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자정이 다 되어갈 무렵에 ‘비상계엄 선포’ 소식을 접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쿠데타)을 직접 몸으로 겪은 한 시민으로서, 그 참혹한 결과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평심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차라리 ‘안성맞춤이다’란 생각도 돌연 떠올랐다. ‘탄핵 요건’ 완성되어, 탄핵 열차가 본격 출발하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검찰 해체의 일등 공신(?)이 이제 ‘셀프 탄핵’까지 하는구나, 하는 속요량에 득의의 미소까지 번져 나왔다.
비상시국에 미소를 짓는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쿠데타가 불가능한 이유 5가지’를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알 뿐, 세세한 내용은 기억하지 못했다. 하여 이 글을 쓰기 위해 검색을 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지난 2004년 가을, <월간 중앙>에 ‘군은 청와대를 어떻게 보나’라는 기획 기사가 실렸다. 여기서 현역 사단장 k소장이 “이제 한국에서 군사 쿠데타는 영원히 불가능하다”며 단계별로 쿠데타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이유를 댔다.
첫 번째 쿠데타 모의 단계. “휴대전화 때문에 보안 유지가 불가능하다.”, “설사 모의가 성공했더라도 거사로 이어지기 어렵다. 특정 부대, 특정 집단의 일거수일투족이 사람들에 의해 순식간에 세상에 알려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 쿠데타 발발 시점. “군사를 집결시키고 장비를 앞세워 중앙무대로 치고 들어오려고 해도 교통 체증 때문에 이동이 어렵다.”, “과거에는 통행금지가 있었기 때문에 병력과 장비의 신속한 이동이 가능했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중앙 당국의 통제가 없는 한 수도권 교통체증을 극복하기 어렵다.”
세 번째 쿠데타 성공 단계. “만난(萬難)을 무릅쓰고 병력과 장비를 중앙무대에 진출시켰다 해도 국민을 설득할 방도가 없다.”, “과거처럼 몇 안 되는 신문사와 방송사를 접수하는 것으로 국민의 동의를 구할 수 없으며 국민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으로 서로 의견과 정보를 주고받으며 쿠데타군을 응징할 것이 분명하다.”
네 번째 이유. “더 이상 군이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니다.”, “군사 쿠데타는 다른 사회 부문보다 군이 가장 앞서 있는 곳에서나 가능하다. 그래야 군이 명분과 힘을 가지고 다른 부문을 압도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래전부터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군 이외의 부문들이 앞서 나가 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 번째 이유. “너무도 명백한 앞의 4가지 사실을, 누구보다 군이 먼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쿠데타는 더 이상 없다.” 이 글이 올라온 게 20년 정도 전이니 그사이 한국 사회가 더 촘촘해지고 더 개방되어 무모한 쿠데타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되었다. -YTN 이대건/‘2000년 이후 쿠데타가 불가능한 이유...현역 사단장이 말한 5가지’/2023.12.6.-
k소장의 판단과 주장에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군인이나 군부의 쿠데타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고, 현직 대통령이 위법·위헌적 비상계엄을 선포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반문할 수 있다.
우선 용어 정리를 하자. 쿠데타는 일반적으로 군사 조직이나 기타 정부 엘리트가 현직 지도부를 축출하려는 불법적이고 공공연한 시도를 말한다. 이에 반해 친위 쿠데타는 이미 권력을 쥐고 있는 측이 더 큰 권력을 얻거나 요구하기 위해 스스로 벌이는 쿠데타이다. 따라서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는 친위 쿠데타이다.
왜 친위 쿠데타라고 단정하는가? 헌법 제77조 등을 들먹이는 것은 이제 식상하다. 3일 밤 11쯤 법무부에서 실국장급 고위 간부가 참석하는 긴급회의가 열렸다.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대책을 논의하는 장관 주재 회의였다. 류혁은 회의실에 앉지도 않은 채 곧바로 퇴장, 사표를 제출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검사 후배로서 고위직인 법무부 감찰관이다. 류혁 감찰관이 MBC와의 인터뷰에서 말한 육성을 그대로 옮긴다.
