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 시인의 산티아고 이야기(11) 10일차 - 나헤라에서 그라뇽(Granon

구불구불 흙길, 생각 층위 더 쌓여
12세기 건축 그라뇽성당 식사·숙박
오늘 27.5km, 전체 218.4km 걸어

조해훈 승인 2024.11.27 14:38 | 최종 수정 2024.11.28 11:15 의견 0

2024년 10월 27일 오전 8시에 나헤라(Najera)의 공립알베르게에서 나왔다. 10분쯤 걸으니 산티아고 순례길의 상징 중 하나인 흙길이다. 오늘이 순례 10일째인데 흙길을 밟아야 순례하는 느낌을 받는다.

오르막이 좀 있다. 아침이어서 약간 흐린 듯하지만 기분은 좋다. 아침부터 자연에 바로 들어선 기분이랄까. 공기도 좋을뿐더러 눈이 즐겁다. 흙길·풀·농경지·부드러운 바람·언제나 착한 듯 보이는 하늘 등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해준다. 또한 방금 앞서간 스페인 친구들도 필자를 기쁘게 해주는 한 요인이다.

오전 8시 27분, 등산화 세 켤레가 길가 풀 위에 잘 모셔져 있다. 신발이 무거워 누군가 버린 것인지 어쩐지 알 수 없다. 버린 듯한 등산화를 보니 산티아고 길을 걷고 있다는 실감이 더욱 났다.

버린 듯한 등산화 세 켤레가 순례길가에 가지런히 놓여 있다. [사진= 조해훈]

벌써 길 양옆은 포도밭이다. 흙길은 절대로 직선이 아니다. 영어의 S자를 길게 잡아당긴 모양이다. 길의 전형을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구불구불해야만 중세 때부터 걸었다는 순례자들의 생각이 훨씬 유연해지고 온갖 상념들이 더 많이 쌓일 것이다. 직선은 단순하고 날카롭지만, 원만한 곡선은 생각의 층위가 켜켜이 저장되고 부드럽다. 부드러움은 사고의 단순함이 아니라 다양하고 깊음을 보여준다.

고개를 도니 한 순례자가 저만치 앞에 걸어간다. ‘나처럼 느리게 걷는 까미오일까?’라는 생각이 들어 반갑기도 하다. 걷기 시합이라도 하는 듯 모두가 “휙!” 지나가는데 천천히 걷는 사람이 또 있다니? 걷는 폼(?)이 필자와 다르다. 반 바지에 몸이 탄탄하고 다리에 근육이 많다. 저런 사람은 걸음이 빠르다. ‘아, 전화 통화를 하다 가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오전 8시 35분, 내리막길이다. 길게 늘어진 길을 보니 몸통이 긴 뱀이 대가리를 앞으로 뺀 채 늘어져 있는 모양이다. 길을 따라 순례자 몇이 보일 듯 말 듯 저 앞에 걸어간다.

저걸 어쩌나? 오전 8시 59분, 어제 비에 포도밭이 물에 잠겨 있다. 다행스럽게도 포도나무 전체가 물에 잠긴 게 아니라 밑동만 잠겨 있다. 햇볕이 며칠 쨍쨍하면 물이 마를 것이다. 조금 더 가니 길이 질퍽하다. 끝없는 포도밭 위로 마치 도화지에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동심으로 그린 듯 구름이 멋대로 흩어져 있지만 결코 보기 싫지 않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느껴질 정도로 착한 모습이다.

마을 입구집에 닭 두 마리를 키우고 있다. [사진= 조해훈]

마을로 접어드니 입구에 있는 집에서 마당에 작은 울타리를 만들어 암탉 두 마리를 키운다. 닭장 안에는 배추 이파리가 이곳저곳에 있다. 갑자기 마음이 평온해진다. 닭을 통해 농부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루에 한 개든, 두 개든 달걀을 자급자족하고자 하는 순수한 그 마음 말이다. 필자는 이처럼 작고 미미한 것에 감동을 잘 받는다. 곧 마을 속으로 들어갔다. 역시, 그렇지! 스페인 벗들이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태리 할머니 모니카와 포르투갈 할머니 아나와 함께 “조”라고 외쳤다. 무안했지만 기분이 좋다. 티토가 필자를 의자에 앉히더니 “포토”라고 말하자, 친구들 모두 포즈를 취했다. 개인적인 문제로 기분이 가라앉아 있던 필자의 마음이 확 밝게 펴졌다.

