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은 크리스마스, 즉 성탄절이다. 아기 예수 탄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성탄절. 이날은 종교를 불문하고 대개 집집마다 크리스마스 트리(Christmas tree) 장식을 하거나 눈이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White Christmas)’를 꿈꾼다.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전날인 크리스마스 이브가 더 설렌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풍습은 어떻게 해서 생겼을까?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에 따르면 그 유래가 독일 서부에서 아담과 이브에 대한 중세 대중연극의 주요 소도구로 에덴동산을 상징하는 사과가 매달린 전나무로 거슬러 올라간다. 독일인들은 12월 24일이면 집에 이 같은 ‘파라다이스 트리(Paradise Tree)’를 세우고, 얇고 둥글납작한 빵 등을 매달았다. 또한 나무가 있는 방에 ‘크리스마스 피라미드(Christmas Pyramid)’라고 해서 나무를 삼각형으로 쌓고 선반에 성인의 입상을 올려놓고, 상록수나 양초 별 등으로 장식을 했다. 16세기경 파라다이스 트리와 크리스마스 피라미드가 합쳐져 오늘날의 ‘크리스마스 트리’가 됐는데 19세기 독일 루터교를 중심으로 이런 관습이 뿌리를 내렸다고 한다. 가톨릭교회는 1982년에야 바티칸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웠다.
그런데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옛 소련에서는 마르크스-레닌주의의 국가무신론에 바탕을 둔 반종교법에 따라 크리스마스는 다른 종교적 휴일과 함께 금지됐고, 크리스마스 트리가 금지되면서 사람들은 예전의 크리스마스 관습을 ‘새해 트리’로 대체했다. 크리스마스가 ‘새해 트리(New Year Tree)’로 종교적이 아닌 세속적인 휴일로 바뀐 것이다(Ramet, Sabrina Petra, 『Religious Policy in the Soviet Un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5).
고규홍의 『이 땅의 큰 나무』(2003)는 전나무가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이게 된 이유에 관해 전해오는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8세기 무렵 지금의 독일 지역에 살던 게르만민족에겐 떡갈나무에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야만적인 풍습이 남아 있었는데 당시 그 지역에 파견된 한 성직자가 제사를 지내던 이들에게, 바로 옆의 멋진 전나무를 가리키며 “저 나무를 집에 가져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라”고 설교한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는 독일의 종교 개혁가인 마르틴 루터가 밤하늘을 향해 우뚝 선 전나무가 마치 하느님께 경배하는 것처럼 보여 이 나무를 크리스마스 트리로 쓴 데서 비롯됐다고 한다. 민담에서는 옛날 숲속의 요정들과 놀던 여자애가 큰 눈이 내린 겨울숲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자 집앞의 전나무에 촛불을 밝혀두었는데, 성탄절 전날 숲에서 길을 잃은 나무꾼 아버지가 요정들의 불빛 도움을 받은 뒤 딸아이가 켜놓은 촛불을 발견해 집을 찾을 수 있었기에 성탄전야에 전나무에 반짝이는 불빛으로 장식하는 풍습이 생겼다는 이야기도 있다는 것이다.
전나무는 젓나무, 삼송(衫松) 혹은 백송(白松)이라고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해발 100~1400m에 분포하는 고산성 상록교목이다. 전나무는 크리스마스 트리의 원조나무라 할 것이다. 관상용 외에 공업용 약용 조림용 및 건축 가구재 등에 쓰이며 민간에서는 잎을 종기 치통 치료 등의 약재로도 쓴다고 한다.
박상진의 『우리 나무의 세계 2』(2011)에는 재미있는 전나무 이야기가 나온다. 전나무는 젓나무라고도 하는데 1960년대 ‘젓나무는 어린 열매에서 흰 젓이 나오므로 잣이 달린다고 잣나무라 하듯이 젓나무가 맞다’는 이창복 서울대 교수의 주장에 따라 부르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훈몽자회』, 『왜어유해』 등의 옛 문헌에는 모두 젓나무로 나오기에 설득력이 있으나 학교 교과서나 국어사전, 산림청의 국가표준식물명에 따라 전나무가 대세라는 것이다. 삼송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삼나무가 아니라 전나무의 옛 이름이다.
