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귀란의 Evreryone's Hero] - 강병령 광도한의원 원장, 의술 그 이상의 가치, 희망을 열다

의술과 인술로 대한민국 참봉사인 대상
'희망을 여는 사람들' 사업 활성화, 장애인전문재활요양병원 설립 꿈

백귀란 승인 2021.09.02 10:02 | 최종 수정 2021.09.14 12:29 의견 0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던가. 30년. 강산이 세 번은 족히 바뀌었을 긴 세월 부산 동래시장에서 '광도(光道)'라는 이름으로 의술을 제도해 온 분이 있다. 광도한의원 강병령 대표원장이 그 주인공이다.

후덕하고 온화한 모습에 유머감각까지 겸비한 강 원장은 그야말로 젠틀맨이었는데, 그는 사실 1961년 당시 전세계에 대유행했던 소아마비로 두 다리를 잃어 1급 지체장애인이다.

왼손이 없는 무학(無學)의 한 화백이 이렇게 말했다. 몸이 불편한 팔자를 타고난 게 인생의 보너스라고,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면 루저이지만 남이 듣지 않은 것, 하지 못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부족함이 오히려 강점이었다고.

강 원장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현재 장학사업과 장애인권익 향상을 위한 다양한 봉사를 통해 ‘의술’이 아닌 ‘인술’ 그 이상의 가치를 실현하고 있다. 대한민국 참봉사인 대상에 빛나는 영웅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강병령 원장 [사진=백귀란]

- 원장님 반갑습니다, 인상이 너무 좋으세요.

▶아이구~ 그렇습니까?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난번 김형배 위원장 글 잘 봤습니다. 감동이 물씬 느껴지는 좋은 인터뷰더라고요.

-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한의원이라고 들었어요. 혹시 첫 환자 기억나십니까?

네 올해로 33년입니다. 1987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개원할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 대전에서부터 직장을 찾아 남쪽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지금처럼 부원장을 두던 시절도 아니고 더군다나 장애가 있다 보니 많이 어려웠지요. 그러다 마산어시장의 조그만 초재상에서 페이닥터 일을 하게 되었어요. 가게 앞에는 약재를 놓고 팔고, 안쪽에서 제가 진료를 보고 침도 놓고 했죠. 거기서 첫 환자를 봤어요.

발목에 간단하게 침만 놓으면 되는 건데 의사라는 타이틀이 주는 책임감 때문인지 손이 얼마나 떨리던지요, 환자가 볼까 봐 다른 손으로 붙잡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거기서 6개월 정도 일했는데 제때 못먹고 여관방에서 자고 ... 객지 생활의 고단함을 제대로 맛봤던 것 같아요.

- 광도한의원 개원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산 생활을 접고 부산 관음한의원에서 1년쯤 일할 때였어요. 환자 한 분이 자신이 동래시장에 건물을 짓고 있는데 2층에 개원을 하는 게 어떻겠냐는 겁니다. 감사한 제안이지만 개업할 형편이 전혀 안 된다고 솔직하게 말씀드렸더니 버럭 화를 내며 누가 돈 달라고 했냐 그냥 쓰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쓰라고 하는 겁니다.

1층이 아닌 2층 한의원, 사실 선후배들이 모두 만류했어요. 당시 한의원은 무조건 1층 이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 2층은 무모해 보이는 도전이었거든요. 하지만 저는 감행했습니다. 자신도 있었고 저로서는 놓치고 싶지 않은 기회였으니까요. 어쨌든 대출 4000만 원을 내서 전세 2000만 원을 걸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개업을 하게 되었어요.

1988년 10월 동래시장 내 핫플레이스 노른자위 거기, 이름도 유명한 '희망통닭' 2층이라니. 그렇게 개원하고 보니 어마어마한 유동인구가 있는 곳이었던 거죠. 덕분에 걱정을 뒤로하고 개원 1년만에 정상궤도에 올랐어요. 제가 참 인복이 많습니다. 지금도 감사한 마음을 늘 잊지 않고 있습니다.

인봉장학회를 설립해 후배들의 학업을 돕는 강 원장[인봉장학회 제공]

- 그러고 보니 모교인 동래고등학교 근처에 개원하신 거네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비관적이면서 극심한 내성적 성격이었어요. 도서관에서 책만 보고 친구도 없었죠. 하루는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격을 바꾸자 결심하고 터닝포인트로 흥사단 아카데미 고등부에 셀프 추천을 감행하며 입단하게 되었어요. 3분 스피치, 토론활동을 하면서 사람을 이해하게 되고, 소통하게 되고, 다가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동래고등학교 문예부활동까지 열심히 했습니다.

졸업 즈음에는 친구도 많이 생기고 성격도 밝아졌어요. 한의대를 숙명으로 살아왔는데 대학진학을 문과로 전과하고 싶었을 만큼 글을 사랑했고, 글을 통해 삶의 희망과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모교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고 이곳에 개원을 했을 때 제 마음이 어땠을지 굳이 말씀 안 드려도 아실 거라 생각됩니다. 2003년 인봉장학회를 설립해 가정형편이 어려운 후배들의 학업을 도우면서, 치열했던 내 삶의 파편과 함께 마침내 희망을 일구어낸 그 시절을 반추하는 의미도 큽니다

- 내 아픔이 누군가의 길이 되고 ‘광도(光道)’라는 이름처럼 빛으로 제도하고 계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외에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죠?

