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쪽 팔려서 못살겠다! -윤석열, 국힘(주호영)찍은 수성구 50대 남자-」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대구 수성구 범어도의 한 아파트 입구에 내걸린 펼침막이다. 이렇게 자신의 소회를 공개적으로 밝힌 이 50대 남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윤석열은 자유와 민주주의 가치를 높이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위법·위헌적 비상계엄 선포로 국민의 자유를 압살하고,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렸다. 윤석열이 내세우는 가치를 존중하여 그를 지지했다. 한데 윤석열은 그 가치를 훼손하여 탄핵소추를 당했다.
자신의 믿음이 반대 증거로 인해 잘못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더라도, ‘내 믿음이 틀렸다’고 고백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력이 약골인 사람은 엄두 내기 힘들다. 강한 멘탈리티를 지닌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증거에 따라 자신의 믿음을 조정할 수 있는 보주주의자, 이들에게서 대한민국 보수와 민주주의의 건강한 미래를 본다.
#2. 형법이 규정하고 있는 ‘국헌을 문란하게 할 목적’의 내란은,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여 나라의 헌법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경우 즉시 완성되는 범죄이다. 국가원수뿐 아니라 그 누구에 의해서도 저질러질 수 있으며, 헌법 질서를 위협하는 상황이 2시간이 아니라 단 1분이라도 발생하면 즉시 완성된다(류혁 전 법무부 감찰관).
따라서 윤석열의 내란행위는 명백하므로 그 어떤 변명도 터무니없는 짓에 불과하다. 그리고 국민 대다수가 윤 대통령의 파면을 원하고 있다. 조속한 탄핵이야말로 민생경제와 외교안보의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첩경이기도 하다. 한데 왜 국민의힘은 탄핵을 반대하는가?
‘윤 대통령이 탄핵되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불행해진다’→‘그래서 탄핵하면 안 된다’라는 논리를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세운다고들 한다. 이 따위 해괴망측한 논리가 있는가!
대통령 탄핵은 대통령이 탄핵될 만한 죄를 지었는가를 판단해서 결정할 사안이다.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탄핵 이후 근거를 들어 국민을 설득하면 될 일이다.
저들의 논리를 다시 쓰면, ‘대통령이 탄핵되면 이재명이 대통령이 된다’→‘이재명이 대통령이 되면, 기득권을 빼앗기므로 우리의 불행이다’→‘그래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윤석열은 탄핵되면 안 된다’
#3.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울산남갑)이 수난을 겪고 있다. 그는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 단체는 기자회견을 열어 김 의원을 “이완용보다 잔인하고 야비한 매국노”라고 밝혔다. 김 의원의 지역사무실 앞에 걸린 펼침막은 빨간 락카 스프레이로 쓴 것으로 보이는 욕설로 도배됐다.
대부분의 국민은 김 의원의 용기와 의기를 상찬해 마지않는다. 소수는 ‘매국노’라고까지 매도한다. 건강한 민주시민으로서 김 의원의 찬성에 박수를 보냄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한데 김 의원을 폄훼하는 그 소수, 그들은 무슨 근거로, 무슨 이익이 있어 욕설을 할까?
전혀 실체가 없는 ‘나라를 위해서’라며 기득권을 통해 자신의 사익을 공고히 하려는 윤석열이나 국민의힘 의원들을 용납할 수는 없으나, 이해는 할 수 있다. 하지만 김 의원을 매도하는 사람들의 진정성을 일단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들은 도대체 무슨 이익이 있어 그러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해할 수 없기에 내 자신을 되돌아본다. 내 믿음이나 확신은 과연 옳은가? 검증하기 위해 존 롤스의 정의론에서 중요한 개념인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을 적용해 본다. 일종의 사고 실험(thought experiment)이다.
우리가 윤석열의 탄핵 여부를 결정하는 회의에 재판관으로 참석한다. 이 회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무지의 베일’이라는 것을 써야 한다. 이 베일은 우리가 자신의 성별, 인종, 경제적 배경, 능력 등 개인적인 특성을 전혀 알 수 없도록 가려준다. 곧, 우리는 탄핵 여부에 따른 개인적 이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탄핵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이 상황에서는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탄핵 여부를 고민하게 된다. 국민의힘 의원이라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탄핵을 부결시킬 것이다. 그러나 무지의 베일을 쓰게 되면 그런 이기적인 생각을 할 수가 없다.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지의 베일 아래서 우리는 공정하게 탄핵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결국 ‘무지의 베일’은 개인의 편견이나 이익을 배제하고, 모두에게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고실험이다.
인터넷 시대에 끼리끼리 소통하고, 필터 버블(filter bubble. 인터넷 정보 제공자가 필터링한 정보만 제공하는 현상)로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자신과 다른 의견에는 아예 귀들 닫아, 열린 토론이 아주 힘들게 되었다.
극좌와 극우가 아니라면, 민주주의의 양대 축인 진정한 진보와 보수라면, ‘무지의 베일’을 쓴 열린 토론만이 이념의 양극화를 극복하고, 건강한 민주공동체를 일구는 지름길이 아닐까?
<작가/본지 편집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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