 눈에 뜨거운 눈물들 (중략)/ 그 아픈 추억, 짧았던 내 청춘도 헛된 꿈이 아니었으리. 그날이 오면~”

관중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이어서 게스트 공연 1이 이어졌다. 민중가수 이혜규가 ‘붉은 하늘’(마동규 글·곡) ‘외쳐봐’(지민주 글·곡)를 노래했다. 이혜규는 부산지역 노래모임 ‘참다운’ 출신의 민중 노래꾼으로 장애인 문화운동에 열정을 갖고 노동가수, 노동가요 강사로 활동중이다.

제2부는 민중의 노래. 첫곡은 김남주 글, 김경주 곡의 ‘죽창가’이다. 김남주 시인의 시 ‘노래’가 원전으로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하고 있으며 1983년 화가 김경주가 곡을 붙였다. “이 두메는 날라와 꽃이 되자 하네 꽃~이/ 피어 눈물로 고여 발등에서 갈라진 녹두꽃이 되자 하네 (중략)/ 다시 한번 이 고을은 반란이 되자 하네/ 청송녹~죽 가슴에 꽂히는 죽창이 되자 하네~”

두 번째 곡은 채동선 채보·편곡의 ‘새야 새야 파랑새야’이다. 동학혁명 이후 만들어진 구전 동요로 우리들에게 익숙한 노래이다. 1934년 김성태가 최초로 오선지에 옮겼고, 채동선은 자신이 채집한 곡을 합창곡으로 편곡했다. 녹두꽃은 전봉준, 파랑새는 푸른 군복의 청·일 군인들로 표현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세 번째 곡은 문승현 글·곡의 ‘이 산하에’이다. 1984년 노찾사 1집 앨범에 수록된 작품으로 노래극 <또다시 들을 빼앗겨>의 주제곡이다. 1절은 동학혁명, 2절은 삼일운동, 3절은 만주 독립군을 소재로 삼고 있다. “기나긴 밤이 없거든 압제의 밤이었거든~ (중략)/ 불타는 녹두벌판에 새벽빛이 흔들린다 해도 나는 눈부시지 않아라~”

이어서 특별출연으로 더울림합창단(지휘 안수경, 단장 박창홍, 반주 김지영)이 등장했다. 더울림합창단은 울산 시민들이 함께 하는 창단 8년 된 노무현재단 전국 유일의 합창단으로 박종철합창단과 함께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을 비롯해 사회적 참사 추모제 등에 적극 참여해왔다.

더울림합창단은 이날 죤 루터 글·곡의 ‘음악은 항상 당신 곁에’와 뮤지컬 <영웅> 중에서 한아름 글, 오상준 곡, 더울림 편곡의 ‘그날을 기약하며’를 불러 관객으로부터 커다란 박수갈채를 받았다.

제3부는 노동의 그림자. 첫 곡은 김애영 글, 김호철 곡의 ‘꽃다지 1’이다. 1989년 노동자 노래단 2집에 수록된 김호철의 초기작품이며 작사자 김애영은 1992년에 창단된 노래패 ‘꽃다지’의 초대 대표이다. “그리워도 뒤돌아보지 말자 작업장 언덕길에 핀 꽃다지/ 나 오늘밤 캄캄한 창살 안에 몸 뒤척일 힘조차 없어라~”

두 번째 곡은 권미경 글, 이민환 곡의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이다. 부산의 고무노동자 권미경은 회사와 어용노조의 협조 속에 시행되던 ‘30분 더 일하기 운동’과 노동통제 강화에 항거해 1992년 12월 22세의 나이로 공장 옥상에 투신했다. 이때 왼쪽 팔에 쓰인 유서가 이 곡의 노랫말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닌 권미경이다~”

세 번째곡은 문승현 글·곡의 ‘사계’이다. 꽃이 펴도 눈이 와도 밤낮없이 미싱만 돌려야 하는 어린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곡으로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 나비담장 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고 또~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객석이 숙연해졌다. 이어 게스트 공연 2는 민중가수 류금신이 무대에 올랐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중가수이자 뮤지컬 배우로 1989년 ‘노동자 노래단’ 결성 이후 수많은 집회와 문화행사, 음반제작에 참여해왔다. 1995년 류금신 1집 ‘희망’을, 지난 5월 류금신 2집 ‘희망을 품은 우리’를 내놓았다. 극단 <현장>의 노래극 ‘노동의 새벽’ 출연으로 제30회 백상예술대상 신인연기상을 받았다. 노래는 김호철 글·곡의 ‘또 다시 앞으로’와 정유진 글, 백자 곡의 ‘희망을 품은 우리’를 열창했다. 관객들도 불끈 주먹을 쥐면서 호응했다.

