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100년 인생 시작하는 부산재계 거목 전해수 (주)조양상사 회장, "나라와 지역사회에 공헌해야겠다는 신념으로 살아왔다." 

백귀란 기자 승인 2022.01.22 11:01 | 최종 수정 2022.01.24 11:31 의견 0

1922년 1월 23일 생, 23일로 만 100세, 우리 나이로 101세, 부산재계의 거목 전해수 (주)조양상사 회장.

백년 인생, 그 묵직함과 장엄함을 지닌, 비록 황혼기의 모습이나 분명 거대한 산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난청으로 인터뷰에 다소 어려움은 있었지만 사무실과 자택에서 여러 자료들을 보며 취재를 했다. 아직도 매일 해운대 사무실과 장전동 자택을 오가며 출퇴근하는 규칙적 일과를 소화해 내고 있으며 특히 건강지표 모두 정상임을 강조했다.

10년이 열 번, 그 시간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 사람이 죽으면 박물관 하나가 사라진다 했다. AI시대 우리는 왜 1990을 소환할까. 그때의 무엇을 소환하고 싶은 걸까.

여기 한 시대를 오롯이 관통해온 전해수 회장의 족적을 따라 리마인드 라이프(remind life), 아니 리프레쉬 라이프(refresh mind)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인터뷰 하는 전 회장(가운데)

Q. 2022년 101세가 되셨는데 무엇보다 건강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 이래봬도 지팡이 안 짚고 100세까지 왔어요. 고지혈증이니 당뇨니 그런 거 없이 건강지표 모두 정상이랍니다. 우리집이 3층인데 계단도 잘 올라가요. 단지 난청이 있어 의사소통에 좀 어려움이 있을 뿐입니다.

Q. 대단하십니다. 저보다 더 건강하신데요, 그럼 현재 활동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 6년 전 모든 사업체를 정리하고 지금은 평범한 일상을 즐기고 있어요. 4시반에 일어나 2시간 정도 신문기사 보고 9시쯤 해운대 오피스텔 가서 시간 보내다가 오후에 귀가하는 규칙적 생활을 하고 있지요. 그리고 50년 전 지역사회 봉사로 로타리 활동을 시작했는데 요즘도 주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 50년째로 전설이라고 불리죠.

Q. 피난 때 부산에 내려오셨다고 하던데 그 척박한 땅에서 어떻게 부산 재계의 거목이 되셨습니까?

- 경북 예천에서 태어나 보통학교 졸업 후 조선철도주식회사에 다니다가 처가집에서 빌린 돈으로 트럭 한 대를 사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부산으로 내려오게 되었어요.

1955년 택시 트럭 몇 대로 운수업을 시작한 게 (주)남양운수였고 십년 뒤인 1965년 관허 1호 조양공업(주)를 설립하게 되었어요. 서면로타리 적십자회관 부근이었죠. 조선철도주식회사에 다니면서 배운 기술과 당시로 귀한 자동차운전면허가 있었던 게 사업의 밑천이었지요. 부산 최초였고 최대였으니 전국적으로도 유명세를 탔어요. 조양상사부속상, 양산에 보세창고까지 그때 직원이 300~400명이었지요. 자동차중고매매, 관광버스회사 대성관광도 크게 하면서 지역경제의 부흥에 이바지 했습니다.

신속 친절 책임 사훈 아래 밤낮없이 일했고 그야말로 활기가 넘쳤었어요. 고객과의 약속을 목숨처럼 여기고 책임을 다했어요. 직원들이 보통 20년 30년 근속자가 많았죠. 직원복지에 정성을 많이 들였거든요

Q. 성실하게 회사를 키우셨고 부와 명예도 얻으셨는데 후학양성과 지역 봉사활동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 나라와 지역사회에 공헌해야겠다는 신념이 남보다 강했던거 같아요. 로타리활동, 새마을운동 대한노인회 부산시연합회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조정위원 부산경영자협회 활동 등을 했죠.