30대 후반까지는 살기 급급했어요. 봉사와 기부에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건 40대 초반부터였어요. 나중에 좀 더 자리 잡으면 하자, 라며 미룰 게 아니라 작게라도 시작해보자 해서 동래고 후배 10명에게 1000만 원의 장학금을 주는 것으로 인봉장학회를 시작했는데 벌써 19년째가 되었지요.

2003년부터는 결손가정, 조손부모가정 등의 아동 생활·학습·문화에 대한 지원 활동을 하는 ‘희망을 주는 사람들’의 공동대표, 유나이티드 코리아 오케스트라 후원을 통해 난치성 어린이환자를 돕고 있어요. 그러다 2012년 인식전환의 계기가 찾아왔죠.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어깨회전근 4개 중 3개가 끊기면서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휠체어 신세가 된 거죠. 내 팔이 다리였는데 막상 휠체어를 타보니 생각지도 못한 불편함이 곳곳에 있더라고요.

‘내가 장애인이면서 장애인을 제대로 몰랐구나’

그때부터 장애인을 위해 금전적인 지원뿐만 아니라 생활환경과 권익이 개선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장애인 정책결정에 장애인이 직접 참여하고 사회공동체 일원으로 함께 하는 게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느꼈죠.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장애인총연합회, 장애인체육회, 장애인요트연맹 활동을 하며 실제 참여하고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2017년 나눔국민대상 대통령 표창을 받은 강 원장 [광도한의원 제공]

- 20년 가까이 꾸준하게 봉사를 해오시면서 뿌듯했던 대목이 있다면요?

봉사대상, 올해의 장애인상 모두 의미있지만 ‘자랑스러운 부산시민상’ 받았을 때인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는 몰라도 부산시민으로서 인정받은 거라 가치가 남다르죠. 또 장학금을 받은 후배들이 인사하러 찾아줄 때, 군복무 중 감사편지를 보내올 때 보람을 느낍니다.

- 사모님이 한의원 내 클리닉을 운영하셨다고 들었는데, 두 분의 러브스토리 살짝 공개해주실 수 있나요?

제 인생 전반부가 부모님이었다면, 인생 후반부는 제 아내였습니다. 늘 저의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었죠. 아, 아내는 봉사활동에서 만났어요. 아내도 특수교육 전공자인 데다, 같은 강 씨다 보니 더 친밀하게 지냈어요. 1년 정도 만나면서 이 사람이다 싶었고 제가 "우리 결혼해볼래요?" 라고 하니, 아내가 "좋죠" 라고 했어요.

장애인에 동성동본, 처가집은 발칵 뒤집어졌죠. 그때 청첩장을 만들어 장인어른을 독대하는 정면승부를 걸어 어렵사리 결혼을 했는데, 결혼 후에는 전폭적인 지원과 사랑을 주셨어요. 처음 장학사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아내의 독려가 큰 동력이 되었어요. 91년 결혼해서 지금까지 늘 나의 든든한 후원자요, 벗이 되어준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 막간 진심 O / X 토크

[나는 키가 좀 작아서 그렇지 인물은 안 빠진다]

“(하하하) 그렇다, O!”

- 길어지는 코로나로 몸도 마음도 지쳐있는 분들이 많은데요, 유용한 초 간단 꿀팁 하나 알려주세요.

네, 앞으로 얼마나 더 코로나와 싸워나가야 할지 걱정인데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 몸을 우리가 지키는 게 중요합니다. 코로나도 결국 면역력 문제이다 보니 바이러스 경계 강화를 위해 생강차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연하게 해서 따뜻하게 자주 마셔주면, 체온을 상승시켜 기혈순환이 원활해지면서 마음도 편해지고 면역향상에 도움이 될 겁니다.

- 앞으로 이루고 싶은 것, 원장님의 버킷리스트 중 앞에 있는 것을 소개해주세요?

우선 2003부터 시작한 ‘희망을 여는 사람들’ 사업을 더 키우고 싶어요. 조손부모가정, 결손가정, 차상위계층 아동의 생활 학습문화사업 지원 활동과 심장병, 난치병 치료비 지원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는데 어서 코로나가 종식되어 다시 제자리를 잡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리고 ‘장애인전문재활요양병원’ 설립의 꿈이 있습니다. 장애인 재활을 전문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요양병원이 생긴다면 장애인에게 실절적으로 많은 도움이 될겁니다. 아시다시피 장애인가정의 경우 가난이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이런 부분을 국가가 책임을 지는게 맞지 않나 생각합니다. 

"나보다 더 힘든 분도 있는데 나는 감사한 거지!"

강 원장이 지팡이 짚고 다녀도 버틸 수 있었던 힘이었다고 한다.

길어지는 코로나와 불확실한 미래로 좌절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강 원장의 메세지는 큰 울림으로 다가올 것 같다.

◇강병령 원장은
▷부산 동래고등학교 졸업 (1981년) ▷동국대학교 한의대 졸업 (1987년) ▷동의대학교 한의대 석·박사취득 (1998~2003년) ▷광도한의원 개원(1988년)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2019~2020)
▷(사)희망을 여는 사람들 이사장(2015~2017년) ▷부산시한의사협회 부회장(2015~2016년, 2019년~2020년) ▷(사)부산문화재단 이사장(2007~2010년) ▷부산시 장애우권익연구소 이사장 2019년~현재) ▷인봉장학회 이사장(2003년~현재) ▷동래고 망월장학회 이사장(2018년~현재) ▷부산시 장애인총연합회 부회장 2014년~현재) ▷부산시 장애우권인문제연구소 이사(2001년~현재) ▷2019년 대한민국 참봉사인 대상 수상 ▷2017년 나눔국민대상 대통령 표창 ▷2006년 자랑스런 부산시민상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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