“오늘 만우절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이 들었고요. 저는 이거는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것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이 회의가 혹시 계엄과 관련된 회의냐 여쭤봤더니 장관님께서 그렇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생각한 대로 그렇다면은 저는 계엄과 관련된 회의에 참석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계엄과 관련된 명령이나 지시는 이행할 생각이 없습니다. 장관님께서는 그렇게 하세요라고 말씀하셔서…”
“출발 자체가 위법한 계엄에서 출발한 명령이라면 그 뒤의 부분이 공무원으로서의 통상적인 직무 수행에 해당하는 경우라도 그걸 따르는 거는, 극단적인 예를 든다면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을 운영하는 간수 같은 입장이 될 수 있는 거예요.”
“혼자만의 위기 상황이라고 주장하는 이런 착각 속에서 그리고 개인의 안위를 국가의 안위와 혼동하는 이런 정신 착란에 가까운 이런 판단 하에서 이 계엄을 선포한 건데요. 이게 국헌 문란이 아니면 뭐겠습니까? 이거는 12·12(군사 반란) 판결문을 한 번만 읽어보시면 바로 아실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고요. 이거는 전두환 대통령을 법정에 세우는 데까지 십 수 년이 걸렸듯이 이거는 얼마가 걸리든 간에 이거는 뭐 내란죄로서 각 가담 정도에 맞는 상응하는 처벌을 반드시 받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헌법국가로 영원히 남아 있는 한 내란 행위로 분명히 규정될 것이고 규정되어야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역사에 길이 남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검사 후배들은) 그런 상황을 잘 생각해서 현명하게 처신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친위 쿠데타임이 분명하다. 윤석열은 내란의 수괴로서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윤석열에 부화뇌동한 자들도 그 ‘가담 정도’에 상응한 처벌을 받을 것이다.
쿠데타든 친위 쿠데타든 21세기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에서 성공할 턱이 없다. 쿠데타든 친위 쿠데타든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 위의 5가지 이유 중 다섯 번째대로, 군이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몇몇 친위 세력 외는 위헌적 명령을 따를 리가 없다.
충암파 등 몇몇 장성들이 획책해 성공을 한다 하더라도 일시적일 뿐이다. ‘더 이상 검찰이 한국 사회의 최고 엘리트 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민을 설득할 수 가 없다. 윤석열의 ‘무능·무식·무당’의 3무로 인해 이미 그는 ‘데드 덕’(dead duck)이다. 검찰은 엘리트 집단이기는커녕 오만방자한 ‘사익추구집단’으로 국민에게 각인된 지 오래다.
외국의 시선도 곱지 않다. 우선 미국은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괘씸하게 여긴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과의 경쟁,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가자-이스라엘 분쟁에서 등골이 휘는데, 한반도에서까지 말썽이 일어나면 미국도 숨이 막힐 지경이 된다. 그 불만을 ‘민주주의를 통해 굳건한 동맹’을 이룬다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윤석열의 친위 쿠데타를 에둘러 비판하며 표현하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는 2024년 12월 4일자 사설 제목을 ‘윤석열은 사임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탄핵되어야 한다’고 달았다. <아사히신문>의 2024년 12월 5일자 사설 제목은 ‘한국 「비상계엄」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우거(愚擧)’라며 비판하고 있다.
외국 언론이 뭐 중요할까마는, 외국인들은 그 시선대로 우리를 본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의 국격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니, 참고는 해야 한다.
쿠데타든 친위 쿠데타든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성공할 리가 만무하다. 그 만무한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오는 7일 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추진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탄핵반대를 당론으로 채택했다.
7일 탄핵안이 가결된다면, 이 칼럼의 후편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그 일어날 일이 만무한 친위 쿠데타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후편을 쓸 것이다.
글을 마치면서, 비상계엄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정치수준과 시민의식을 부러워하는 <아사히신문> 사설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하고자 한다.
“이번에 주목 받은 것은 계엄군이 다가오는 가운데, 여야 의원들이 급히 달려와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통과시킨 국회의 대응이었고, 이를 지원한 시민의 존재였다. 권력의 폭주를 멈춘 민주주의 저력을 평가하고 싶다.”
<작가/본지 편집위원>
저작권자 ⓒ 인저리타임,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