1976년 동아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 경영학 명예박사학위도 받았습니다. 동아대에 발전기금1억 원을 기탁, 제 호를 딴 전은장학기금을 만들어서 매년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어요. 올해도 6명에게 100만 원씩 600만 원의 장학금을 전달했어요.

막내딸 전영애수영구파크골프회장과 함께

Q. 사업뿐만 아니라 다복한 가정을 이루셨죠?

- 딸 넷에 아들 둘6남매 모두 서울과 미국 등에서 공부했고 잘 성장해서 지금은 사회에 공헌하며 살고 있어요. 자랑스럽고 고마울 따름 입니다. 특히 막내딸 영애는 나의 활동적 DNA를 많이 물려받아 실버패션모델 봉사단체 원더풀라이프, 수영구파크골프회장을 맡아 잘 운영하고 있죠. 

Q. 대한노인회 부산시연합회 회장직을 3번 연임하셨는데 주요업적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2006년 취임 3연임했어요. 당시 노인권익이나 복지가 열악했던 터라 할 일이 많았습니다. 부산지역 16개 지회 1700개 경로당의 운영을 총괄했고 회원만 8만 여 명이었어요. 홀로 사는 독거노인 방문해서 점심도시락을 전달하면서 희망을 주고 인간애를 나누고 노인복지관프로그램이나 시설개선 등 알뜰하게 살피는 일은 타고난 제 천성이었던것 같아요. 대한노인회 부산연합회 30년사 기념 책자 발간도 의미 있었고, 2019년 부산노인회관 개관기념 경로효친비 헌정도 뿌듯합니다.

벽면을 가득 채운 상패들

Q. 표창장 감사패가 한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겠는데요.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소개해 주시겠어요.

- 지역사회 번영에 기여하고자 로타리활동, 새마을 운동, 대한노인회 부산연합회 등을 했어요. 성실 신의 이타적 봉사의 마음으로 하다 보니 상도 많이 받게 되었죠.

대표적으로 몇 가지만 소개할게요.

  • 1979 대한적십자 총재표창
  • 1981 해병 제1사단장 감사패
  • 1984 중소기업협동조합 중앙회장 표창장
  • 1985 부산시장 표창장
  • 1989 체신부장관 표창장

표창장 및 감사패를 소개하는 전해수 회장

자신의 서예작품 옆에서

Q. 서예에도 조예가 깊으신 것 같습니다. 독자들을 위해 새해 인사를 친필로 가능하시겠습니까? 

- 취미삼아 한 게

  • 2004 사단법인 한국서가협회 부산지회 공모전 입선
  • 2004 한국현대미술협회 주최 공모전 서예부분 입선
  • 2004 제 9회 한중 서법대전 입선
  • 2004 제 9회 한중 서법대전 입선
  • 2005 관설당 서예대전 입선

까지 했네요. 아무래도 손에 재주를 타고 난 거 같아요.

살아보니 건강이 제일입니다. 코로나19로 다들 어려움을 겪고 계실텐데 몸 건강, 마음 건강을 지키며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전 회장의 친필 새해 인사 글

◇전해수 회장은

▶1922년 경북 예천 출생
▶1936 경북예천공립보총학교졸업
▶1955 남양운수(주) 사장
▶1965 1급자동차정비공장 조양공업사 사장
▶1971 한국자동차정비조합 부산이사장
▶1980 부산시 운수정비단체 협의회의장     
▶1981 부산시 부전동새마을금고 이사장
▶1982 부산지방국세청 일일명예청장
▶1984 대성관광(주) 회장
▶1985 한국전기통신 일일전화국장
▶1986 부산발전협의회위원
▶1986 범민족 올림픽중앙협의회위원
▶1987 부산시관광전세버스조합 이사장
▶1988 한국자동차정비연합회고문
▶1990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조정위원
▶1997 대한노인회 부산시연합회 회장
▶1997 부산경영자협의회 감사

▶저서 『지구촌의 인생과 풍경』(1989) 『화평의 시대를 기다리며』(1992) 『대한노인회 부산연합회 30년사』(2000)

<dododo7911@injurytim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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