역시나 카페에서 필자를 기다려준 벗들.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필자, 마리나, 모니카, 아나, 가브리엘, 안드레아. [사진= 티토]

아조프라(Azofra)라는 마을이다. 카페에서 일어서 1, 2분가량 걸으니 마을 안내판에 예전에 재래식으로 와인을 만들던 모습의 흑백사진 몇 장이 유리판 안에 붙어있다. 10분여 마을 구경을 하며 걸으니 또 흙길이 나온다. 아무리 흙길이 좋다 하더라도 순례자들이 하루 종일 비슷한 길만 걸으라고 한다면 지겨움에 지칠 것이다. 그런데 산티아고 길은 마을이 나타나면 늘 마을 속으로 들어가도록 한다. 마을 구경을 시켜준다. 주민은 거의 만나지 못하지만 아까 필자처럼 닭을 보면 어릴 적 집에서 달걀을 먹기 위해 키우던 순례자들은 잠시 당시의 생각 속으로 들어갔다가 나오도록 한다. 무너진 집을 마주쳤을 때는 ‘이 집에 살던 어르신이 돌아가신 후 자식들이 시골로 들어오지 않아 그대로 주저앉는 것이구나’라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도록 한다. 필자는 열흘 동안 산티아고 길을 걷다 보니 나름대로 몇 가지 길의 공통점을 발견한 것이다.

산토 도밍고 데 라칼사다 마을 게시판에 붙어있는 재래식 포도주 만드는 모습 [사진= 조해훈]

또 포도밭 사이로 난 길을 걷는다. 오전 10시 41분, 제법 큰 돌기둥이 들판에 서 있다. 제단을 만들고 돌기둥 네 면에 테두리까지 있는 걸로 볼 때 어떤 의미가 있어 보인다. 순간적으로 부처님이 태어나셨다는 네팔의 룸비니에 갔을 때 본 돌기둥이 생각났다. 아쇼카 석주라고 부르는 그곳의 돌기둥은 기원전 3세기께 마우리아(Mauryan) 왕조의 아쇼카왕의 명령에 따라 불교의 가르침을 새겨넣은 것이다. 하지만 들판의 이 돌기둥에 글씨는 새겨져 있지 않은 것 같다.

들판에 서 있는 돌기둥 [사진= 조해훈]

또 계속 길을 걸었다. 필자의 뒤에는 아무도 없다. 오전 11시 20분, 도로를 만나 건너 다시 흙길로 들어갔다. 길은 구절양장(九折羊腸)까지는 아니더라도 굽이져 계속 이어져 지겨움을 잊도록 해준다. 그리고 포도밭만 계속되면 역시 지겨울 수 있으니 한 번씩 농경지가 나타나 ‘여기엔 뭘 심을까?’라는 궁금증에 잠시 빠져들게 한다. 오전 11시 38분, 또 붉게 물든 포도밭이다. 어떤 화가라도 이런 색상을 표현하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길 저 멀리 하늘에는 흰 구름과 먹장구름이 섞이기 시작한다. 낮 12시 46분, 길 오른 편에 사료용 옥수수를 베어낸 농경지이다. ‘몇만 평은 족히 되고도 남을 것이리라. 저렇게 넓은 농경지의 옥수수라면 베어낸 것만 해도 엄청 날 것인데 어디에 다 보관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오후 1시 3분, 어떤 순례자가 길 위에서 사망한 모양이다. 아니면 순례를 마친 후 죽음에 이르러 산티아고 길 위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했을지도 모른다. 2024년 올해 만든 무덤이다. 대리석에 글씨가 새겨져 있다. 삼가 명복을 빈다.

오후 1시 33분, 길 왼쪽에 골프 연습장이 있다. 네댓 명의 사람이 골프 연습 중이다. 어느 집 큰 대문에 산티아고의 상징인 조개 문양이 크게 붙어있다. 2, 3분 더 가니 카페가 있다. 점심을 먹어야 한다. 들어가 커피와 빵을 주문했다. 큰 창 너머는 골프장이다. 골프를 치는 사람도 있고, 골프를 친 후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사람 대여섯 명이 있다. 1시간쯤 앉아 쉬다 카페에서 나왔다. 건물과 집들이 있으나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은 듯했다. 건물들도 비어 있어 있고, 집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래된 마을은 아니고 아마 골프장이 있어 주변에 주택지를 조성했다가 실패한 듯했다. 여하튼 10분쯤 뒤에 마을을 벗어나 다시 흙길로 접어들었다.