제4부 잊지 않을게. 박종철합창단의 무대복은 흰 티셔츠에 세월호를 추모하는 뜻의 노란 머플러를 목에 둘렀다. 첫곡은 정희설 글, 이범준 글의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를 불렀다. 사랑하는 이들이 이별 중에 서로를 그리움을 가정법을 동원해 절실하게 표현한 곡이다. “어느날~당신과 내가~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꿈을~엮을 수만 있다면~ (중략)/ 한 슬픔이 다른 슬품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두 번째 곡은 이남실 글, 이범준 곡의 ‘너’이다. 세월호 7주기를 맞아 416합창단이 제작한 추모 창작곡으로 세월호 10주기때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에서 416합창단과 박종철합창단이 함께 연주한 바 있다. “태어나던 날 처음 잡던 손, 목소리를~알아듣던 너~(중략)/ 열여덟 수학여행 간다고 짐 싸며 들떠 있던 너/ 날마다~고마웠어 매순간~사랑했어/ 날마다~고마웠어 매순간~사랑했어”

이날 연주회 마지막 곡은 강은교 글, 이민환 곡의 ‘딸의 편지’였다. 세월호 참사 석달 후에 실천문학사에서 발행된 추모시집에 수록된 시인 69명의 시 가운데 강은교 시인의 시에 곡을 붙인 것으로 제8회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에서 박종철합창단에 의해 초연됐다. “엄마 여긴~추워요 엄마/ 여긴~진흙이 너무 많아요~~/ 진흙이 내 팔을 휘감고~있어요~~~/ 내 입술을 꼼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어요~(중략)/ 엄마~빛의 젖꼭지를 주세요 엄마/ 평화의 눈을 주세요 엄마/ 천국의 뺨을~주~세요/ 엄마~~나를 꼭 껴안아~주~세요 저 배의 날개 일어설~때~까지 안녕~안녕~”

객석에 일순 흐느낌이 일어났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많았다. 전 곡이 끝나자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갈채가 계속 터져 나오고 연이어 ‘앵콜~앵콜~’을 연호했다. 박종철합창단의 앵콜곡은 길옥윤 작사 작곡, 이민환 편곡의 ‘당신은 모르실거야’ 그리고 정윤경 작사 작곡, 이민환 편곡의 ‘당부’, 마지막 앵콜곡으로 박철환 작사 작곡의 ‘동지’가 연주됐다. “휘몰아 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혀 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 보았다~ (중략)/ 사랑~영원한 사랑 변치 않을 동지여/ 사랑~영원한 사랑 너는 나의 동지”

합창단과 관객이 하나 되어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거의 2시간에 가까운 긴 공연이었음에서 자리를 뜨는 사람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객석의 공기는 뜨거웠다. 이날 박종철합창단의 테너1을 담당한 필자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박종철합창단은 2016년 8월 16일 창단 이래 그해 12월 부산 서면의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공연에서 ‘레미제라블’을 합창한 것을 시작으로 2017년 1월 소민아트센터 박종철열사 30주기 추모식 출연, 그해 10월 서울시청 제1회 전국민주시민합창축전 참가 등 부산지역은 물론 전국적인 민주사회 행사에 참석해 줄기차게 민중의 노래를 불러왔다. 박종철합창단 정기연주회는 2018년 5월 민주공원 중극장에서 창단 연주회, 2020년 11월 부산시민회관에서 제2회 정기연주회, 2022년 부산시민회관에서 제3회 정기연주회를 가진 데 이어 이번이 제4회째이다.

이날 박종철합창단의 연주회에 도움주신 분들 명단.

박종철합창단의 이민환 지휘자는 부산대 예술대학 명예교수로 부산민예총 회장, 민교협 공동의장을 역임한 지역 원로이다. 박종철합창단은 남성합창단으로 19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이 된 박종철 열사를 기리며, 노래를 사랑하고 노래로 세상과 소통하고자 하는 남성이면 누구나 환영하고 있다. 입단 문의는 010-3883-2177로 하면 된다.

<경성대 교수/ 본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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