전나무는 한대지방을 대표하는 나무이다. 습기가 많고 땅이 깊은 계곡을 좋아한다.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보관 건물인 수다라장, 양산 통도사, 강진 무위사의 기둥 일부 등이 전나무로 만들어졌다. 남한에서 숲으로 대표적인 곳은 오대산 월정사 입구의 전나무 숲이다. 경북 청도의 운문사, 전북 부안의 내소사 등 이름 있는 큰 사찰에 가보면 어김없이 전나무를 만날 수 있다. 사찰 부근에 자라는 전나무는 절을 고쳐 지을 때 기둥으로 쓰기 위하여 일부러 심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전나무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불교에서도 귀하게 생각하는 나무임에 틀림 없다.
크리스마스 트리로 쓰는 나무 중에 호랑가시나무도 있다. 박상진의 『우리 나무의 세계 2』(2011)에는 호랑가시나무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유추하게 하는 이야기가 소개돼 있다. 십자가를 멘 예수가 가시관을 쓰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갈 때, ‘로빈’이라는 작은 새가 예수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빼려고 온 힘을 다하여 쪼았다고 전한다. 로빈이 좋아하는 먹이가 바로 서양호랑가시나무 열매라고 알려져 있다. 또 춥고 음침한 겨울에 진초록 잎을 바탕으로 새빨간 열매를 달고 있어서 행운을 가져다주는 나무로 생각하기도 한다.
호랑가시나무는 상록수이며, 두꺼운 잎을 가지고 있어서 나무를 꺾어 오래 두어도 잘 썩지 않기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에 제격이다. 고전적으로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카드엔 실버벨과 함께 호랑가시나무 잎이 그려져 있다. 주로 영국 쪽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호랑가시나무가 많이 쓰였다고 한다.
왜 호랑가시나무란 이름이 붙었을까? 호랑이가 등이 가려우면 잎에다 문질러 댄다는 뜻에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고양이의 새끼발톱 같다 하여 묘아자(猫兒刺), 회백색의 껍질을 두고 중국에서는 개뼈다귀나무란 뜻으로 구골목(狗骨木)이라고도 한다. 호랑가시나무의 서양이름은 성스럽다는 뜻이 들어간 ‘차이니즈 홀리Chinese Holly(holy)’이다. 호랑가시나무의 어린 나무에 가시가 달린 이런 잎을 만들게 된 이유는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는 초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호랑가시나무는 자연 상태로는 제주도와 전남북 서쪽 해안지대에서 드물게 자랄 뿐이라고 한다.
위키피디아를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과 관련해 생나무·인조나무의 환경적 영향에 대한 논란도 있다. 일반적으로 생나무 재배자들은 인조나무가 생나무보다 환경적으로 더 해롭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 크리스마스트리협회와 같은 무역단체들은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용되는 인조나무의 PVC가 우수한 재활용 자원이 된다며 환경적으로 해롭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생나무는 탄소중립적이기에 자르고 폐기되더라도 자라면서 흡수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 그러나 농업활동과 운송에서 배출물이 발생할 수 있다. 지속가능발전 전문가 회사가 수행한 독립적인 수명 주기 평가 연구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트리에 사용되는 생나무는 매년 3.1kg의 온실가스를 발생시키는 반면, 인조나무는 같은 수명주기 동안 48.3kg을 발생시킨다고 한다(Life Cycle Assessment(LCA) of Christmas trees-A study ends the debate over which Christmas tree, natural or artificial, is most ecological". Ellipsos Inc. 16 December 2008)(https://en.wikipedia.org).
윌리엄 D, 크럼프(William D. Crump)의 『The Christmas Encyclopedia』(2001)에 따르면 육각형의 호랑가시나무의 잎은 크리스마스 카드의 그림으로도 등장하는데 이 나무는 독일에서는 예수의 면류관을 짤 때 쓰기도 한다고 한다. 크리스마스 트리는 주로 빨강색, 녹색, 하얀색이 섞여 있는데 각각 사랑과 희생, 희망과 영생, 순수와 순결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사다난했던 올 한해. 성탄절을 맞아 그래도 가족끼리 작은 크리스마스 트리 하나를 세우고 불을 밝히는 따스한 마음만은 가졌으면 좋겠다.
<경성대 환경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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