또 비슷한 들판 길이다. 이제부터는 포도밭이 거의 사라졌다. 농경지이다. 베지 않은 사료용 해바라기밭이다. 시커멓게 변한 해바라기의 머리가 모두 푹 숙여 있어 좀 흠칫한 느낌이다.

오후 3시 22분, 산토 도밍고 데 라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마을이다. 오후 4시 38분, 길옆 풀밭에 큰 산티아고 조개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오후 4시 43분, 자그마한 성당을 지났다. 어느새 하늘은 파랗게 쾌청해졌다. 전형적인 맑은 가을 하늘이다. 계속 또 길을 걸었다. 오후 5시 51분, 석양이 지고 있다. 오후 6시 18분, 석양은 사라지고 붉은 노을만 좀 남았다.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걸으니 마음이 쓸쓸해졌다. 머나먼 타국이지만 갈 곳이 있고, 잘 곳이 있으니 큰 걱정은 없지만 고국이 그립다는 생각이 밀려왔다.

11월 27일 산토 도밍고 데 라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 마을의 석양 [사진= 조해훈]

금방 어두워졌다. 오후 6시 33분, 마침내 오늘 숙소인 그라뇽의 성 세례자요한 성당(Iglesia de San Juan Bautista)에 도착했다. 숙박비는 별도로 받지 않고 이 성당에서 숙박하는 순례자들이 알아서 기부하는 그라뇽 기부제 성당 알베르게(Albergue Parroquial de Granon)이다. 12세기에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들어가니 흙과 돌로 지어진 오래된 건축물이라는 느낌이 왔다. 속으로 ‘이렇게 오래된 성당에서 하룻밤을 잘 수 있어 정말 영광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계단을 올라가니 홀 겸 식사를 할 수 있는 테이블이 많이 놓여있고, 그 위쪽이 큰 다락처럼 생긴 침실이었다. 침대는 없고 매트리스 위에 자야 했다. 주방에서 티토와 안드레아가 요리하고 있다.

얼른 씻고 나오니 아래층에 가 미사를 드린다고 했다. 모두 함께 내려가 미사를 드렸다. 사제인 듯하나 평상복을 입으신 분이 “한 분씩 돌아가면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순례자들을 위해 한마디씩 해주십시오”라고 하셨다. 필자는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순례자 여러분 모두 무탈하게 목적지까지 잘 걸으시길 바랍니다. 부엔 까미노!”라고 했다.

그라뇽성당에서 순례자들과 성당 일을 돕는 분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조해훈]

그렇게 간단하게 미사를 마친 후 위로 올라와 모두 식탁에 앉았다. 오후 7시 반쯤 파스타가 각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각자의 잔에 포도주 또는 주스, 물을 채운 후 “건배!”, “살룻(Salud)!” 등을 외친 후 본격적인 식사를 했다. 식사를 하면서 서로 인사를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마리나가 “내일 아침에 바르셀로나 집으로 출발합니다”라고 했다. 스페인 벗들에게도 작별 인사를 했다. 성격이 유쾌하면서 정이 많은 아가씨여서 좋은 벗들과 헤어져 섭섭한지 눈물을 흘렸다. 필자도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는데 섭섭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오후 9시가 다 되어서야 식사를 마친 후 모두 참여해 설거지했다. 두세 명이 큰 대야에 그릇과 수저를 담그면 다음 두세 사람이 세정액으로 씻어 다음 대야에 넘겨줬다. 그러면 또 두세 사람이 헹궜다. 다음 사람들이 마른 수건으로 그릇 등을 닦았다.

설거지를 다 마치고 그릇 등을 제자리에 놓은 후 다락으로 올라와 각자의 매트리스에 누웠다. 필자의 왼쪽 매트리스 두 개에는 호주에서 온 엄마와 열네 살짜리 아들이 누웠고, 오른쪽 매트리스에는 스페인 벗들인 티토와 가브리엘, 안드레아, 마리나가 누웠다. 이탈리아 할머니 모니카는 안쪽 벽에 누웠다. 필자는 그라뇽 성당에서 잔 걸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란 생각을 했다.

오늘 이렇게 나헤라에서 그라뇽까지 27.5km를 걸었다. 생장에서 여기까지 총 218.4km를 걸었다.

<역사·고전인문학자,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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